강남대로 자고나면 '업종 교체'

억대 월세 감당 못해 빵집·잡화점 빠지고 신발 편집숍 우후죽순

 

국내 최대이자 최고 상권으로 꼽히는 서울 강남역~신논현역 사이 강남대로 상권이 제2의 젠트리피케이션을 겪고 있다. 월 1억원이 훌쩍 넘는 살인적인 월세에 대형 빵집 브랜드에 이어 이제는 굴지의 대기업이 운영하는 드러그스토어도 줄줄이 발을 빼고 있어서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최근 급부상한 신발편집숍과 스포츠브랜드 매장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곳들도 고급 수제버거나 중식 훠궈 전문브랜드같이 상대적으로 고가인 먹거리 점포뿐이다.

 

7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영업하던 신세계그룹 드러그스토어 '분스' 강남점은 지난달 31일부로 정식 영업을 끝냈다. 대신 이 자리에는 오는 9월 신발 편집숍 슈마커의 프리미엄 브랜드매장인 '핫티(HOT;T)'가 오픈할 예정이다. 기존 슈마커와 달리 프리미엄 브랜드를 중심으로 신발과 의류, 가방 등을 함께 파는 것이 특징이다. 초역세권이라는 입지 덕에 지상 1층 전용면적 396㎡ 크기의 이 매장 임차료는 보증금 60억원대에 월세가 1억7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강남역과 신논현역 사이 강남대로변에서 드러그스토어는 단 한 곳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불과 20m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불 영업을 펼치던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가 올해 상반기 잇달아 매장을 접은 데 이어 이제는 대기업이 운영하던 드러그스토어까지 같은 운명을 맞은 것이다. 국내 1위 드러그스토어 브랜드인 CJ 올리브영도 이곳에서는 대로변이 아닌 이면도로에만 매장을 두고 있다.

 

 

대신 슈마커를 포함해 최근 강남대로변을 장악한 것은 신발 편집숍과 스포츠 매장이 대부분이다. 올 초 파리바게뜨 대형 매장이 빠진 대로 한복판 자리에는 뉴발란스가 지상 1~3층을 통임대해 문을 열었다. 월세만 1억7000만원에 육박하는 곳이다. 여기에 레스모아와 ABC마트도 성업 중이고 나이키와 아디다스, 르꼬끄 스포르티브도 잇달아 대형매장을 열고 대로변을 점령하고 있다. 오는 9월 준공하는 신논현역 인근 808타워도 이미 아디다스와 지상 1~4층 임차계약을 맺었다. '요즘 강남역 상권은 신발가게 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테일 임차 전문업체 케이리얼티의 김대현 대표는 "강남대로 상가 월세는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라 최근 신논현역 인근에 문을 연 브랜드 대형매장 중에는 월세가 2억5000만원인 곳까지 나왔다"며 "제조가 중심인 스포츠브랜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마진율이 낮고 제품단가도 떨어지는 드러그스토어 같은 유통전문 브랜드는 매장 운영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타벅스처럼 신발 브랜드의 공습에도 강남대로에서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커피브랜드 전문점이나 미국 유명 햄버거 체인점인 쉐이크쉑버거(쉑쉑버거)처럼 혜성처럼 등장해 인기몰이 중인 음식브랜드도 있다. 하지만 스타벅스는 100% 직영으로 운영되는 데다 월세를 정액으로 내지 않고 대부분 매출 대비 몇 %로 계약하는 '슈퍼 을'로 분류돼 월세 상승에 따른 타격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쉑쉑버거는 '국내 1호점'으로서 브랜드를 알릴 홍보용 스토어가 필요했다는 점, 그리고 일반 프랜차이즈보다 상대적으로 고가인 수제버거 전문점이란 특수성 덕에 비싼 월세를 감당할 수 있다는 게 이 지역 부동산 관계자들의 말이다.

 

지난달 신논현역 인근 서초W타워에 들어선 중국 직수입 훠궈(중국식 샤부샤부) 하이디라오도 국내 브랜드보다 가격 수준이 높은 편이다. 결국 지금의 강남대로에서는 빵이나 중저가 화장품만 파는 곳 대신 고가 브랜드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범석 교보리얼코 과장은 "강남대로는 수익보다는 광고판 역할을 하는 플래그십스토어 격전지로 거의 모든 브랜드가 입점을 원하는 알짜 상권"이라며 "대형 브랜드라도 높은 임차료를 감당할 여력이 없으면 퇴출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매일경제 김태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