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뉴욕 부동산업계 '미다스 손' 우영식 사장
맨해튼의 '스카이 거라지'
車와 함께 엘리베이터 타고 내리면
부엌으로 이어져… 두달 만에 100% 분양
아르헨 빈민촌서 자라고 뉴욕서 허드렛일하며 공부
디자인 배우던 대학 4학년 땐, 80만달러 건물
리모델링해 8개월 뒤 180만달러에 팔아…
미국 뉴욕 맨해튼 11가 200번지는 부촌(富村)인 첼시 지역. 스테인리스 외벽의 날렵한 20층 콘도미니엄(우리식으로는 아파트)은 차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면 바로 부엌으로 이어진다. 뉴욕 최초로 차고가 하늘에 있는 '스카이 거라지(sky garage)' 빌딩이다.
콘도 펜트하우스엔 할리우드 여배우 니콜 키드먼과 남편 키스 어반이 1000만달러(약 111억원)를 주고 입주했고, 돌체&가바나의 유명 디자이너 도메니코 돌체도 2채를 2900만달러(약 323억원)를 주고 사들였다. 록 그룹 롤링 스톤스의 리드 싱어 믹 재거도 이곳 입주민이다. 서울의 엘리베이터 주차타워에서 영감을 얻어 이 멋진 빌딩을 지은 디벨로퍼는 한국인 우영식(58·미국 이름 영우) 영우&어소시에츠 대표다.
이 빌딩은 월가발(發) 경제위기가 미국을 강타한 2009~2010년에 완공됐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놀랍게도 완공 2주 만에 60%가, 또 한 달 반 이후에는 100% 완전 분양되었다. 딱 두 달 걸린 셈이다. 뉴욕타임스가 이 신기한 빌딩을 소개한 뒤 무려 150개국에서 합작을 제의했다. 우 대표는 "불황에 견디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물건을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 ▲ 우영식 대표는 뉴욕 맨해튼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부동산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로케이션(위치)과 타이밍(시기), 그리고 또 타이밍”이라고 했다. /김재현 타임스퀘어비주얼 대표 촬영
맨해튼 서쪽 그리니치빌리지에 위치한 영우&어소시에츠. 본사 사무실에 들어서면 회사의 상징 '퍼플 카우(보라색 소)' 조각이 눈에 들어온다. 흑백의 소들 가운데 보라색 소만이 눈에 띄는 것처럼 다른 것보다 탁월하지 않으면 선택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영우&어소시에츠는 '웨스트 첼시의 등대'로 불리는 첼시아트타워, 17만스퀘어피트에 이르는 '피어 57' 등 뉴욕을 중심으로 미국 전역에서 굵직한 프로젝트 50여개를 지금까지 진행, 이젠 '뉴욕의 간판 디벨로퍼'로 떠올랐다.
◆"무조건 멕시코 국경을 건너겠다"
뜨거운 눈물을 삼켜야 하는 고행의 외길은 우 사장도 피해갈 수 없었다. 미국 이민을 꿈꾸며 먼저 파라과이행 비행기에 오른 아버지를 따라 우 사장은 가족들과 함께 12세 때 한국을 떠난다. 파라과이에서 8개월, 아르헨티나에서 7년을 보내며 우 사장은 새벽 1시 반에 일어나 소젖을 짜고, 빈민촌의 야채가게에서 일했다.
- ▲ 니콜 키드먼, 믹 재거 등 유명 연예인이 입주한 뉴욕 맨해튼 11가 200번지 빌딩의 조감도. 차에서 내리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탄 뒤, 바로 자신의 집 앞에 내리는 뉴욕 최초의 ‘스카이 거라지(차고)’ 빌딩으로 유명하다. /영우&어소시에츠 제공
19세. 갑자기 공부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한 우 사장은 미국으로 건너가기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미국 영사관을 찾아갔다. "당신은 아무래도 다시 돌아올 것 같지 않다." 미 영사관은 비자발급을 거부했다. 그래도 단 500달러만 들고, '무조건 멕시코 국경을 건너겠다'며 작별 인사를 하는 우 사장에게 매형의 아르헨티나 친구가 손을 잡아끌고 다시 미 영사관으로 갔다. 대기업 부장으로 일했던 매형 친구는 "우리 회사 직원인데 토끼 고기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미국으로 파견 보낸다"고 말했고, 30분 만에 비자가 발급됐다. 매형 친구는 "미국 플로리다주 보카 레이턴에 가면 존 보가트라는 친구가 수퍼마켓을 하는데 찾아가라"고 말했다. 웨스트 팜 비치 일대에서 가장 큰 도시인 보카 레이턴에서 스페인어로 단지 이름만 갖고 택시로 돌아다니며 찾은 수퍼마켓 앞에서 우 사장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기다렸다. 해가 질 무렵 가게에 나타난 보가트씨는 "너는 이 지역에서는 유일한 동양인이기 때문에 불법 이민자로 당장 추방된다"며 비행기를 태워 뉴욕으로 보냈다. 뉴욕의 랭귀지스쿨에 다니며 그는 유대인 푸줏간, 가구점의 일용사원, 뉴욕의 택시운전사로 일하며 뉴욕 디자인계의 명문 단과대학 '프랫디자인스쿨'에 입학한다. 대학 생활 중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창의적인 디자인 감각이 자연스럽게 길러졌고, 결국 4학년 때 부동산 디벨로퍼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뉴욕 부동산의 벽을 발로 허물다
대학 졸업반이던 1979년 12월, 우 사장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옆의 6층짜리 건물을 80만달러에 사들였다. 당시 50만달러의 모기지를 끼고 자신의 돈 10만달러, 2명의 투자자로부터 받은 돈 20만달러를 들고 계약하는 날 유대인 건물주는 "건물을 사서 무엇 할 거냐"고 물었다. 불과 3개월 전 40만달러에 건물을 산 전 주인은 두 배의 값을 치르겠다고 덤벼드는 동양 젊은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했다. 우 사장은 자신이 건물을 두배로 비싸게 치르고 산 것을 그 순간 처음 알았다. "부동산을 하다 보면 우연히 산 빌딩이 가장 돈을 잘 버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빌딩이 그랬습니다." 그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옆에 있다는 위치를 고려하면 건물이 그동안 너무 무성의하게 관리되고 있었기 때문에 저평가됐다고 판단했다. 창고처럼 쓰던 6층을 비워 쇼룸처럼 개조하자 임차인이 몰려들었다. 8개월이 채 안 돼 180만달러를 받고 건물을 팔아넘겨 최초의 부동산 사업에서 100만달러를 벌었다.
영우&어소시에츠는 현재 우 사장 이외에 변호사이자 파트너인 한인 마거릿 리와 마케팅을 담당하는 그렉 카니 등 3명의 파트너 체제로 되어 있다.
마거릿 리는 "이 가운데 손해를 본 프로젝트는 단 한 건"이라고 말했다. 2001년 9·11 사태가 터지면서 경기가 얼어붙는 바람에 현금흐름에 문제가 생겨 16만달러의 손해를 본 적이 있다 한다. 우 사장은 나중에 돈을 번 뒤 당시 손해를 본 투자자에게 돈을 빌려준 일화로도 유명하다.
우 사장은 "이민 1세대로서 나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지만 우리 젊은이들은 미국 부동산 분야에서 주류 사회와 쉽게 섞이며 두각을 나타낼 것"이라며 "무엇보다 좋은 마음을 먹고 인내하라"고 조언했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기의 순간, 그에게 백지수표 건넨 한국인은… (0) | 2011.03.26 |
---|---|
AIG 본사건물 1달러(제곱피트당)에 사고, 볼품없는 건물 1억달러에 매입… (0) | 2011.03.26 |
임대시장의 변화 (0) | 2011.03.21 |
(재야의 고수분 글) 안개가 걷히고 나면 (0) | 2011.03.21 |
"누구나 경매로 월세 2000만원 받을 수 있다" (0) | 2011.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