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금리 인상'이 친서민 정책?

웃는얼굴로1 2010. 11. 2. 01:52

아기곰

 

물가 잡는 순기능 약해…속도 조절할 때



지난 9월 9일 시장의 예상을 뒤엎고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 금리가 동결되자 일부에서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동안 김 총재의 발언을 금리 인상 신호로 해석해 채권 등에 베팅한 사람들의 불만이었다.

이들이 금리 인상을 주장하는 타당성은 물가 인상 압력에서 벗어나려면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미 금리 인상 시기를 놓쳤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실 제로 전년 동기에 비해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2.6% 상승에 그쳤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기준금리가 동결됐던 9월에는 3.6%까지 치솟아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아직은 한국은행의 물가 관리 범위인 4% 이하에 놓여 있기는 해도 급격하게 오른 9월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월 14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인상 주장에 강력한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은 언뜻 들으면 마치 서민을 위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깊숙이 들어가 보면 이런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기준금리 인상 불 보듯

금리를 인상하면 물가가 잡힐까. 경제학 교과서에는 분명 그렇게 나와 있다. 그리고 물가가 잡히면 서민들의 삶은 나아질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금리 인상을 친서민 정책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금리를 인상했을 때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물가가 안정되는지 이해하면 금리 인상이 얼마나 철저히 반서민적 정책인지 알게 될 것이다.

물가가 오르는 원인은 두 가지다. 첫째는 원가 상승이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원유나 대부분의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때 유가 등이 인상되면 공산품의 제조원가가 높아지기 때문에 물가가 오르게 된다.

둘째는 소비의 증가다. 공급은 일정한데 수요가 늘어나면 수요 공급의 법칙에 따라 물건의 가격이 오르게 된다. 두 원인이 독립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복합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 러므로 물가를 잡으려면 위의 두 원인을 제거하면 된다. 예를 들어 소비가 증가하는 현상을 막으려면 금리를 인상하면 된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다. 그런데 금리를 인상하면 왜 소비가 줄게 될까.

 

첫째, 정기적금 금리 등 수신 금리가 오르면 저축에 매력을 느낀 소비자들이 저축량을 늘리려고 한다.
수입이 일정하다고 가정했을 때 저축을 늘린다는 것은 소비지출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이런 현상은 지출보다 소득이 비교적 높은 계층에서 일어난다.

 

둘째, 은행 대출금리 등 여신 금리가 오르면 기존 대출금에 대한 이자 부담이 늘어난다.
그러면 소비를 하고 싶어도 소비할 돈이 없기 때문에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소득에 비해 비교적 대출이 많은 계층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우리가 서민이라고 부르는 경제적 약자는 전자와 같이 소비해도 남아서 저축할 만큼 소득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소비를 충분히 할 만한 소득도 없는 계층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결국 금리 인상을 통해 물가를 잡는다는 얘기는 서민에게 압박을 가해 소비를 줄이게 만든다는 의미다. 더구나 더 미시적으로 들어가면 전자와 같이 저축을 하기 위해 줄이는 소비는 생활 물가보다 주로 사치품 등에 해당하는 얘기다.

요즘 세상에 저축을 위해 식사의 양이나 질을 떨어뜨리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생활 물가를 잡으려면 소비지출을 더 줄이도록 압박을 가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서민의 고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금리를 올리면 저절로 물가가 떨어져 서민의 삶이 윤택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서민의 삶을 쥐어짜 물가를 떨어뜨리게 된다는 메커니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서민 삶 쥐어짜는 물가 인하

그런데 문제는 더 심각한 데 있다. 현재의 물가 상승 기조가 소비 증가에 있다면 수신 금리 인상을 통해 자발적으로 소비를 줄이거나 여신 금리 인상을 통해 반강제적으로 소비를 줄이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물가 인상 원인은 내수 경기 활성화에 따른 소비 증가라기보다 국제 원자재가 상승에 따른 원가 상승에 그 원인이 있다. 이 경우 금리 인상은 물가를 잡는데 약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독이 된다.

라면을 만드는 회사를 예로 들어보자. 국제 밀의 시세는 지난 6월 말 부셸당 465센트였다. 그러던 것이 3개월이 지난 9월 말에는 674센트까지 올랐다. 3개월 만에 무려 45%나 뛰었던 것이다.

밀가루 값이 오르면 라면 값이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라면을 만드는 원가가 오르기 때문에 라면 값을 올리지 않으면 라면 회사는 적자를 낼 수밖에 없다. 라면 값이 오르면 라면 소비도 줄게 된다.

하지만 소비가 줄어드는 것을 염려해 원가 이하에 라면을 팔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때 물가를 잡는다고 금리를 인상하면 어떻게 될까. 라면을 만드는 회사 쪽에서는 금융비용이 올라가기 때문에 원가가 더 오르는 역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라면 값을 인상하는 시기만 더 앞당기게 될 뿐이다.

밀가루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리·면화 등 농수산물과 원유를 비롯해 구리·알루미늄 등 대부분의 원자재가 작년 동기에 비해 몇 십 %씩 올랐다. 우리나라 내수시장의 규모는 세계경제 전체로 볼 때 영향력이 거의 없는 정도의 작은 규모다.

금리 인상을 통해 우리나라 내수 소비가 다소 줄어든다고 해도 국제 원자재 값이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결국 현 상황 하에서 금리가 인상되면 물가 상승을 잡는 순기능보다 서민들의 삶에 미치는 고통이 커지는 역기능이 나타날 뿐이다.

물가를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의 소비 물가 상승이 국제 원자재가 상승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인 만큼 수입 물가를 낮추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예를 들어보자.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라고 하자.

이 때 환율이 달러당 1100원이라고 하면 원화로 환산, 배럴당 11만 원이 된다. 그런데 국제 유가가 상승해 배럴당 110달러가 되었다고 하자. 만약 환율의 변동이 없다면 배럴당 12만1000원이 되어 달러 기준이나 원화 기준이나 똑같이 10% 상승이 된다.

하지만 만약 환율이 달러당 1000원으로 낮아진다면 원유는 배럴당 11만 원이 된다. 국제 원유가 상승분이 원화 절상분으로 상계된다는 의미다.

물론 우리나라는 수출을 많이 해야지만 먹고 사는 경제구조를 가진 나라이기 때문에 환율을 낮추는 것이 득보다 실이 많다. 하지만 현재의 원화 강세 현상이 우리나라 내부의 문제라기보다 미국의 달러화 약세 정책에 기인한 것이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대부분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도 달러화 대비 절상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원화 절상(환율 하락)을 용인해도 된다.

다 시 말하면 물가를 잡기 위해 인위적으로 환율을 낮출 필요까지는 없지만 정부가 무리하게 시장에 개입하지만 않는다면 현재의 수출 호조와 미국의 달러화 약세 정책 등에 힘입어 원·달러 환율은 자연스럽게 하락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G20을 앞두고 환율 조작국이라는 오명을 쓸 염려도 없어지면서 수입 물가도 안정시킬 수 있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국제 경제 상황을 보더라도 현재는 금리를 인상할 시기가 아니다. 지난 7월의 섣부른 금리 인상으로 중국계 자본 등 국제 투기 자본만 국내에 불러들이는 계기가 됐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이들 자금 유입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했더라도 국채 등 시중 실세 금리는 오히려 하락하는 웃지 못할 상황마저 전개됐던 것이다.

지금은 요동치는 국제 경제 환경을 지켜볼 때다. 그리고 환차익을 노리고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일부 국제 투기 자금이 일시에 빠져나가면 일어날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향후 그런 조짐이 보일 때 기준금리를 인상해 그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대안이라고 본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금리 인상을 주장하면서 마치 서민을 위해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논리는 경계해야 한다. 어느 정책이 진정으로 서민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인지 현명하게 판단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