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빛바랜 간판과 페인트가 벗겨진 가게들 사이로 빨강, 노랑, 파랑 등 알록달록한 간판을 단 가게들이 눈에 띈다. 가게 벽면과 셔터에는 가게 특색을 드러내는 그림과 독특한 문구도 그려져 있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 동진시장과 동대문구 신설동 서울풍물시장, 구로구 구로동 구로시장에 가면 청년 상인들과 예술가들이 개성 있게 꾸민 상가 점포들이 눈길을 끈다.
그러나 청년 상인과 예술가들을 끌어들여 전통 시장을 살리려는 서울시와 자치구의 노력에도 정작 주변 상인들은 그 효과를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 동진시장 입소문 타고 유동 인구 늘어…“되는 곳만 잘 돼”
마포구 연남동 동진시장은 주변 주민들에게 생필품을 판매하는 재래시장이었지만 지난 2013년부터 젊은 예술인들이 모여 자신이 만든 작품을 전시·판매하기도 하고, 예술 공연도 하면서 ‘문화가 있는 장터’로 탈바꿈했다.
여기에 태국 음식점 ‘툭툭누들타이’, 일본식 카레 전문점 ‘히메지’, 1970~1980년대 느낌의 인테리어 콘셉트로 가게를 꾸민 포장마차 ‘아리랑’, ‘시실리’ 등이 맛집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동진시장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또, ‘연트럴파크(연남동과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합친 말)’로 알려진 ‘경의선 숲길’이 지난 6월 시민에게 개방되면서 연남동 동진시장 주변 상권은 경의선 숲길과 연희동 상권을 잇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각종 호재로 유동 인구는 많아졌지만 정작 매출 희비는 점포마다 엇갈린다.
동진시장에서 J철물점을 운영하는 박정효(74·가명) 씨는 “오가는 손님들은 많아졌지만 매상엔 영향이 전혀 없다”며 “유동 인구가 많아지면서 땅값만 엄청 올랐고, 장사는 주변 술집같이 되는 곳만 잘 된다”고 말했다.
연남동 S마트 주인 최모(53) 씨도 “이곳에서만 20년 가까이 장사하고 있는데, 입소문이 난 곳만 북적인다”며 “오는 사람들이 미리 인터넷 검색해서 소문 난 곳들만 찾아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남동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유동 인구가 많아지고 경의선 숲길 쪽과 상권이 이어지면서 권리금이 많이 붙고 땅값도 많이 올랐다”고 했다. 하지만 장사는 기대만큼 안 돼 오른 가게세를 버티지 못하고 나가는 상인들도 적지 않다.
연남동 O공인 관계자는 “(장사가) 되는 곳만 되니까 손 바뀜이 자주 일어난다”며 “시장 가게들 중 몇몇 매장을 빼고는 1~2년 사이에 한 번은 주인이 바뀌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S공인 관계자도 “동진시장과 경의선 숲길 쪽 상가 권리금이나 월세가 다 2배씩 뛰었다”며 “예전엔 1층 33㎡(10평) 기준 권리 3000만원에 월세가 70만~80만원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권리금 6000만원에 월세도 150만~160만원씩 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 주변 상인들과 연계 부족한 구로·풍물시장
구로구 구로동 구로시장도 청년 창업을 통해 시장 활성화에 나선 재래시장 중 하나다. 구로구는 지난 1월 구로시장 노후 점포 4개를 리모델링 해 청년 상인 점포인 ‘영프라쟈’를 만들었고, 앞으로 12개 점포를 추가로 청년들에게 내줄 예정이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색 데이트 장소로 알려지면서 한때 눈길을 끌었던 구로시장은 점포 리모델링을 위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탓인지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다.
구로시장에서 신발가게를 하는 김모 씨는 “4개뿐인 청년 점포에 상권 활성화 시너지를 기대하긴 어렵다”면서 “공사가 끝나 12개 점포가 더 들어오고, 시장 통로를 아케이드처럼 꾸미면 지금보다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영프라쟈 주변 S커피집 주인은 “이색 점포가 4개뿐이라 주변 점포 매출에도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며 “젊은이들이 많이 찾아오면 상권도 발달할 텐데 아직 그런 분위기는 아니다”고 전했다.
동대문구 신설동 서울풍물시장도 상황은 비슷하다. 서울풍물시장에는 서울시 지원을 받은 청년 예술가들이 ‘청춘1번가’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서울풍물시장 2층 한쪽에 마련된 공간에서 청년들은 다방, 사진관 등 10여 개 점포를 운영한다. 월세 등은 내지 않고 각자가 쓴 전기료 등 관리비만 따로 내면 된다.
이곳은 주말이 되면 일반 관광객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자주 찾을 정도지만 아직 주변 상인들과의 연계는 많이 부족해 보였다.
청춘1번가가 있는 시장 2층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 대부분은 청춘1번가가 생겨 매출에 도움이 됐냐는 질문에 대부분 고개를 가로저었다.
청춘1번가 주변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사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찾는지도 잘 모르겠고 매출에도 전혀 영향이 없다”고 말했다. 비슷한 구역에서 모자 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도 “시장을 찾는 손님은 좀 늘어난 것 같긴 한데 매출은 크게 차이가 없다”고 얘기했다.
풍물시장 1층에서 옷가게를 하는 장모(55) 씨도 “청춘1번가를 보러 오는 사람들 때문에 주말엔 시장을 찾는 손님은 조금 늘었는데 매출은 피부로 와 닿을 정도는 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시 서울풍물시장 활성화 사업단 관계자는 “작년에 시범 사업을 했을 때는 청년 점포를 기존 점포 사이사이 빈 공간에 배치하면서 시장 상인들의 매출도 덩달아 오르는 윈윈(win-win) 효과가 있었는데, 올해는 그렇지 않다”며 “시장활성화사업단도 시장 상인들의 매출과 연계하는 방안을 계속해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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