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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둘 리더십

웃는얼굴로1 2014. 8. 22. 09:39
주말이면 서울 도심의 산을 자주 찾는다. 친한 친구나 회사 동료 한 두 명과 함께 가벼운 얘기를 나누면서 천천히 오른다. 간혹 서로 일정이 맞지 않아 동반자가 없을 땐 혼자서 나무와 새, 다람쥐를 벗 삼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누구나 그렇듯이 높은 산에 오르려면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낀다. “언제 저 곳을 오르지?” 많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꼼수를 부려 빼먹기도 일쑤다. 그래서 산 중턱만 도달했다가 내려오기도 하고, 아니면 산 초입에 있는 계곡에서 잠시 머리를 식히고 돌아오기도 한다. 그런데 마음을 굳세게 먹고서 정상을 찍으면 그 기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시원한 약숫물을 마시거나 꼭대기에서 인증샷을 찍으면 마치 온 세상이 내 것인양 기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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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바라보는 서울 시내의 모습은 웅장하기 이를 데 없다. 사방팔방으로 빌딩 숲이 꾸며져 장관을 연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거의 뿌연 그림자가 도심 하늘을 드리우고 있어 “저런 공해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라는 측은지심이 들기도 한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닌데….

꼭대기에 서 있으면 뭔가를 성취했다는 뿌듯함도 들지만, 자연의 위대한 힘 앞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등산객들의 표정은 일상생활 속 찌든 모습이 아닌 흐믓함 혹은 천진난만함(?) 같은 분위기도 풍긴다. 경쟁할 대상이 없고 오로지 푸른 초목과 바위, 계곡을 벗삼아 나만의 자유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군에서 기상 구보를 할 때 보통 1~2킬로미터 정도는 거의 매일 뛰게 된다. 기본 체력과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한 밑거름인데, 결국 장병들이 튼튼한 몸을 가꾸는 원천이 된다. 이때도 종종 마음 속에서는 은근히 쉬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하지만, 막상 하나둘 구령을 외치면서 뛰다보면 어느새 몸이 개운해지고 상쾌함도 샘솟는다. 힘들더라도 먼저 종착역을 생각하지 않고 차근차근 세다 보면 어느새 달리기가 끝나고 숨쉬기 운동이 이어진다.

근육질 몸매를 원하거나 전날 이어진 술자리의 여독을 풀기 위해 남성들은 종종 헬스클럽으로 향한다. 러닝머신에 올라 속도를 내기도 하고, 아령과 같은 운동기구를 들며 땀을 흠뻑 흘린다. 여성들도 몸매를 가꾸거나 요가 등으로 신체를 단련하기 위해 헬스장에 발을 내딛는다. 그런데 막상 옷을 갈아 입고 샤워용품 등을 챙겨서 가려고 하면 왠지 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갑자기 졸음이 밀려오는 것처럼 가기 싫을 때도 적지 않다. 하지만 막상 다녀오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몸도 가뿐해지기에 귀찮아도 아파트 문을 나선다. 어쨌든 하나둘 세면서 30분 이상 몸을 움직이면 소기의 목적이 달성된다.

요즘 방송업계, 특히 종합편성 채널에서는 생존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시청률이 좋아야 광고를 더 많이 유치할 수 있고,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을 바탕으로 직원들은 월급을 받고 회사는 경영활동에 쓸 자금을 축적하게 된다. 필자는 한동안 종편 4개사(매경, 조선, 동아, 중앙)들이 한바탕 힘을 겨루는 최선봉에 섰다. 특히 뉴스부문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샅바싸움이 치열했는데,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심정이었다. 그 당시 이기기 위한 고민을 밤낮없이 했고, 지속적인 방송 모니터링과 연구, 세밀한 연출을 통해 승리를 위한 전략과 전술 마련에 매진했다. 회사에 들어온 이래 가장 힘든 시간이자 나름 최선을 다했던 소중한 시기였다. 당시 다른 일을 돌볼 겨를조차 없었던 필자는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기본에 충실하면서 하나둘 외치고, 다각도로 점검해 대책을 세우면 적어도 패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란 믿음을 가졌다. 다행히 그 대열에서 낙오하지 않고 무사히 임무를 마쳤으니 참 보람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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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계 빚이 1000조원이 넘는 실태를 반영하듯 왠만한 가정들은 그 부담에서 자유롭지 않다. 재산을 물려받는 등 특별한 부의 원천이 없다면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거의 대부분 채무에 시달린다. 필자 역시 내 집을 마련하느라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고, 그것을 갚느라 스트레스도 받고 돈을 벌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다행히 여러 해가 지나면서 모두 갚을 수 있는 가시권으로 금액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얼마전 해외 여행을 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목돈이 없기에 마이너스 통장을 써야 했는데, 은근히 압박감이 밀려왔다. 여기서 더 빚이 늘어나면 앞으로 갚아지는 날짜가 더 길어질텐데….

그래도 이왕 밖으로 나가기로 한 것 계획대로 저질렀다. 어차피 자식들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데리고 가야 부모와의 정(情)이 샘솟기에 손을 잡고 저 멀리 다른 나라로 몸을 실었다. “그럼 채무가 늘어나는 것은 어떻게 하지? 에라 모르겠다. 다시 하나둘 세면서 차근차근 갚아나가면 되지 뭐.” 그동안 조금씩 상환해서 거의 목적지까지 왔는데, 한번 더 그런 계단을 밟아보자고 마음 먹었다. 어차피 시간이 되면 빚의 규모는 확연히 줄어들고 어느 시점이 되면 그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바야흐로 다시 마음 속에 하나둘 되새기는 여정이 시작됐다.

흔히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千里之行 始於足下)`라는 옛 속담이 있다. 42.195km를 뛰는 마라톤 선수를 보면 언제 그 먼거리를 완주할까 엄두가 나지 않는데, 빠른 남자선수들은 2시간 초반에, 왠만한 선수들도 3시간 안팎이면 레이스를 마치게 된다. 보통 마라톤을 하게 되면 숨이 조여 오는 극한의 시간대가 있는데, 이 순간을 넘기면 제대로 형언못할 행복감이 밀려온다고 체험자들은 밝히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길도 마찬가지. 무릇 임원이나 최고경영자가 되려면 신입사원부터 천천히 단계를 밟아 올라가야 하고, 시시때때로 맞이하는 장애물이나 고통을 참고 견뎌내야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 또한 당연히 뒤따라야 한다.

불교 용어인 ‘백팔번뇌’를 본 따 `108번`의 절을 하면서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운동이 인기를 끈다고 한다. 대개 30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는데,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게 여간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누구나 처음엔 하기 싫고 막상 엄두가 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나둘 마음 속으로 세면서 정성을 기울이면 어느덧 108번에 다가서고 충분히 땀을 흘리면서 몸이 달라짐을 느낀다고 한다. 출발은 미약했으나 갈수록 횟수가 더해지면서 자신감은 배가되고 ‘하체 튼튼 마음 튼튼’ 모든 게 땡큐가 된다.

세계 수학자대회가 우리나라에서 열린 가운데 이른바 ‘수학 노벨상’으로 평가받는 ‘필즈상’에 이란 출신의 미르자카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여성으로서 첫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녀는 “어릴 때 스스로 수학을 못한다고 생각해 공부를 포기하려고 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스스로 잘 할 수 있다고 되새기며, 하나둘 어려운 수학 공식을 정복해 나갔다. “10대 청소년에게 증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자신감”이라며, “할 수 있다는 포부로 과감히 수학에 도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학문이나 예술, 스포츠, 사업 등 어떤 분야든 처음부터 잘 되기는 쉽지 않고, 자칫 재능만 믿다가 큰 코 다칠 수도 있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면서 매순간 최선을 다하면 본인이 원하고자 하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목표한 곳에 도달하지 못하면 어쩌지?” 아쉽지만, 굳이 과실(果實)에 연연해하지 말자. 최선을 다하는 열정을 보였으면 그것으로 만족하자. 이렇게 사는 게 행복한 삶이고, 스트레스도 줄일 수 있는 원천이다.

우리 함께 시작해보자.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김종철 기자의 퓨전 리더쉽&롤모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