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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수 기자의 사람이니까 경영이다] Why에서 출발하라, 이순신의 리더십

웃는얼굴로1 2014. 8. 21. 19:05
최근 대박을 치고 있는 영화 `명량`의 한 장면에서 그만 웃음이 나올 뻔 했다. 영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장면인데, 웃음이라니. 영화를 보는 도중에 이순신 장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뒤 관객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진 김한민 감독의 얘기를 들으면서 미안함은 수그러들었다. 김 감독 역시 관객이 웃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장면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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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장면은 장군의 아들이 장군에게 "왜 싸우십니까"라고 묻는 장면이다. 겨우 12척의 배로 수백 척의 전함을 거느린 왜군과 왜 싸우려고 하느냐는 뜻이다. 아들은 장군에게 왕의 권고대로 수군을 육군에 합류시키고 장군은 병을 핑계 삼아 고향으로 내려가는 게 어떠냐고 청했다.

이에 대한 장군의 대답은 "의리"였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그만 배우 김보성의 코믹한 `의리 시리즈`가 연상됐다. 그래서 그만 웃음이 나올 뻔 했다. 이에 대한 감독의 걱정도 같았다. "명량 대본은 2년 전에 나왔어요. 그런데 최근에 모 배우의 의리가 유행이잖아요. 그래서 관객들이 웃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이 같은 걱정에도 불구하고 김 감독은 `의리`라고 대답하는 장면을 고수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만큼 그 장면이 중요하고 또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장군이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백 척의 왜군과 싸우는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에 왜 온 몸을 던졌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면서 `인간 이순신`을 보여준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의리에 대한 장군은 설명은 이랬다.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쫓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는 법이지." 결국 장군은 `백성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무엇인가 부족한 느낌을 받는 관객들이 많다. 단지 백성에 대한 의리 때문에 승리가 불가능해 보이는 전투에 나선 것일까? 12척의 배 중에서 다른 11척이 멀리 떨어져 도망갈 태세를 하는 중에 홀로 적의 선단을 맞아 싸운 이유가 단지 `백성에 대한 의리` 때문이었을까.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관객들이 꽤 있다.

김 감독 역시 그 같은 지적을 꽤 많이 받았다고 했다. 김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싸우는데 대한) 뭔가 개인적인 이유가 필요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영화 용의자에서 딸을 납치당한 공유가 딸을 되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는 것처럼)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그런 개인적 이유 말이죠. "

그러나 `백성에 대한 의리`는 충분히 이순신 장군을 싸우게 만든 개인적인 이유가 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 의리는 바로 장군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즉 장군의 와이(why)이기 때문이다. 백성에 대한 의리를 포기하는 순간 장군은 세상에 존재할 이유를 잃게 된다. 그 때문에 장군은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의리`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보여준 놀라운 리더십의 원천 역시 장군의 `와이`(why)에 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와이(Why)에서 출발하라`의 저자인 사이먼 사이넥은 필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누군가가 자신의 와이, 즉 존재이유를 보여줄 때 사람들은 거기에 고무되고 영감을 받습니다. 인간은 무엇인가에 고무가 되면 그에 대한 믿음과 연대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로열티가 생기게 되죠. 기꺼이 다른 무엇인가를 포기하게 됩니다."

사이넥의 이 같은 말은 명량해전 당시 우리 수군의 행태를 설명해주는 단서가 된다. 전투가 시작됐을 때, 12척의 배 중 장군의 함선이 홀로 적군과 맞섰다. 나머지 11척은 멀리서 그냥 관전만 했다. 예를 들어 전라우수사 김억추의 함선은 대략 1km 정도 물러나 있었다. 영화에서 보여주듯, 한동안 장군의 함선이 외로운 전투를 치른 뒤에야 비로소 나머지 11척의 배가 싸움에 합류한다. 거제도 현령 안위, 중군장 첨사 김응함의 배가 먼저 장군을 도우러 왔다.

부하 장수들은 왜 갑자기 도망갈 태세를 그만두고 싸움에 합류했을까? 사이넥의 해석을 빌리자면, 장군의 존재 이유, 즉 `와이`에 고무되고 영감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머리로만 계산하자면, 그들은 당연히 달아나야 했다. 장군이 홀로 계속 싸우다가는 결국 질 게 분명했다. 전투 초기 조수의 흐름도 왜군에 유리했다. 물길이 왜군에서 우리 수군 쪽으로 흘렀기 때문에 왜선은 순류를, 우리 수군은 역류를 타고 있었다. 사실상 승산 제로의 게임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의사결정은 머리로만 하는 게 아니다. 감정이 큰 역할을 한다. 사이넥은 필자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합리적 이성과 분석, 언어 등은 두뇌의 신피질이 책임을 집니다. 신피질을 통해 우리는 정보와 데이터를 이해하게 됩니다. 반면 두뇌의 변연계는 인간의 감정을 책임집니다. 그런데 신피질은 인간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변연계가 인간의 행동을 통제하죠. 와이(why) 즉 존재 이유는 감정과 연결돼 있고 변연계에 작용합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자신의 와이(why)를 다른 사람에게 불어넣는다면, 그의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장군이 목숨을 걸고, 홀로 왜적의 선단과 싸우는 장면을 멀리서 보고 있던 부하 장수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들의 두뇌속 신피질은 `달아나야 한다`는 분석을 내놓았겠지만, 그들의 감정은 다른 말을 속삭였을 것이다. `백성에 대한 의리`, 다시 말해 자신의 와이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던지려는 장군의 행동을 보고 감정적으로 고양됐을 것이다. 결국 그들의 두뇌 속 변연계는 `함께 싸워야 한다`고 외쳤을 것이다. 사이넥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은 변연계가 통제한다. 그들은 결국 장군과 함께 목숨을 걸고 싸웠다. 결국 부하 장수와 군졸들을 짓눌렀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 것도 장군의 와이(why)였다.

리더라면 자신의 와이(why)를 보여야 한다. 장군이 했듯이, 자신의 행동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입증해야 한다. 그러면 부하 직원들은 리더의 와이(why)에 고무되고 영감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 부하 직원들은 엄청난 에너지를 낸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도 떨쳐낼 수 있다. 장군의 부하들이 했던 것처럼 말이다.

[김인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