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 역학

[김두규 교수의 國運風水(국운풍수)] 중년男들이 영조 생모의 묘를 찾는 까닭은

웃는얼굴로1 2014. 4. 18. 03:03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소령원(昭寧園)을 찾는 중년 남성들이 늘고 있다. “운기(運氣)를 뿜어내는 명당(明堂)”이라는 입소문이 돌면서 40~50대 남성들이 솔솔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사적(史蹟) 제358호인 소령원은 조선 21대 임금 영조(英祖)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淑嬪 崔氏)의 무덤이다. 지난 2010년 MBC 드라마 ‘동이’에서 탤런트 한효주가 주인공을 맡아 연기한 숙종(肅宗)의 후궁(後宮)이자 영조의 친어머니가 바로 숙빈 최씨다.

파주 소령원/ 문화재청 제공
파주 소령원/ 문화재청 제공
소령원은 왕과 왕비의 무덤인 능(陵)보다 한 단계 아래인 원(園)이고, 큰 길에서 떨어진 산자락에 숨겨진 듯 자리잡고 있어 평소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없었던 곳이다.

◇ “운기(運氣)를 뿜어내는 명당(明堂)”

최근 소령원을 찾았다는 한 기업체 간부는 “숙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50년 넘게 임금 자리를 지키고 80세 넘게 장수한 영조대왕의 어머니가 이곳에 묻혔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호기심에 가 봤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 최장수 왕이자 성군(聖君)을 낳은 숙빈 최씨의 음덕(蔭德)을 조금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궁중 최하층 무수리 신분에서 내명부 최고의 품계에 오른 숙빈 최씨의 이야기.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궁중 최하층 무수리 신분에서 내명부 최고의 품계에 오른 숙빈 최씨의 이야기.
“천한 무수리 출신인 최씨는 숙종의 마음을 독차지하려는 장희빈의 모진 구박을 받았다. 하지만 승은(承恩)을 받아 영조를 낳고 결국 정일품(正一品) 숙빈까지 올랐다.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최후의 승자’가 된 숙빈 최씨의 기운을 내려받고 싶다”는 40대 남성도 있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중요한 인사(人事) 이동을 앞두고 소령원 주변을 거닐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기(氣)를 받아갔다는 기업체 고위 간부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의 모기업에선 이사 승진 대상 30명을 대상으로 소령원 인근에서 연수를 했는데 이중 소령원에서 참배한 절반 가량이 이사로 영전했다고 재계 관계자는 말했다.

서원밸리나 송추컨트리클럽, 파주프리스틴밸리 등 인근 골프장에서 주말 라운딩을 마친 뒤 잠깐 들르는 정·관·재계 인사들도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주말섹션 ‘Why?’에 ‘국운풍수(國運風水)’를 연재하는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는 “소령원은 외롭고 쓸쓸해 보이지만 힘이 있고 자존심을 지키려는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는 장소”라고 말했다.

◇ 영조의 절절한 효심(孝心)이 깃든 곳

‘소령원 주인’ 숙빈 최씨는 1670년(현종 11년)에 태어나 7세 때 허드렛일을 하는 무수리로 궁궐 생활을 시작했다고 알려졌다. 인현왕후(仁顯王后)를 모시며 지내던 숙빈 최씨는 인현왕후가 폐출된 뒤 밤마다 그의 복위(復位)를 기도했다고 한다. 그 모습이 숙종의 눈에 띄어 승은을 입었다는 것이다.

질투에 눈이 먼 장희빈의 악행(惡行)과 구박에 시달렸지만 1693년(숙종 19년)에 숙원(淑媛·종사품)으로 책봉됐다. 그해 10월 아들 영수(永壽)를 낳았지만 두 달 만에 잃었다. 이듬해 9월 연잉군(延礽君) 금(昑)을 낳았는데 그가 조선의 21대 임금인 영조이다. 숙종 25년(1699년)에는 정일품 숙빈으로 봉해졌다.
파주 소령원/ 문화재청 제공
파주 소령원/ 문화재청 제공
숙빈 최씨는 1718년(숙종 44년) 49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그는 당시 양주땅이던 지금의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 묻혔다. 효심이 깊었던 영조는 무덤 동남쪽에 시묘막(侍墓幕)을 짓고 어머니의 죽음을 애통해 했다. 지금도 소령원에는 영조가 시묘살이하던 흔적이 주춧돌과 돌담 일부로 남아있다.

소령원은 처음에는 소령묘(墓)로 불렸다. 왕실의 법도에 따라 무덤은 왕과 왕비는 능(陵), 왕세자·왕세자빈이나 왕세손·왕세손비는 원(園), 왕위와 관계 없는 왕족은 묘에 모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영조는 소령묘를 육상궁(毓祥宮)이라 부르면서 친필 비석을 세웠다. 1753년(영조 29년)에는 소령원으로 승격시켰다. 나중에는 능으로까지 승격시키려 했지만 중신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숙빈 최씨의 무덤은 소령원 왼쪽 끝에 동쪽을 바라보고 들어서 있다. 봉분 주변에 담을 둘렀고, 봉분 양쪽으로 호랑이와 양 모양의 석물(石物)을 배치했다. 정면에는 상석과 향로석, 장명등이 늘어서 있다. 근처에는 ‘숙빈해주최씨효령묘(淑嬪海州崔氏昭寧墓)’, ‘유명조선국후궁최씨지묘(有明朝鮮國後宮崔氏之墓)’라 새겨진 비석이 있다.

◇ ‘비공개 문화재’로 일반인 출입은 통제

알음알음 소령원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숙빈 최씨의 무덤 주변을 거닐거나 가까이 다가가 참배를 할 수는 없다. 1991년 10월 사적으로 지정된 이후 ‘비공개 문화재’로 분류돼 문화재청이 관리하기 때문이다.

소령원 입구에 설치된 녹색 펜스에는 ‘문화재의 훼손 방지 및 관람자의 안전을 위해 공개를 제한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는 내용의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출입하려면 사전에 신청서를 내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파주 소령원/ 문화재청 제공
파주 소령원/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 파주삼릉관리소는 학술 목적의 답사 등을 위한 출입은 허가하지만 일반인들이 드나드는 것은 통제하고 있다. 하지만 숲 속으로 돌아가 소령원 봉분 근처에 가 봤다는 사람들의 얘기도 들린다.

평소 인적이 뜸한 곳이라 관리인들이 23만1000여㎡의 경내를 24시간 눈 부릅뜨고 감시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문화재청은 소령원 경내로 몰래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CCTV를 설치했다.

소령원을 관리하는 파주삼릉관리소 이광석 주무관은 “이전까지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곳이었는데 최근 들어 문화재나 풍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방문 요청이 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직까지 일반에 공개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