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 역학

[김두규 교수 國運風水(국운풍수)] 風水 전쟁… 한자루 칼같은 중국은행타워에 '대포'로 맞선 홍콩상하이은행

웃는얼굴로1 2014. 4. 21. 00:56

홍콩상하이은행 건물 옥상에 설치돼 있는 대포 모양 구조물. / 김두규 교수 제공
홍콩상하이은행 건물 옥상에 설치돼 있는 대포 모양 구조물. / 김두규 교수 제공

홍콩의 중국은행타워(Bank of China Tower)는 1990년대 홍콩의 풍수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1985년 공사가 시작된 이 건물은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367.4m)로서 원래는 1988년 8월 8일 낙성식을 가질 계획이었다(8·八이란 숫자는 중국인들에게 행운의 상징이다). 그러나 완공이 늦어져 1989년에 낙성식을 갖는다. 그런데 왜 이 건물이 풍수전쟁을 일으켰다는 말인가? 건물의 형태 때문이었다.

이 건물은 이오 밍 페이(I. M. Pei: 貝聿銘·베이위밍)라는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가 설계했다. 문제는 이 건물 모양이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던 이웃 건물들과 달리 지나치게 공격적이었다는 점이다. 죽순처럼 "마디마디가 높이 올라가는 것(節節高昇·절절고승)"을 형상화하려던 것이 건축가의 의도였다. 이오 밍 페이는 고전주의 건축 양식을 부정하고 표현주의를 주창한 독일 출신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판 데어 로헤(L. M. van der Rohe)의 '세례파'였다. 균형과 조화를 무시하고 비틀림과 과장, 파괴와 분열 그리고 반역 등이 표현주의 주제어들이었다. 중국은행타워도 그 후예였다.

그런데 건축가의 의도와는 달리 이 건물을 본 홍콩인들은 그것을 한 자루 칼(一把刀) 혹은 창으로 이해하였다. 특히 그 칼끝(刀鋒)이 홍콩 총독부(당시 홍콩은 중국에 반환되기 전이었다)를 겨눈 것처럼 보였다. 칼(창) 모양의 건물이 한창 하늘 높이 지어지고 있을 즈음인 1986년 12월 당시 홍콩 총독 에드워드 유드(Edward Youde)가 베이징 방문 중 급사한 사건이 발생한다. 뒤숭숭한 총독부에서는 풍수사를 초빙하여 자문을 한다. 풍수사는 총독부 화원(花園)에 버드나무를 심어 살기를 피하게 하였다.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하려 함이었으리라.

몇 년 후인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뒤 초대 행정장관에 임명된 둥젠화(董建華)의 이야기이다. 그는 공개적으로 풍수상의 이유를 들어 이곳(총독부 대신 예빈부·禮賓府로 개칭)에 입주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마치 일본 아베 총리가 수상 관저에 귀신이 출몰한다는 소문 때문에 입주하지 않은 것처럼(2013년 6월 15일자 이곳 '국운풍수'에서 소개).

칼(창)은 총독부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총독부 바로 밑에 있는 홍콩상하이은행(HSBC)도 그 칼이 자신을 찌르고 있다고 믿었다. 대응책으로 건물 옥상에 두 개의 대포 모양의 진압풍수물(鎭壓風水物)을 설치하게 한다.

홍콩에서의 이러한 풍수 행위는 한갓 미신일 뿐일까? 홍콩은 산이 많고 땅은 좁다. 땅은 좁은데 인구는 많다. 바위가 많은데 흙은 적다. 고온다습에 바닷바람 또한 만만치 않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거주하기에 척박한 땅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비보진압풍수'가 유일한 해결책이다. 비보진압풍수란 무엇인가? 송나라 유학자이자 풍수에 능했던 채원정(蔡元定)은 '발미론(發微論)'에서 이를 '중(中)'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산천을 만든 것은 하늘이지만 산천을 재단함은 사람의 일이다. 지나침과 부족함을 고쳐서 중(中)을 이뤄야 한다.' 유학자 출신 풍수학인이 의미하는 '중(中)'이란 무엇인가? "상황의 적중성(適中性)이자 과불급(過不及)이 없는 것"이라고 전북대 김기현 교수(퇴계학)는 설명한다.

악조건의 땅에서 많은 사람이 조화롭게 공존하려는 노력은 결국 홍콩인들로 하여금 풍수의 지혜에 눈을 돌리게 한 것이다. 그러한 노력에 반기를 든 반(反)풍수적 건축물(중국은행타워)에 홍콩인들은 대포(HSBC)로 응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