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일상화된 변동성 장세에서 살아남는 지혜

웃는얼굴로1 2010. 9. 2. 00:05

박원갑     2010/09/01 21:56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부동산이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듯이 부동산은 대표적인 실체가 있는 실물자산이다.

상대적인 개념이지만, 실물자산은 대체로 금융자산에 비해 가격이 안정적이고 보유에 따른 위험도 낮아 안전자산에 속한다. 하지만 이러한 특성은 부동산이 사용가치에 충실한 자산이었을 때만 가능한 얘기다.

최근 회자되고 있는 ‘하우스 푸어’는 부동산에 올인(all-in)한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부동산에 모든 것을 걸다보니 시세의 작은 변화에도 조울증 환자처럼 심한 감정기복을 드러낸다. 만약 가계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30%에 불과하다면 집값이 하락하더라도 지금처럼 고통과 절망의 시간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대도시 주택은 거주공간이 아니라 부를 늘리기 위한 자산에 가깝다. 집을 ‘집’으로 보지 않고 ‘돈’으로 보는 사회에서는 시장 가격이 안정적일 수 없다.

그런 부동산시장은 앞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변화의 물결로 소용돌이가 칠 것이다.

요즘 들어 대도시 부동산은 가격이 심하게 출렁이는 불안정한 자산, 리스크가 큰 비(非) 안전자산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투기적 수요가 많이 몰리는 서울과 수도권 주거용 부동산에서는 더욱 심한 부침을 드러낸다. 용인, 잠실, 분당 일부 아파트값은 오를 때에는 2~3배 오르더니 내릴 때에는 많게는 반값 수준으로 떨어졌다.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는 모양새다. 부동산 시장의 변동성(volatility, 가격등락의 폭)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변동성은 부동산시장의 새로운 질서이자 흐름이다.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날까. 그 이유는 크게 5가지이다.

 

변동성 확대 5가지 이유

  첫째, 부동산을 공간서비스를 이용하는 가치보다는 자산증식의 수단인 자산(asset)이나 저장(stock)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다(부동산의 자산화와 스톡화).

대도시의 부동산, 특히 주택을 삶의 터전이라는 이용목적만을 염두에 두고 구입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투자가 아닌 순수한 이용목적으로 집을 사고 싶어도 배우자나 주위사람들이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이들로부터 “집값도 오르지 않는데 전세로 살지 왜 사느냐”는 핀잔을 들을 가능성이 높다.

혹시 당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값이 올랐는지, 내렸는지 궁금할 때가 많은가.

그래서 스피드뱅크(www.speedbank.co.kr) 같은 부동산정보업체를 찾아 시세를 자주 조회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아파트를 집이 아닌 하나의 자산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부류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집을 주거공간의 소비라는 본래의 목적에는 관심이 없고 시장가격이 올라가기만 학수고대한다.

대표적인 재테크 수단이 된 재건축이나 재개발은 정도가 심하다. 온 동네사람들이 자신의 집 외벽이 빨리 낡고 지붕에 물이 새기를 기도한다.

그래야 안전진단 같은 재건축 절차를 빨리 진행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시세차익을 기대한 투자자들은 대체로 은행 돈을 최대한 끌어들인다. 이 때문에 작은 충격에도 마음이 불안해지고 가격도 쉽게 출렁이는 모습이 나타난다.

 

 둘째, 부동산은 이제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금융의 한 부문으로 종속됐다. 외환위기 이전 만해도 주택시장은 수급이나 소득에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외환위기 이후에는 이자율 등 금융이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한다. 부동산이 금융의 영향권에 종속되면 강한 휘발성을 내포하게 된다. 그리고 일부 부동산은 금융상품을 닮아간다. 아파트처럼 상품이 규격화·표준화돼 유동성(환금성)이 좋아지면 투기성 자금 유입이 쉬워져 변동성이 커지는 특성이 나타난다.

 

 셋째,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급속한 보급으로 정보의 유통속도가 빨라지고 정보의 비대칭성도 무너졌다. 이러다보니 동네 실수요뿐만 아니라 외지 투자수요까지 한꺼번에 몰려 부동산 가격의 변동성을 키운다. 판교신도시 주변의 용인이나 분당 아파트값이 급등락을 거듭한 것은 정보의 비대칭성 붕괴로 ‘전국구 투자처’로 바뀌어 가격이 부풀려졌기 때문이다.

 

 넷째, 부동산시장의 글로벌화이다.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로 한국의 집값이 급락한 것처럼 국제 금융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국내 부동산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

주택시장의 수급이나 정책 등 국내변수에 의해 주로 움직이던 과거에 비해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어찌보면 글로벌 경기 부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소규모 개방국가이자 무역국가인 한국의 집값이 안정적일 것으로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지 모른다.

 

 다섯째, 부동산시장의 장기호황으로 가격이 많이 올라 소득에 비해 고평가되어 있는 상황이다. 가격이 낮을 때보다 부풀려져 있을 때 변동성은 크게 나타난다.

부동산시장의 이들 특성으로 앞으로 가격이 생각보다 자주, 그리고 롤러코스터처럼 심하게 출렁일 것이다. 즉 ‘변동성 쇼크’가 반복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다치지 않기 위해서는 롤러코스터의 좌석벨트를 단단히 매야 한다.

다만 모든 부동산이 자산증식 수단이나 투자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골의 단독주택이나 지방 아파트 같은 부동산은 이용목적에 충실한 시장으로 남아 시장 양극화가 극심해질 것이다.

 

  과도한 상승은 과도한 하락을 부른다

  2010년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이를 두고 버블붕괴라고 단정짓는 의견들이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주택가격 급락 그 자체를 부동산 버블붕괴의 한 현상으로 봐서는 안 된다. 버블붕괴는 부동산시장이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시스템 기능을 완전히 상실, 금융시스템의 마비와 경제 펀드멘털의 대혼란까지 유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버블붕괴는 하수종말처리장이 고장 나서 오·폐수가 강으로 역류하는 것과 같다.

단순히 가격이 많이 떨어진다고 버블 붕괴는 아니라는 말이다. 1970년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17개국에서 40개의 부동산 호황과 불황(boom and bust)사이클이 나타났지만 가격급락이 금융시스템붕괴→거시경제의 대혼란으로 이어진 것은 일본이나 핀란드 이외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버블붕괴를 경계해야 하지만 당위론적인 시각에서 미래를 예단해서는 안된다. 이상 급등 이후에는 반드시 급락이라는 조정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모든 자산시장의 대명제다. 일부지역 집값 급락은 부동산의 과도한 상승에 따른 고통스러운 후유증(역 자산화)이다.

시장은 아직 건강하다. 병든 병아리처럼 금세 쓰러질 정도로 허약한 존재는 아니다. 그렇다고 집값이 곧 상승세로 돌아선다는 얘기는 아니다.

지금 수도권 주택 시장은 거품 해소를 통한 정상화의 과정이다. 정책과 공급량 등의 요인에 의해 앞으로 낙폭 과대지역을 중심으로 기술적 반등이 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추세적 상승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가격이 더 조정을 받으면서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

최근 10년 이상의 대호황국면이 마무리돼 또 다시 장기상승이 오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지난 30년 간 미국이나 유럽 주택시장을 보면 가격이 치솟은 뒤에는 늘 수년에 걸쳐 실질주택가격을 기준으로 하락이 이어졌다. 한국의 주택경기도 1991년 4월 고점을 형성한 이후 4~5년간 장기조정을 겪었다.

이번 침체기가 언제 갈 지는 알 수 없지만 당분간 가격이든 기간이든 조정이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시장가격은 언제나 오르는 것이 아니요, 또 영원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가격이 내릴 때(오를 때)가 있으면 오를 때(내릴 때)도 있는 법이다.

부동산경기는 호황기와 불황기를 반복하는 사이클(cycle)이다. 부동산 대폭락론이나 대폭등론은 1차방정식 같은 단선적 사고에서 비롯된다. 부동산시장은 직선(straight)보다는 곡선(curve)의 세상이다. 어찌 보면 불완전, 비합리적 존재인 인간이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 자체가 신에 대한 도전인지도 모른다.

부동산의 미래를 전망한다는 것은 그저 가능성과 확률을 얘기할 뿐이다. 그런데도 극단적인 주장만 크게 들린다. 부동산시장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다. 여러 변수를 종합적으로 고찰, 한쪽에 쏠리지 않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다.

 

  변동성을 극복하는 방법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을 내가 기댈 언덕, 나를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로 생각한다. 하지만 부동산은 더 이상 당신을 지켜주지 못한다. 다시 말해 부동산은 더 이상의 당신의 든든한 방패이자 후원자가 아니다. 변동성이 강한 불안정한 상품, 위험이 큰 비(非) 안전자산일 뿐이다.

부동산이 그만큼 리스크와 불확실성에 노출돼 있다는 뜻이다.

이제 부동산은 사랑(love)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management)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보수적 마인드와 리스크 관리의 지혜가 필요하다. 변동성이 강한 시장에서는 조급함보다는 느긋함, 추격매수보다는 저가매수, 남의 돈을 많이 꾸기(레버리지 극대화)보다는 자기자본의 비중높이기 전략이 구사되어야 한다. 변동성을 스스로 흡수할 수 있는 ‘마음의 버퍼(buffer, 완충장치)’도 필수적이다.

 

/신작 “부동산미래쇼크”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