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장기전세주택(시프트)은 주변 전셋값의 70~80% 수준으로 공급되고 있다. 임대 기간도 최대 20년으로 길고 주택 구조도 민간 아파트 못지않다. 2007년 도입 이후 인기몰이를 지속하면서 '임대아파트도 살 만한 곳'이란 인식을 심어줬다. 내집마련 수요를 적지 않게 해소시키며 수급여건을 개선하는 데 기여한 것은 물론이다.
보금자리주택은 이명박 정부의 핵심 공약이다. 개발계획의 '언터처블(untouchable)'이었던 수도권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까지 풀면서 집값을 최대 절반 수준까지 낮춰 공급하는 게 핵심이다. 일부 미달도 생겼지만 서울 인근 보금자리는 여전히 인기다.
건설회사들은 "값싼 보금자리와 경쟁하라는 것은 손발을 묶어놓고 싸우라는 것"이라고 불평하지만 주택 실수요자들에겐 이만한 조건의 내집마련 수단을 찾기가 쉽지 않다.
시프트와 보금자리주택의 의미는 무엇보다 집 장만에 대한 강박관념을 희석시켰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부동산 시장에 강력하게 구축됐던 매수기반을 취약하게 만든 것이다.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주택 수요 감소, 강남 · 서초 · 송파 등을 포함한 '버블 세븐' 붕괴 우려 등과 맞물려 집값 하향 안정세를 이끌었다. 권투로 치면 '부동산 불패(不敗) 신화'라는 적을 패배(하향 안정세 전환)시키는 데 결정적인 '잽'의 역할을 한 셈이다.
시장은 변하게 마련이다. 올 들어 주택 구매수요가 사라진 자리는 전세수요로 채워졌다. 주택시장이 전세 천하가 된 듯한 느낌이다. 예비 수요자들인 젊은 부부들은 "10여년 월급을 꼬박 모아도 집장만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좋은 전세 물건 찾기에 몰두하고 있다. 한 건설사 주택사업본부장은 "자녀가 하나, 또는 둘이다 보니 '시간만 지나면 시댁 집도 우리 집, 처가 집도 우리집'이라고 생각하고 당분간 계속 전세로 살겠다는 젊은 부부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추석 이후 나타나는 전셋값 폭등에는 주택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투영돼 있다. 시세차익이 가능했던 종전 시장 메커니즘이 집값 폭등을 가져왔듯, 집값 하락을 내다본 참여자들의 심리가 전세 수요로 이어지면서 전세난을 불러온 셈이다.
서울지역 자가보유율은 55.1%(2007년 기준) 정도다. 전세가 서민 주거안정과 직결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도 '전세 대책은 없다'던 기존 입장을 바꿔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시장 메커니즘에 비춰 시세차익을 얻기 힘든 저금리 시대에 수익률을 보전받기 위한 시장의 움직임이 최근의 전세난을 가져왔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는 무주택자의 내집마련을 돕기 위해 다양한 세제혜택을 주고 있다. 최근 전세난은 뛴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싼 곳을 찾는 수요에서 촉발되고 있다. 전셋값 일부를 월세로 바꿔 눌러 앉는 세입자들에겐 일정 자격기준을 마련해 주택 구입 시 세제혜택을 주는 등 전세수요를 줄이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한 때다.
보유(保有) 일변도의 기존 주택시장 패러다임에 변화가 생긴 것은 분명해 보인다. 중소형 임대주택만 많이 지으면 전세난도 해결될 것이라는 정책 마인드로는 문제 해결이 힘듦을 읽게 해준다.
전세난이 심화될 것이란 전망이 대세로 자리잡는 순간 내집마련 열풍은 다시 불어닥칠 것이고,집값 하향 안정이라는 이 정부의 실적도 물거품이 될 것은 뻔하다. 시중에 나도는 풍부한 유동성은 화약이 되고도 남을 만큼 넘친다.
박기호 건설부동산부장 khpark@hankyung.com
'최신 뉴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익형 부동산'에 돈 몰린다 (0) | 2010.10.18 |
---|---|
10월 2주 부동산 뉴스클리핑 (0) | 2010.10.18 |
"서울ㆍ수도권 집값 20%는 버블…도심 월세형 임대주택 지어야" (0) | 2010.10.18 |
인구 감소로 주택 구매 줄고 공급 과잉에 과도한 투기까지 (0) | 2010.10.18 |
"거품 있지만 급격한 붕괴 없다"…역세권 소형주택에 관심을 (0) | 2010.1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