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식초

18년 묵은 소주가 金酒가 된 사연

웃는얼굴로1 2018. 11. 18. 21:58

[식품야사-25] 지난달 출시된 하이트진로의 소주 '일품진로 18년산'이 매장에서 병당 20만원에 팔리고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는 뉴스를 혹시 보셨나요? 기사를 쓰고 나서 댓글을 읽다보니 '소주'에 대한 오해가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를 친절하게 설명하지 못한 저의 책임이 큽니다. 이번 식품야사에서는 소주에서 시작해 우리 전통주 전반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이미 알고 계신 분들은 다 알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정리 차원에서 적어보겠습니다.

오늘은 소주의 역사를 손날 목치기로 뿌셔보겠습니다. /출처=PSY Hangover M/V

우리가 마시는 소주(참이슬, 처음처럼, 시원 등등)는 보통 '희석식 소주'라고 합니다. 이는 일품진로나 화요와 같은 '증류식 소주'와 항상 비교되는데요. 사실 과거에는 증류식 소주가 진짜 '소주'였고 희석식 소주는 새롭게 등장한 술이었습니다.

원래 우리나라 역사에서 소주란 탁주나 청주(쌀로 만든 우리나라 전통주)를 끓여서 만든 높은 도수의 증류주를 말하는 단어였습니다. 와인을 끓여서 만들면 브랜디가 되고, 맥주를 끓여서 만들면 위스키가 되는 것과 동일하게 말입니다. 안동소주라든지 문배주와 같은 술이 옛날과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소주입니다. 그런데 이런 소주를 만드는데는 많은 쌀이 필요했기 때문에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었습니다. 맥주보다 위스키가 훨씬 비싼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19세기 유럽에서 '연속식 증류기'라는 기계가 개발됩니다. 기존의 '단식 증류기'는 발효주의 맛과 향이 어느 정도 유지되어서 코냑이나 위스키 등 고급 술을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기존의 우리나라 전통 소주도 따지고 보면 이 같은 단식 증류 방식으로 만든 술이었습니다. 반면 연속식 증류기는 매우 높은 도수의 주정을 만든 후 이를 희석해서 소주를 만들었기 때문에 대량생산도 가능했고 생산비용도 저렴했습니다. 보드카나 그레인 위스키가 이같은 연속식 증류기를 통해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20세기 초 일본에 들어온 연속식 증류기로 인해 일본에서는 전통 소주(쇼추)와는 다른 방식으로 생산되는 쇼추가 판매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910년 일본에서 고구마를 원료로 하여 연속식 증류기로 증류한 '일본소주(하이카라소주)'가 판매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같은 신식 소주는 저렴한 가격으로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일제강점기 한국에도 상륙해 1919년 평양과 인천에 조선 최초의 주정식 소주 공장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1929년 8월 23일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경성시내에서 소비된 소주량이 5900여 석인데 이 중 시내에서 양조된 것은 83석이라고 나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의 희석식 소주는 일본에서 갑류소주(연속식 증류소주), 증류식 소주는 을류소주(단식 증류소주, 본격소주)라고 불립니다.

1926년 12월18일 동아일보에 실린 `가네다마루`소주 광고. 일본에 본사를 둔 야마무라(山邑)주조가 마산에 세운 것이 부산산읍주조의 술인데 이 회사는 해방 후 `좋은데이`로 유명한 무학이 되었습니다. /출처=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그런데 이때부터 기존의 전통 소주(혹은 전통주)는 국가에 의해 '고난의 길'을 걷게 됩니다. 먼저 예상할 수 있는 대로 가격 면에서 전통 소주는 신식 소주에 비해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신식 소주가 저렴하게 생산하기 위해 고구마나 타피오카 같은 농작물을 쓰는데 반해 전통 소주는 쌀로 만들기 때문에 가뜩이나 쌀이 부족한 과거에는 국가에 의한 탄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특히 조선총독부는 세금 확보를 위해 우리나라 전통주를 통폐합하는데 안동소주와 같은 많은 전통주들이 이때 사라졌다고 합니다.

광복 이후에도 이런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요. 1965년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양곡관리법이 시행되면서 양곡을 원료로 하는 주류(막걸리와 증류식 소주 등)의 제조가 금지되었습니다. 이 조치로 우리나라 전통주는 큰 타격을 받고 몰래 술을 만들어 먹는 밀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대신 저렴한 원료인 타피오카와 고구마 등으로 만드는 지금의 소주가 우리 국민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술이 되었습니다.

1973년에는 정부에서 1도 1사의 원칙(자도주법)을 제정해 주류제조업체를 통합했습니다. 지방 소주업체에 일종의 독점적인 권한을 준 것입니다. 서울·경기는 '진로', 강원은 '경월', 경북은 '금복주', 경남은 '무학', 부산은 '대선', 광주는 '보해'가 지역 대표 소주가 되었습니다.

진로는 1924년 창업주 장학엽 회장이 평안남도 용강군에 만든 회사입니다. 그는 한국전쟁 때 월남해 1953년 영등포 신길동에 '서광주조'를 다시 설립해 소주 사업을 시작합니다. 1965년부터 본격적으로 희석식 소주를 생산했던 진로는 1970년에는 소주 시장 1위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1985년 진로그룹 내에서 오너 일가 사이에서 경영권 다툼이 벌어지면서 회사는 진로와 서광, 진로발효의 세 회사로 나뉩니다. 소주 판매 및 유통을 하는 진로는 장학엽 회장의 아들인 33세의 장진호 씨가 가져가고, 진로그룹 내 의류계열사이던 서광은 장학엽 회장의 조카인 장남 장익용 씨가, 진로발효는 장학엽 회장의 이복형인 장봉용 씨가 맡게 됩니다. 현재 진로그룹은 망했지만 서광과 진로발효는 여전히 장학엽 회장의 일가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1988년 진로그룹의 회장이 된 장진호 씨는 그 이후 다양한 사업에 진출합니다. 진로위스키(현 페르노리카), 진로쿠어스(현 카스), 진로백화점(진로종합유통), 진로제약(동우약품에 인수됨), 진로건설(현 대우조선해양전설), 진로종합식품(현 하이트진로음료) 등이 그가 만들었던 회사입니다. 한때 재계 서열 19위까지 커졌던 진로그룹은 그러나 1997년 IMF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진로그룹은 2003년 공중분해되었고 장진호 회장은 분식회계와 비자금 횡령건 등으로 구속 기소돼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는 해외를 떠돌다 2015년 중국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현재 매장에서 판매하는 '일품진로1924'는 이 장진호 회장 시절 1996년 진로가 내놓은 '참나무통 맑은소주'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진로는 당시 고급 소주시장을 점하고 있던 보해의 '김삿갓'에 도전하기 위해 순쌀을 원료로 희석식이 아닌 증류식(단신 증류) 소주를 만들었습니다. 또 참나무통에 1년 이상을 숙성시켰습니다.

만약 참이슬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참나무통 맑은소주가 성공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출처=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이 '참나무통 맑은소주'는 50일 만에 1000만병이 판매되는 등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러나 1997년 진로가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판매가 급감했고 1998년 같은 회사의 23도 희석식 소주 '참이슬'의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완전히 판매가 중단되었습니다. 이미 생산했던 참나무통 맑은소주는 '악성 재고'가 되어 팔지 못하고 진로소주 이천공장에 묵혀둘 수밖에 없습니다. 그사이에 진로는 2003년 골드만삭스로 경영권이 넘어갔고 2005년에는 하이트맥주에 팔려서 지금의 하이트진로가 되었습니다.

2007년 하이트진로는 10년 묵은 '참나무통 맑은소주'를 '일품진로'라는 이름을 붙여 '10년 숙성 증류주'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여전히 고급 소주나 증류식 소주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이트진로는 2013년 이번에는 도수를 좀 더 올리고 리뉴얼해서 내놓는데 이번에는 다른 반응이 옵니다. 2005년 광주요가 내놓은 증류식 소주 '화요' 등 선두 업체가 오래 닦아놓은 시장이 자리 잡으면서 사람들도 '일품진로'의 가치를 알아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일품진로 판매량은 2013년 9만2000병에서 2014년 25만병, 2015년 44만병으로 성장세를 유지하다 2016년 5월 200만병으로 수직 상승했고 2017년에는 원액 부족으로 아예 판매를 중단하게 됩니다. 대신 하이트진로는 '참나무통 맑은소주'를 리뉴얼한 느낌의 '참나무통 맑은이슬'을 내놓고 숙성기간이 6개월 정도로 짧은 '일품진로1924'를 내놓습니다.

식품야사 5회에서 위스키가 비싼 이유로 '시간'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요. 일품진로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출고가격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출고가격은 매장에서 판매되는 가격이 아니라 제조업체가 주류도매업체에 판매하는 가격입니다. 1996년 당시 1년 숙성이었던 '참나무통맑은소주'의 출고가격은 645원이었습니다. 10년이 지난 2007년 일품진로(10년 숙성)의 가격은 7000원이었습니다. 2013년 일품진로(10년숙성)의 가격은 9400원으로 또 올라갑니다. 그러다 2018년 내놓은 일품진로 18년산(18년 숙성)의 출고가는 6만5000원으로 뜁니다. 고급 위스키 중 가장 잘 알려진 조니워커 18년산의 출고가(7만원)와 비슷한 수준까지 가격을 올린 것입니다.

어찌 보면 하이트진로가 '시간'의 가치를 과소평가하다가 뒤늦게 그 값어치를 깨달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훨씬 더 비싸게 팔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뒤늦게 판매를 중단시킨 것이지요. 올해 일품진로 18년산을 6000병 출시한 하이트진로는 앞으로도 매년 소량만 내놓는다고 하는데요. 과연 하이트진로 이천공장에 얼마나 숙성된 재고가 있을지 주류업계에서는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품진로'만이 유일하게 오래 숙성된 술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증류식 소주로 유명한 안동소주에서도 18년 숙성된 소주를 팔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화요도 오크통에서 5년 이상 숙성시킨 제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다만 '일품진로'처럼 우연이라도 18년씩이나 숙성된 재고를 대량으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긴 시간동안 이를 관리하고 보관하려면 많이 비용이 드는데 미래의 수요를 예측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 위스키입니다. 일본에서는 최근 위스키가 대중화되면서 위스키 품절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10년 전에 이처럼 위스키가 인기가 얻을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충분한 재고를 비축해두지 못했기 때문에 히비키 17년산 같은 연산이 있는 제품이 판매 중단되고 있습니다.

연산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회사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대만 위스키인 카발란은 연산을 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연산을 따지면 대만에서는 위스키를 생산하는 것이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출처=카발란

우리술(전통주)에 대한 얘기로 되돌아가겠습니다. 20세기 중반 희석식 소주의 등장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된 전통주는 우리 국민들이 더 이상 쌀 부족을 겪지 않고 쌀이 남아돌게 되고, 또 사람들이 술의 다양성을 추구하게 되면서야 비로소 다시 판매가 가능해졌습니다.

1986년까지만 해도 민속주는 1도 1사제로 인해 용인 민속주, 부산 산성막걸리, 제주 오메기주 등만이 제조가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88올림픽을 맞아 민속주 제조면허를 허가해주면서 그동안 밀주 형태로 만들어지던 술이 수면상으로 나오고, 옛날 제조방법을 복원하면서 한산소면주(충남한산), 면천두견주(충남 면천), 과하주(경북 김천), 국화주(경남 함양), 경주교동법주(경북 경주), 문배주(평양), 안동소주(안동) 등이 1989년부터 다시 판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술에 대한 구분을 짚고 넘어가보려고 합니다. 증류식 소주와 희석식 소주의 차이는 알았는데 그렇다면 청하나 백세주와 같은 술은 소주와 어떻게 다른 걸까요.

우리나라의 다양한 술을 구분하는 방법 중 하나는 과학적인 구분이 아니라 주세법적인 구분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술은 주세법상 특정 카테고리에 속해 있는데 어느 술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부과받는 세금이 다릅니다.

출고량 기준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술은 맥주입니다. 전체 출고량의 51.4%가 맥주입니다. 다음은 희석식 소주가 26.6%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많은 것이 바로 탁주(막걸리)로 11.5%를 차지합니다.

막걸리는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주로 쌀로 밥을 짓고 거기에 누룩과 물을 더해 발효를 시킨 술입니다. 이를 맑게 걸러내지 않고 그대로 판매하면 '탁주'이고 이를 걸러내서 사용하면 '청주'나 '약주'가 됩니다. 우리에게는 '사케'로 익숙한 일본식 술은 '청주'와 비슷합니다. 발효주를 걸러내 맑게 만든 술이기 때문입니다.

청주나 약주를 주세법상으로 구분하는 것은 복잡하나 청주는 쌀을 주원료로 쌀의 중량 기준으로 누룩을 1% 미만으로 사용해야 하고 약주는 쌀, 밀, 고구마 등 녹말이 포함된 재료를 전부 사용 가능하고 과실·채소류를 넣을 수 있다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청주는 우리나라 전체 술 출고량의 0.5% 약주는 0.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청하가 청하 한잔을 청하면 어떨까요 /출처=청하(롯데주류) 인스타그램

반면 쌀·밀 등이 아니라 과실을 발효시켜 만든 술은 과실주이고, 과실주를 증류해 나무통에 저장해 파는 것은 브랜디로 구분됩니다. 소주·위스키·브랜디 등을 제외한 증류주는 일반증류주로 구분되는데 고량주, 럼, 진, 보드카, 데킬라 같은 것입니다. 일반증류주인데 불휘발분(어떤 일정 조건에서 가열하였을 때 휘발하지 않고 잔존하는 물질) 2도 이상인 경우는 '리큐르'라고 하는데 보통 증류주에 향료나 다양한 것을 섞은 술을 리큐르라고 합니다. 자몽에이슬 같은 술이 리큐르로 구분되며 예거마이스터, 갈루아, 베일리스 같은 술도 리큐르에 포함됩니다. 최근에는 기타주류 쪽이 커지고 있는데 하이트진로에서 내놓은 필라이트가 주세법상 기타주류에 해당됩니다.

사실 이 같은 구분은 매우 헷갈리는데요. 제품별로 정리해보면 좀 이해가 빠릅니다. 오른쪽에는 해당 국산 주류와 대응되는 외국산 술을 적어보았습니다.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는 2012년 이후 주세법상 '소주'로 통합되었지만 여전히 다른 카테고리로 구분되고 있습니다.

맥주 - 카스, 하이트, 수제맥주 / 수입맥주

희석식 소주 - 참이슬, 처음처럼, C1, 한라산, 제주소주 / 갑류소주

증류식 소주 - 일품진로, 대장부, 화요, 안동소주 / 을류소주

탁주 - 장수막걸리, 지평막걸리, 포천막걸리

청주 - 청하, 백화수복 / 사께

약주 - 백세주, 풍정사계 춘, 한산 소곡주

과실주 - 복분자주, 매취순, 설중매, 매화수, 마주앙 / 와인

위스키 - 임페리얼, 스카치블루 / 조니워커, 글렉피딕, 발렌타인, 산토리

브랜디 - 고운달 / 꼬냑, 아르마냑

일반증류주 - 문경바람 / 고량주, 럼, 진, 보드카, 데킬라

리큐르 - 청포도에이슬, 자몽에이슬 / 예거마이스터, 갈루아, 베일리스

기타주류 - 필라이트 / 일본발포주

이 같은 주세법상 구분에 대해서는 불만도 큽니다. 지금의 주세법상 구분이 일본의 영향을 받은 구분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풍정사계 춘' 같은 술은 우리 전통적인 구분에 따르면 약주가 아니라 청주 쪽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청주의 대표적인 술로 알려진 '청하'도 우리 전통 방식의 청주라고 보기에 어렵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18년전 `참나무통맑은소주`를 미국산 쌀로 만들어서인지 일품진로 18년산도 미국산 쌀로 만들었습니다.

다시 '일품진로' 얘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18년간 숙성되어 20만원에 팔리는 소주는 '참이슬'과는 다른 증류식 소주입니다. 첫째로 연속식 증류와 단식 증류라는 생산 방법이 다릅니다. 둘째로 희석식 소주가 타피오카 등 저렴한 수입 농산물로 만들어지는데 반해 증류식 소주는 우리 농산물(쌀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일부는 우리의 전통 제조방식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술인 것입니다.

그런데 원산지를 따지고 들어가면 우리나라 막걸리들도 취약합니다. 우리나라 막걸리들의 76%가 수입 쌀을 사용해서 막걸리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막걸리나 청주·약주 등을 만들 때 일본산 입국(누룩)을 사용하기 때문에 과연 이런 술이 '전통주'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전통주 업체들이 국산 쌀을 사용하고 자체적으로 누룩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는 희석식 소주 대신 우리 전통술을 국민들이 소비하도록 만들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술은 고유의 향을 가지고 있다"면서 "희석식 소주가 외국인들에게 소독약처럼 느껴지는 것은 고유의 향이 없기 때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태평양전쟁 시절 희석식 소주 공장이 군수용으로 사용됐다는 사실은 희석식 소주가 '술'보다는 '알코올'에 가깝다는 비판의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희석식 소주가 비록 우리 전통술은 아니지만 그래도 서민의 애환이 담긴 '국민술'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희석식 소주만큼 저렴하게 취할 수 있는 술도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희석식 소주가 당장 증류식 소주로 대체된다면 우리 국민들이 사랑하는 '폭탄주'를 마시기가 곤란해집니다(!) 폭탄주 문화는 외국인들이 보기에는 무식한 술문화이지만 이것도 어떻게 보면 고유한 한국의 문화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소주와 전통주 문제는 '대량생산'이냐 '장인정신이 담긴 소량생산'이냐는 식품산업의 근원적인 문제로 돌아갑니다. 우리 국민들의 술 소비가 줄고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희석식 소주에 대한 수요는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어보입니다. 반면, 증류식 소주나 전통주에서 다양한 대안이 나오고 있으나 이런 제품이 의미 있는 대안이 되려면 대량생산을 통해 품질을 높이고 가격을 낮추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러나 대량생산은 언제나 그 브랜드 고유의 색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 같은 어려움을 딛고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주가 될 브랜드의 등장을 기대해봅니다.

[이덕주 유통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