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박원갑]욕망은 부표처럼 이리저리 움직인다

웃는얼굴로1 2018. 3. 2. 00:24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유명한 멜로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는 연인의 변심에 이런 말로 되뇌인다. 하지만 권태기에 접어든 연인은 묵묵부답일 뿐이다. 인간이 합리적이라면 변심은 없다. 사랑은 상대방을 주관적으로 선호하는 것이다. 사랑이 그렇듯 일상적인 삶에서도 선호는 불변이 아니라 가변적이다.


나는 아파트를 이용개념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주위 많은 사람들이 재테크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치자. 처음에는 나의 생각이 유지되겠지만 계속해서 독야청청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소속 집단의 사고에 쉽게 동조해버리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모두가 ""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나만의 부동산과 삶에 대한 독특한 철학이 있지 않고서 말이다. 인간의 선호나 욕망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위 상황에 의해서 수시로 바뀌는 가변적인 존재다. 아침부터 잘 때까지 마주치는 상품 소비 광고는 나의 선호나 욕망을 수시로 바꾸도록 부추긴다. 언론에서도 당신의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라는 그럴듯한 구호로 돈벌이 욕망을 자극한다.


지난 10년 동안 무주택자였던 대기업 임원 최인석(53)씨는 최근 서울 강남권 아파트를 사고 말았다. 그것도 전세 보증금을 안고 집을 사는 갭투자 방식이다. 그가 투자한 금액은 집값의 30%4억 정도에 불과했다. 최씨는 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집을 살 생각이 없었다. 인구 고령화, 주택공급과잉, 금리상승 등으로 집값이 점차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집을 사더라도 기존 아파트보다는 상대적으로 가격메리트가 있는 분양을 받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예측과는 달리 집값이 급등하자 고심 끝에 집을 사기로 생각을 급히 바꾼 것이다. 최씨처럼 최근 강남권 아파트를 산 사람들은 고소득 무주택자들이 많다. 대치동의 한 중개업자는 무주택자들이 불안심리가 극에 달하면서 사자로 돌변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갭투자로 아파트를 사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성수기인 겨울방학이사철에도 전세가 잘 나가지 않는 경우도 많다. 갭 투자는 시장에 전세를 공급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갭투자는 전세 지렛대를 활용해 시세차익을 노리는 전형적인 투기적 행위다

 

사실 처음부터 투기를 작정하고 부동산시장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드물다. 많은 경우 애초에는 이용 목적으로 접근했다가 여차 여차한 상황이 만들어지면서 투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1830~1850년대 미국에서 농장 주인들은 처음에는 면화를 경작하기 위해 농지를 매입했지만 땅값이 오르자 생각이 달라졌다. 자본이득을 노리고 농장을 저장 잡힌 뒤 빚을 더 내 투기 대열에 뛰어들었다. 토지 시장이든, 아파트 시장이든 처음부터 끝까지 100% 실수요자란 없다. 현재까지만 실수요자인 것이다.

 실수요자도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지 투기적 수요로 돌변할 수 있다. 주식시장에서도 주가가 폭등하기 시작하면 고배당주 투자자를 자처하던 사람도 성장주에 손을 댄다. 세상만사가 그렇듯 인간의 마음도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부표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가 품고 있는 욕망은 가슴 저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욕망이 아닐 수 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이 나의 욕망은 타자(다른 사람)의 욕망이다이라고 말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우리의 욕망에는 타자의 욕망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