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박원갑]‘야누스의 얼굴’ 빚

웃는얼굴로1 2018. 3. 1. 22:14

옛날에도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라는 속담에서 보듯 돈의 힘은 대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소불위의 위력을 발휘하는 요즘에 비하면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오늘날 금융 자본주의는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상이다. 돈은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반지처럼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다.

 

절대반지만 있으면 욕망하는 것이 쉽게 내 것이 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나에게 주어진 돈이 없다. 이 때 남의 돈, 즉 빚을 쉽게 떠올린다. 빚은 나의 욕망을 쉽게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지렛대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빚을 낼 때 머릿속에서 미래를 밝게 그린다. 투자의 성공 시나리오만 가득 찬다. 행운까지 따라 올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리스크는 무시해버린다. 운은 과대평가하고 위험은 과소평가하는 셈이다. 미래에 대한 지나친 낙관주의는 자기 과신으로 쉽게 이어진다. 그 결과 과도한 빚을 끌어들여 무리한 배팅을 감행한다. 가격이 오를 때에는 빚이 많을수록 수익도 커진다.


그러나 투자는 항상 성공만 하는 게 아니라 실패도 있는 법이다. 실패를 해도 내 돈이 많이 남아 있다면 충격은 덜하다. 하지만 투자금액의 상당 부분이 빚이라면 나락으로 쉽게 떨어진다. 빚은 잘만 쓰면 영화 워낭소리의 누렁이 소처럼 내가 원하는 수익을 올리는데 큰 힘이 되지만, 지나칠 때 파멸을 부르는 괴물이 된다는 얘기다. 경제사학자인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학교 교수가 경제의 핵심은 수익과 부채의 균형이라고 말했던 것도 이 때문이리라.


집 가진 가난한 사람을 뜻하는 하우스 푸어 문제도 결국 빚의 문제다. 내 돈으로 내 집 사는 사람에게 하우스 푸어란 없는 법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부채주의 시대(Debtism, 빚으로 수익을 내서 빚을 갚는 시대)’는 외줄타기 광대처럼 조마조마한 삶의 연속이 될 수 밖에 없다. 한 때 빚을 갚는 게 돈을 버는 것이라는 빚테크라는 말이 있었다. 빚테크는 집값이 크게 오를 때 남의 자본을 최대한 끌어들이는, 말하자면 지렛대를 통해 투자수익률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다. 부동산 대세 상승기에는 빚테크도 유효한 방법으로 칭송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값이 크게 오르기 힘든 저성장체제에서 과도한 빚은 자신을 몰락으로 내몰 수 있다.


물론 부채라고 해서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베스트셀러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 유명한 로버트 기요사키는 신용카드 빚과 투자를 위한 빚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령 소비를 위해 쓰는 신용카드 빚은 나쁜 빚’, 임대료를 받기 위해 건물을 구입하는 빚은 좋은 빚이라고 했다.


그는 좋은 빚을 활용해 투자한 주거용 부동산과 상업용 부동산이 모두 1400채에 이른다. 투기 목적보다는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노린 부동산 투자다. 하지만 최근에 그가 운영하는 회사의 파산소식이 들려왔다. 파산 이유야 어떻든, 부자 아빠가 되기 위해 벤치마킹에 나섰던 평범한 샐러리맨들 입장에서는 배신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기요사키의 명언도 가려서 들을 필요는 있는 것 같다. 소비를 위한 빚이든, 투자를 위한 빚이든 적정량이 중요한 것이다. 아무리 좋은 목적으로 돈을 빌리더라도 빚이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바위덩어리라면 그것은 약이 아니라 독이 된다.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집을 살 때에도 집값의 30% 이상 빚을 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큰 빚을 내서 내 인생을 돌려놓을 한 번의 대박을 꿈꾸는 가. 그런 유혹을 떨치기 어려울 때 이런 격언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빚은 남을 위해 사는 인생이지만, 저축은 나를 위해 사는 인생이다.” 자칫 영혼의 감옥이 될 수 있는 부채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