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다니는 최민준(가명·37)씨는 지난달 ‘6·19 부동산 대책’ 발표 후 크게 실망했다. 그동안 모은 돈과 은행 대출을 합해 서울의 소형 아파트를 마련하려고 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부부 합산 연소득이 1억원이 넘는 탓에 서민·실수요자에 포함되지 않아 대출 문턱이 더 높아졌다.
이달 3일부터 서울 등 청약 조정 대상지역에선 정부가 정한 서민·실수요자 기준(무주택 세대주, 부부합산 연소득 6000만원 이하, 주택가격 5억원 이하)에 들지 못하면 강화된 대출 규제가 적용된다.
매매에서 전세 시장으로 눈을 돌려도 힘든 건 마찬가지. 최근 전세가는 매매가보다 훨씬 가파르게 상승했다.
◆ 실수요자들 “내 집 마련 더 어려워”
서울과 부산 등 조정 대상지역에서 집을 살 때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기존 70%, 60%에서 각각 10%씩 낮아진 기준이 적용된다.
서민·실수요자에겐 적용되지 않는다고 정부는 강조했지만, 정작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이 더 어려워졌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민·실수요자로 규정하는 3가지 기준을 모두 만족하지 못할 경우 최씨처럼 대출 규제가 이전보다 강화되기 때문이다. 최씨는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값은 대부분 5억원이 넘어가는데, 단순히 집값과 부부 합산 소득을 기준으로 실수요자 기준을 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내 집 마련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세우게 됐다”고 말했다.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청약 조정 대상지역에서 집을 구하려는 실수요자들 중에는 강화된 대출 규제를 받게 돼 억울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이번 대책에 실수요자와 투기 수요를 구분하는 기준에 자산이 포함되지 않아 고정 수입은 적어도 물려받은 재산이 많은 이른바 ‘금수저’들이 서민·실수요자에 포함될 수 있는 함정이 있다.
이 때문에 서민과 주택 실수요자를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택 실수요자는 아직 정의가 완전히 합의되지 않은 용어”라면서 “필요하다면 충분한 논의를 거쳐 정하고 그에 맞게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김재언 미래에셋대우 부동산팀장은 “대출규제로 갭투자 등 소규모 투기세력은 어느 정도 차단될 수 있겠지만 시장의 ‘큰 손’인 자산가들은 대출 규제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며 “오히려 은행 대출이 필요한 서민층만 내 집 마련을 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 최근 10년 서울 아파트 전세가 72% 상승…“전세도 만만찮아”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진 실수요자들이 전세 시장으로 눈을 돌려봐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최근 서울에서 전셋집을 찾고 있는 김재홍(가명·31)씨는 “서울 아파트값이 너무 비싸 우선 전세를 알아보고 있는데 마땅한 전셋집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최근 전셋값은 매매가보다 더 가파르게 올랐다. KB국민은행 자료를 보면 최근 10년간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72% 상승했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매매가가 10.56% 오른 것과 비교하면 상승폭이 7배가량 크다. 전국으로 범위를 넓혀봐도 마찬가지. 같은 기간 전국 아파트값은 29.22% 올랐는데, 전셋값은 68.74%나 올랐다.
이렇다 보니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2012년 60.2%였던 전국 평균 전세가율은 지난 달 75.5%로 상승했다. 서울의 경우엔 오름폭이 더 가파르다. 같은 기간 51%에서 72.4%로 21.4%포인트 늘었다.
김재언 팀장은 “지방은 주택 공급이 많아 전세 시장이 안정됐지만, 서울과 수도권의 경우 재건축과 재개발 이주 수요가 있어 불안 요인이 있다”며 “서울은 여전히 수요에 비해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실제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에 2만6451가구가 입주하는데, 이는 지난 6년간 입주물량 평균치(2만7267가구)를 밑돈다.
고준석 센터장은 “서울을 놓고 보면 올해 하반기에 가을 이사 수요에 재건축 이주 수요까지 더해져 전세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정부가 급한 대로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통해 민간 주택 공급 부족분을 해결한다고 하지만, 당장 공급 문제를 해결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김민형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공임대를 지금부터 늘린다 해도 실제 입주까지 적어도 2년 이상 걸리는 시차 문제가 있다”며 “또 공공임대주택은 일반 분양 주택과 수요층이 다르기 때문에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재언 팀장은 “공공임대주택이 서민 주거안정에는 기여하겠지만, 분양 주택을 원하는 실수요자는 여전히 민간 아파트를 선호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서울과 수도권 등의 주거난을 공공임대주택만으로 해결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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