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붙어 있는 서울 강남의 지하상가가 문 하나를 두고 완전히 다른 두 얼굴로 희비가 교차하고 있다.
서울 지하철 7호선 반포역 지하상가와 3∙7∙9호선 환승역인 고속터미널역 지하상가. 41개 상가 점포 중 2곳만 문을 연 반포역 지하상가가 을씨년스러운 반면, 2011년 새롭게 리모델링한 고속터미널 지하상가는 620개 모든 점포가 상점과 음식점들로 꽉 차 성업 중이다.
◆ 반포역 지하상가 2008년 입주…아직 상권 조성 안 돼
무슨 이유 때문에 나란히 붙은 지하상가가 이렇게 대조적일까.
반포역 지하상가는 2008년에 입주를 시작했다. 당시 상록이라는 회사가 서울도시철도공사로부터 임대관리를 위탁받았다. 새로운 상권이 형성될 것이란 예상에 상인들이 들어왔다. 하지만 당시 월 임대료는 주변 시세와 비교해 부담스러운 3.3㎡당 20만원 정도에 책정됐다. 결국 상가 점포를 다 채우지 못했고 상권 조성에도 실패했다. 상인들도 임대료를 제때 내지 못해 힘들어했고, 위탁업체마저 2010년 부도났다.
상인들은 그로부터 약 2년 후 임차인의 권리를 빼앗기고 쫓겨났다. 변호사도 고용하고 탄원서도 제출하는 등 상가를 지키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상인들은 끝내 수천만원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지하상가를 떠나야 했다.
이후 2013년 말부터 서울도시철도공사가 다시 임차인을 받고 있지만, 점포 두 곳만 영업 중이다.
인근 상인들에 따르면 현재 7년 전과 비슷한 3.3㎡당 20만원 수준의 임대료가 책정돼 있다. 반포역 인근 공인들에 따르면 반포역 일대 상가 월 임대료는 전용 3.3㎡당 10만~50만원 정도로 임대료가 비싼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인근 상인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유동인구와 지하상가란 점을 고려하면 비싸다고 말한다.
반포역 지하상가 상인 오석길(69) 씨는 “공실이 이렇게 많은 데도 수년간 방치한 서울도시철도공사에 문제가 많다”며 “상권이 형성되지 않으면 임대료를 낮춰서라도 상가를 채우는 게 우선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공사 측에 계속 문의해도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돌아온다”고 했다.
◆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공실 ‘0’…고속터미널역 하루 이용객 19만명
반포역 지하상가와 이어진 서울고속터미널 지하상가는 정반대 상황이다. 620개 점포 중 빈 곳은 하나도 없다. 1980년부터 형성된 서울고속터미널 지하상가는 많은 유동인구 덕에 상권이 제대로 유지되고 있다.
서울고속터미널 지하상가를 관리하는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에 따르면 2011년 전체 지하상가 리모델링을 했는데, 이때 상권이 더 살아났다. 최근에는 엔터식스가 3호선 지하상가를 리모델링해 개장했다.
고속터미널 지하상가는 서울 시설관리공단이 ㈜강남터미널지하쇼핑몰에 위탁을 맡겨 관리·운영하고 있다. 임대료 책정은 매년 감정평가를 거쳐 이뤄진다. ㈜강남터미널지하쇼핑몰에 따르면 임대료는 3.3㎡당 30만원 정도다.
서울도시철도공사의 경우 홈페이지에서 상가 입찰 공고를 해 입찰을 받고 있다. 하지만 매년 임대료 감정평가를 받고 있고, 그 수준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는 게 공사 측의 설명이다. 경기가 나쁘다고 임대료를 쉽게 내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서울도시철도공사 관계자는 “빈 상가는 계속 입찰 공고를 내서 채우려고 한다”며 “상인들 사정은 이해하지만, 원칙이 있다 보니 임대료를 공사 마음대로 내릴 상황이 안 된다”고 말했다.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반포역 하루 평균 승·하차 이용객은 1만2754명이었다. 같은 기간 19만3861명을 기록한 고속터미널역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다.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운영하는 157개 역 중에서도 일평균 이용자수는 125번째를 기록할 정도로 이용객이 적다.
◆ “상권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임대료 책정해야”
전문가들은 공실이 많은 가장 큰 이유는 상권 상황에 맞지 않은 고임대료 탓이라고 설명했다. 상권 조성이 안 됐다면 어떻게든 임대료를 조정해 상인들을 끌어와야 한다고 했다. 상권이 살고 난 뒤 임대료를 점차적으로 올려도 된다는 것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상권 상황에 적합한 임대료라면 임차인이 들어오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반포역의 경우) 유동인구가 적은데 임대료 조정도 안 되다 보니 상인들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최문혁 기자 mo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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