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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알인줄 알았는데… ” 가계도 기업도 부동산 덫에 허우적

웃는얼굴로1 2011. 4. 12. 17:24

‘부동산 거품’의 그늘

[세계일보]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감합니다.” 성남시 분당구 ‘판교 알파돔시티’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대형 A건설사 관계자는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공사를 계속 진행하자니 위험이 너무 크고 아예 접자니 그동안 투자한 돈에 미련이 남는다는 것이다. 이 사업이 시작된 2007년만 해도 웬만한 건설사들은 모두 한 번씩 알파돔시티 사업을 검토할 정도로 매력덩어리였다고 했다.


이런 고민을 겪는 건설사는 A사뿐이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서울 용산역세권개발사업이나 양재동 파이시티 개발사업 참여 건설사들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한때 ‘황금알’로 불렸던 프로젝트파이낸싱(PF) 개발 사업들이 지금은 줄줄이 애물단지로 전락해 건설사의 목줄을 죄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빚에 발목 잡힌 가계와 마찬가지로 요즘 건설사들의 처지는 2000년대 부동산 불패신화가 낳은 ‘일그러진 한국 경제의 자화상’이다. 실물이 뒷받침되지 않는 버블은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고 버블의 크기에 따라 파열음은 달라진다. 그 파장에 따라 가계, 기업, 금융권이 동반 부실화하는 ‘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땐 좋았는데”…부동산 거품의 그림자

‘판교 알파돔시티’는 국내 최대 상업주거복합단지다. 롯데건설 등 8개 건설사를 포함해 총 17개 투자자가 컨소시엄을 꾸려 이 사업에 참여 중이다. 사업 부지는 13만8000㎡에 달하고, 사업비는 땅값 2조3601억원을 포함해 총 5조671억원에 달한다. 예정대로라면 오는 9월 사업부지 내 신분당선 판교역 개통과 맞물려 이곳에서 주상복합아파트와 호텔, 상가 등의 공사가 한창인 시기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로 공사는 첫 삽도 못뜬 채 기약없이 멈춘 상태다. PF를 통해 조달키로 한 자금이 문제였다. PF는 향후 수익이 나면 갚기로 하고 빌리는 돈인데, 부동산 거품 붕괴로 수익성에 의문이 제기되자 돈을 빌리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공사 지연으로 가장 곤란해진 건 총 32.7%의 지분을 갖고 공사참여 대가로 빚 보증을 서기로 한 건설사들이다. 특히 건설사 등은 공사가 중단되기 직전 땅값 6372억원을 치렀는데, 브릿지론이라는 급전을 쓰면서 화를 입고 있다. 이 돈은 3∼6개월마다 상환날짜가 돌아오는데,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한 채 연장에 재연장을 하는 중이다. 최근엔 이마저도 버티지 못해 새로운 대출을 받아 빌린 돈 가운데 일부를 갚았다.

건설사들은 빚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선분양을 통해 자금을 회전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땅값 잔금을 내야 한다는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 사업 정상화를 위해선 더 큰 빚을 내야 하는 악순환에 다시 빠져야 한다는 얘기다.

A건설사 관계자는 “공사후 미분양이 날 게 불보듯 뻔한 상황에서 어떻게 공사를 당초 계획대로 끌고 갈 수가 있느냐”며 “하지만 이미 사업에 투자한 돈이 있기 때문에 사업을 포기할 수도 없고 참 난감하다”고 말했다.

멈춰버린 알파돔시티 건설사들의 자금 조달 문제로 공사가 중단된 성남시 분당구 ‘알파돔시티’ 사업부지. 수만평은 되어 보이는 공터엔 오가는 사람 하나 없어 썰렁한 모습이었다.
이희경 기자

 

빚을 내 빚을 갚다…악순환에 빠졌다

PF 개발사업에 발을 들여 놓고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건설사는 A사뿐이 아니다. 지난해 사업 좌초 위기까지 갔던 용산역세권개발사업 참여 건설사들 역시 마찬가지 길을 걸고 있다.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B사 관계자는 “삼성물산이 갈등 끝에 주간사 자리를 내놓는 등 모양새는 좋지 않게 사업에서 한발 뺐지만 용산사업은 여전히 사업성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에서 내심 부러운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용산역세권사업은 그나마 최근 최근 자산 선매각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등 사업 재개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양재동 파이시티 PF 사업은 ‘건설사들의 무덤’으로 불리며 여전히 난항 중이다. 양재동 화물터미널 용지 9만6017㎡에 복합유통센터를 짓는 이 사업은 2005년 토지 매입후 2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됐던 인허가가 4년으로 늘면서 건설사들이 부담하는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늘었다. 당초 브릿지론으로 차입한 사업 자금은 8620억원이었지만 인허가가 지연되면서 납부를 몇 차례 연장하자 원리금 합계가 거의 1조원에 육박하게 됐다. 이 부담은 결국 시공사인 대우자동차판매와 성우종합건설로 전가됐고, 결국 이를 견디다 못한 두 건설사는 워크아웃을 겪었다.

진단과 해법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선진국은 부채 조정이 이뤄진 반면 우리나라는 소득증가에 비해 계속 늘고 있어 우려를 사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식 한국국제금융학회 회장(연세대 경제학과 교수)은 “현재와 같이 가계부채와 건설사 부실 PF를 해소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 어려운 때는 이 같은 부실이 경제계 전체로 전이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며 “기준금리 역시 갑작스러운 상승보다는 천천히 높여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모 기자 jmk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