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투자

요즘 '뜨는 동네'는 "조물주 위에 건물주"..서울시 해결책 통할까

웃는얼굴로1 2016. 3. 1. 10:18

서울 종로구 서촌(西村)에서 40년째 쌀가게를 운영하는 최모(59)씨는 작년 9월 상가 주인으로부터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2년 주기로 체결한 임대계약 기간이 아직 9개월이나 남은 상태였다.

 

최씨는 “건물 주인이 바뀐 지 한 달 만에 나가라는 통보를 하더니 아예 월세를 안 받더라”며 “(건물주가)계좌번호도, 전화번호도 알려주지 않아 월세금을 5개월째 법원에 공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에 35만원이던 월세를 300만원으로 올려서 받겠다고 하더니 강제로 퇴거 조치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내왔다”며 “2월 초엔 주인이 근로자들을 보내 갑자기 건물을 철거하겠다며 나가라고 압박했다”고 말했다

 

최씨의 쌀 가게 인근 생선구이집, 빵가게, 세탁소 등도 비슷한 사정으로 수 십 년째 살아온 생활터전을 하루아침에 잃게 될 위기에 처했다. 19년 동안 한 가족이 3대째 운영하던 인근 빵집은 건물주와 법정소송까지 했지만 결국 지난 1월 강제 퇴거당했다. 서촌이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많은 특색있는 상권으로 인기를 끌면서 임대료가 치솟고, 기존에 장사하던 영세 상인이 쫓겨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서촌 외에도 종로구 북촌, 용산구 해방촌, 성동구 성수동, 마포구 성미산마을 등 일명 ‘뜨는 동네’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임대료가 급증한 서울 대학로에서는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생기기까지 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기존에 낙후했던 지역 상권이 갑자기 인기를 끌면서 거대 자본이 들어오면서 임대료를 올리고, 기존 주민과 상인, 문화·예술인 등은 이를 감당하지 못해 쫓겨나는 현상을 말한다. 지주계급이나 신사계급을 뜻하는 젠트리(gentry)에서 파생된 말로 1964년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젠트리피케이션의 폐해가 심해지면서 서울시는 자산화 전략을 본격화하고 젠트리법 법제화를 추진하는 내용의 종합대책을 지난 23일 발표했다. 대학로·인사동·성미산마을, 신촌·홍대·합정, 북촌·서촌, 해방촌, 세운상가, 성수동 등 6개 지역에서 직접 부동산을 사들여 핵심시설을 영세 소상공인이나 문화예술인에게 싸게 임대하거나 건물주와 상인 간의 상생협약으로 이를 해결하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서울시는 이를 위해 올해 199억원의 예산안을 편성했다. 또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과 '젠트리피케이션 특별법' 제정을 국회에 건의할 계획이다.

 

서울시의 대책 발표에 해당 지역 상인들은 “얼마나 효과가 있겠느냐”며 시큰둥한 반응이다. 서촌에서 쌀가게를 운영하는 최씨는 “건물주에게 임대료 인상 자제 동참을 제시하는 상생협약은 결국 돈이 문제인데 일보 양보하고 나설 건물주가 얼마나 있겠느냐”며 “서울시에 신고도 하고 접수도 해봤지만, 공무원들은 신청을 받기만 할 뿐 몇 달째 연락이 없다. 사적 재산이라 시에서도 강제로 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맘상모(맘편히 장사하고픈 상인 모임)는 건물주와 상인 간의 상생협약에 대해 "건물주와 상인 간 상생협약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해결하라는 서울시 대책은 탁상행정”이라며 “종로구의 경우 건물주-상인 협약이 있었음에도 서촌에서는 상인들이 쫓겨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영희 맘상모 사무국장은 "상생협약이 정말 가능하다면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심화하고 있는 서촌지역부터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또한, 부동산 매입, 노후 상가 건물주에 보수 비용 지원 등의 대책은 예산 문제가 걸려 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서울시의 대책은 변화하는 경제적 여건 및 도시 발전 등을 이해하지 못한 일시적인 방안인 것 같다”며 “이 지역의 상가 매매가격이 평당 5000만원을 넘어선 점을 고려하면 하나의 상권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선 엄청난 예산이 요구될 것이고 이 대책이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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