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1세대 디벨로퍼..이형수 건영 회장의 '돈' 이야기

웃는얼굴로1 2015. 10. 24. 20:02

러닝머신 위에서 일하는 CEO, 그의 2亡3起
사업 잘나가다 부도ㆍIMF로 좌절
진로 고민하다 시행ㆍPM사업으로 성공
직선적인 성격 보완하려 바리스타 공부도

 

[아시아경제 김민진 기자] #자수성가한 이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잠이 없고, 성격이 급하다. 일하는 게 특기이자 취미다. 큰 돈은 잘 써도 적은 돈 쓰는 데는 서투르다. 직장에서 승승장구하지만 직선적인 성격과 주체 못할 끼(?) 탓에 결국 샐러리맨 생활과는 결별한다.

 

법정관리 상태였던 LIG건설(현재 사명은 건영)을 인수한 이형수 건영 회장은 디벨로퍼 1세대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중견건설회사 '회장님'이 됐고, 돈도 벌만큼 벌었다.

 

이형수 건영 회장은 부족한 운동량을 채우고, 체중을 관리하기 위해 틈틈이 런닝머신 위에서 일을 본다.

이형수 건영 회장은 부족한 운동량을 채우고, 체중을 관리하기 위해 틈틈이 런닝머신 위에서 일을 본다.
디벨로퍼 1세대인 이형수 건영 회장은 "사업초기엔 돈을 보고 뛰었지만 지금은 일의 성취가 가장 큰 목표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디벨로퍼로서 기념비적인 프로젝트를 남기고, 회사를 종합부동산개발, 서비스회사로 키우고 싶다고 했다.

 

디벨로퍼 1세대인 이형수 건영 회장은 "사업초기엔 돈을 보고 뛰었지만 지금은 일의 성취가 가장 큰 목표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디벨로퍼로서 기념비적인 프로젝트를 남기고, 회사를 종합부동산개발, 서비스회사로 키우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도 가난했던 시절은 있었다. 소위 'SKY'라 불리는 대학을 나왔지만 돈이 없어 3평 단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건설회사에 취업해 돈 벌러 사우디아라비아 현장으로 갔다. 사업하다가 두번 망했고, 다시 일어섰다. '헬조선', '삼포세대'라는 자조섞인 수식어가 따라붙는 요즘 청년들에게 25년 전 그의 청년 창업스토리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갈까.

 

◆샐러리맨 접고 33살에 창업

 

= "바리스타 교육을 7년 전에 받았어요. 저는 원래 토목쟁입니다. 성격이 직선적이라 뒤에다 숨겨 놓고 말을 못해요. 좋게 얘기하면 선이 굵지만 사업하는 데는 좋지 않은 성격이죠. 한 템포 늦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한 학기 동안 아내와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어요."

 

이 회장을 만나러 건영 본사가 있는 서울 역삼동 카이트타워 13층에 들어서자 은은한 커피 향이 집무실을 감쌌다. 하이엔드급 아라비카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시는 건 그가 말하는 호사(豪奢) 중 하나다. 이 회장은 매일 아침 회사 임원들에게 직접 내린 커피를 대접한다. 그렇다고 늘 회의내용까지 화기애애한 건 아니다.

 

고려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그가 택한 회사는 당시 잘나가던 건설회사 삼호다. 1982년 12월 입사해 곧장 사우디아라비아로 갔고 1987년에 돌아왔다. 주택사업부로 발령받아 1990년 1월 퇴사할 때까지 7개의 프로젝트를 맡아 했다.

 

이 회장은 지주공동개발사업(토지주를 설득해 사업하고 이익과 손실을 공유하는 개발사업방식) 수주를 많이 했는데 영업실적이 좋았다. 시키지도 않은 직장주택조합 사업을 벌여 석 달 만에 삼호와 검찰, 당시 건설교통부 직원 200명을 조합원으로 모았다. 그게 현재 경기도 안양 인덕원사거리 부근에 있는 삼호아파트다. 1988년 말에는 요지에 있던 처이모부의 땅을 회사로 끌어와 삼호오피스텔을 지었다.

 

"수완을 발휘한 덕에 칭찬과 포상도 받았지만 반대급부로 '이상한 놈' 소리도 듣었어요. 그때가 민주화 바람이 불며 노동조합이 태동하던 시기였는데 그러다 노조위원장 하는 거 아니냐는 둥 임원들이 태클을 걸더군요. 당시 건설회사 기업문화는 직장상사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때였는데 결국 이사에게 대들었죠."

 

삼호는 1984년 대림산업에 피인수됐다. '이사님 같은 사람 때문에 삼호가 망했다. 정신 좀 차리시라'고 한 이 회장은 특별승진 대상에서 누락됐다. 그는 1990년 1월1일부로 사표를 던졌다. 막 33살이 되던 해다. 회사에선 그해 5월까지 월급을 줬다. 돌아오라고 했지만 그는 결심을 꺾지 않았다.

 

"토지주를 설득해 지주공동개발사업 형태로 경기도 구리 최초의 고층아파트 231가구를 지었습니다. 그렇게 시행사업을 시작했어요. 돈 없이 시작한 사업이지만 자고 나면 돈이 생길 정도였죠. 그때는 눈에 보이는 게 없었어요."

 

결혼 당시 장인의 결혼승낙 조건은 사업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약속을 깼다. 특기를 살린 덕에 사업은 성공을 거듭했다. 그러나 위기가 찾아왔다. 주택 200만가구 건설이 한창이던 때 건설자재가 딸리자 다른 공동주택 사업에 대한 인허가가 모두 묶였다. 각자대표로 종합건설사업을 시작했던 시기 부도를 맞고 빈털터리가 됐다.

 

◆두 번 망하고 재기

 

= 태국에 가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친형의 얘기를 듣고, 비행기를 탔다. 1994년 당시에는 태국을 거점으로 동남아 개발사업 붐이 일었고, 현대건설, 대우건설, 동아건설 등 국내 건설사들이 앞다퉈 이 지역에 지사를 설립했다. 이 회장은 경험을 살려 대형건설사의 PM(프로젝트관리)사 역할을 했다.

 

"태국에 진출한 국내 건설사 프로젝트의 인허가 문제를 조율해줬죠. 신뢰가 생기면서 태국 총리, 총리 부인 등 실세와 친분이 쌓였습니다. 2년 반 정도 지내면서 그 나라에선 유명인사가 됐고, 사업도 몸에 익던 시절이었어요."

 

이번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발목을 잡았다. 현지 은행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상상 못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태국에서 번 돈이 고스란히 날아갔다. 중학교 음악교사 생활을 접고 현지에 와 있던 아내, 아이들과 함께 다시 짐을 꾸려 서울로 왔다.

 

국내 사정도 여의치 않았다. 3년간 해외에 있었던 공백도 컸다. 서울대에서 건축을 전공한 가수 한상일씨와 함께 엔지니어링회사에 적을 두고 암중모색했다.

 

분양대행, 시행, PM 등 사업 진로를 두고 고민하다 결국 PM을 겸한 시행사업으로 방향을 잡았다. 현대건설과 안양에 880가구 프로젝트를 하고 중랑구에서 태영의 '데시앙' 브랜드 1호 아파트 사업 PM을 했다. 토지주들을 설득해 한남동 현대홈타운(현 힐스테이트) 프로젝트도 해결했다.

 

"지주공동개발사업은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기본이 정직입니다. 솔직하게 다가서도 처음엔 경계하지만 누구나 본능적으로 진심을 알아봅니다."

 

그가 말하는 최고의 경험은 상도동 134프로젝트다. 이 사업은 무허가주택 주민들과의 마찰로 10여년간 답보상태였고, 그 사이 시공사가 여러 차례 바뀌고, 시행을 대행하던 대표가 구속되기도 했다. 이게 바로 지금 이 지역의 랜드마크인 2441가구 규모의 대단지 아파트 상도동 현대엠코타운이다.

 

"불신이 팽배해 있던 상태였어요. 사무실 차려놓고 한 명이 오건, 두 명이 오건 계속 설명회를 열었습니다. 내가 깡패인 줄 아는 사람도 있었지만 매일매일 접촉하고 거짓말하지 않으니 결국은 믿어주더군요."

 

그의 아내인 김원경 부회장은 8년 전 교편을 접고, 회사 일에 합류했다. 김 부회장이 교직에 있을때 대외적으로 남편의 직업은 '건설계통 종사자'였다. "디벨로퍼라고하면 사기꾼 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했던 거죠. 목표가 돈이 되면 큰 디벨로퍼가 될 수 없어요. 돈은 부산물입니다. 저도 처음엔 돈을 벌러 사우디에 가고, 이 일도 시작했지만 성취가 주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 지 알았아요. 주고받는 게 확실해야 합니다. 저는 전문성을 주고, 상대방은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그게 디벨로퍼입니다."

 

올해 건영을 인수한 이 회장은 종합부동산 서비스회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 "내년 하반기부터는 힘든 시기가 올 겁니다.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요. 그래서 신수종 사업을 구상했고 조만간 발표할 거에요. 디벨로퍼는 여러 가지를 아우르고 융합해야 합니다. 대형 건설사가 너무 공룡화돼서 갑이 됐는데, 저는 건설사를 운영하면서도 절대 갑질은 하지 않을 겁니다."

 

두 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 내내 이 회장의 장녀인 건영 경영기획팀 이현지 과장은 아버지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화외고 1학년 때 스위스로 유학 가 호텔경영을 전공하고, 독일에서 잘나가던 호텔리어였던 딸이 13년 만에 돌아와 곁에 있으니 든든해 보였다.

 

*건영 - 1977년 ㈜건영주택으로 설립돼 2006년 LIG그룹에 인수합병(M&A)됐고 이후 2011년 회생절차를 개시했다. 올해 이형수 회장이 회사를 인수한 후 회사명을 다시 건영으로 바꿨다.

계열사인 ㈜건영이엔씨, ㈜씨티디벨로핑, ㈜씨티F&B 등 종합부동산 개발ㆍ서비스회사를 지향하고 있다. 개발사업을 비롯해 토목, 주택, 건축, 해외사업 등 다양한 사업분야의 노하우를 확보한 종합건설회사다.

 

김민진 기자 enter@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