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투자

재개발 상가 세입자의 절규

웃는얼굴로1 2015. 10. 11. 20:27

#서울 종로구 돈의문뉴타운지구 내 정비구역에서 17년 동안 카페를 운영 중인 A씨(60)는 언제 거리로 내쫓길지 모르는 신세로 전락했다. 지난달 7일 조합에서 언제든 강제 퇴거를 진행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보상비 명목으로 5000만원이 나왔지만 이 돈으로는 다른 곳에서 장사를 시작하기에 터무니없이 모자란다. 그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10여명의 상인은 이곳을 떠나지도, 계속 머무를 수도 없는 상태다.

 

A씨의 사례처럼 돈의문뉴타운지역은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상가임차인에 대한 보호대책이 사실상 요식행위에 불과해 관련분규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일각에선 철거 세입자 문제로 ‘제2의 용산참사'를 우려하는 목소리마저 불거진다. 

 

◆'제2 용산참사' 벌어질 판

 

서울시는 내년 6월 조합으로부터 기부채납 받은 이곳에 역사공원을 건립할 예정이다. 지난 2013년 12월 "용산참사와 뉴타운 재개발, 각종 철거비리 등을 기억할 수 있는 박물관이 필요하다"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사회적 약자의 애환을 공유할 공간을 조성해 재발을 방지하겠다는 게 박 시장의 의도지만 정작 A씨와 같은 상인들이 겪는 문제에선 눈을 돌렸다. A씨는 "시와 조합 등에서는 수수방관하는 태도로 일관한다"며 "현실적인 보상방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종로구 돈의문뉴타운지구. /사진=성동규 기자

 

시에선 이곳의 전통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일부 상가를 존치, 공공재산이 된 만큼 공개경쟁 입찰을 통해 분양자를 결정할 예정이다. 기존 상인들에게 가산점을 주겠다고는 했으나 전 재산과도 같은 가게를 빼앗긴 이들이 경쟁력 있는 입찰액을 써내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조합 역시 상인들에게 돈의문뉴타운단지 내 상가를 조합원 분양가로 주겠다고 제안했으나 평당 3000만원 대다. 만약 A씨가 운영 중인 규모로 분양을 받으려면 약 15억원이 필요해 현실성이 전혀 없는 셈이다.

 

A씨는 자신을 비롯해 "상인들은 보상금을 더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영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대책을 세워 달라는 것"이라며 "이곳 상인들은 졸지에 자신의 가게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장사하는 모습을 봐야 하는 꼴"이라고 가슴을 쳤다.

 

그는 이어 "남겨진 상인 대부분이 이곳에서 수억을 투자해 20년 이상 장사를 하며 단골을 만든 게 재산의 전부"라며 "이곳을 떠나면 창업하는 것과 같다. 더욱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쫓아내면 죽으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러다 제2의 용산참사가 재현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노동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2015년 상반기 노동시장 평가와 하반기 고용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대비 올해 상반기 자영업자 감소폭이 무려 100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 A씨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특히 이곳에 남겨진 상인의 평균 연령대는 60대로 재창업에 실패했을 때 실질적으로 취업도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은 몰락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어 그야말로 생사의 갈림길에 선 형국이다.

 

/사진=성동규 기자

 

◆관련법 사각지대 놓인 지역상인들

 

2009년 용산참사 당시에도 조합측이 상가 임차인들에게 휴업보상비 3개월분과 주거이전비 4개월분을 보상금으로 제시하자 세입자들이 이에 반발하면서 충돌이 발생했다.

 

 현행법규상 상가 임차인이 건물철거 때 보상받을 수 있는 건 4개월 치 영업손실비와 이사비가 고작이다.

 

철거에 따른 재산상실이나 위자료 등은 일반 민사소송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상가는 임차인이 입주할 때 전 임차인 등에게 지급한 권리금의 액수가 크지만 재개발 등으로 철거를 당하면 아예 회수할 길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를 중재자로 조합과 인허가관청인 종로구, 상인 등을 모아 협상을 통해 이주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사전협의체가 구성됐다. 그러나 이마저도 형식적으로 운영되면서 공무원들은 조합의 확성기 역할만 해 상인들의 반발심만 키웠다고 A씨는 주장했다.

 

일례로 상인들에게 사전협의체 회의 참석 공문을 회의날짜가 지난 뒤 통보했다. A씨는 "사접협의체는 조합의 강제철거 정당성을 갖추기 위한 절차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면서 "본래의 취지가 무색하게 운영되는 사실을 박 시장이 아는지 궁금하다"고 힐난했다.

 

또한 시에선 지난 4월 발표한 뉴타운·재개발 ABC관리방안에 따라 사업이 정체된 사업장 중 사업에 반대하는 토지 등 소유자 50% 이상이 밀집한 사업지는 기존 구역의 경계를 조정해 구역 분할을 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상인이 상권 등을 이유로 재개발사업을 반대하는 사례가 많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이는 애초 박 시장이 재개발 지역의 상인들과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할 의지가 있었는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사전협의체는 법적인 불이익을 받거나 용역에게 피해를 당하는 철거민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A씨 등은 이미 법적인 조치를 받아 더는 해줄 게 없다. 다만 조합의 강제집행 진행 전까지 최대한 중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재개발 지역 상인에 대한 보호방안 마련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박대원 상가정보연구소 소장은 "용산참사 때도 권리금 등의 문제 탓에 갈등이 불거졌다"며 "그 이후 6년이 지났지만 구제방안은 여전히 전무하다. 이는 시대의 기류에도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 소장은 "재개발 지역 내 상인의 숫자가 적지 않은 만큼 정부에선 대상과 범위를 국한하지 말고 법으로 보호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이들을 위해 대체상가를 마련하는 등 생계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더 대표는 "과거부터 재건축·재개발 후 상인들이 재정착할 수 있도록 조합과 협의가 이뤄지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면서도 "다만 기존 상인을 무조건 끌어안으라고 강제할 순 없겠지만 우선 선택권이나 동일 임대료 등 구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