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주택·인테리어

허브 꽃 가득한 ‘작은 파스텔 가든

웃는얼굴로1 2013. 8. 26. 00:19

이윤정 씨 가족이 손수 고친 강원도 양양 한옥

구불구불한 산길을 타고 한계령을 넘어 강원도 양양 오색약수터를 지나면 이윤정 씨의 '작은 파스텔 가든'이 나온다. 어릴 적 추억이 담긴 한옥을 손수 고쳐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가는 그녀의 집. 마당에 가득한 허브 꽃 화분들과 베이킹 작업실의 달콤한 쿠키 향이 반기는 그곳을 찾았다.

 

강원도 양양의 개량한옥은 이윤정 씨가 어릴 적 할아버지, 할머니를 따라 종종 와서 쉬어가던 집이었다. 여름이면 친척들이 모두 모여 아이들끼리 다락방에 옹기종기 앉아 놀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다. 이제 어른이 된 그녀는 인천에서 베이킹 숍을 운영하다가 올봄의 끝자락, 이 집을 새로 고쳐 부모님과 함께 이사했다. 두 달이 넘는 공사 과정을 거치고 막 새 단장을 마친 '작은 파스텔 가든'은 세 식구의 화사한 보금자리로 탈바꿈했다. 허브 화분에 마음껏 물을 줄 수 있고 햇볕도 얼마든지 쬘 수 있어 참 좋은 집. 바로 이곳에서 윤정 씨 가족의 새로운 일상이 시작된다.

↑ 강원도 산자락 아래 위치한 '작은 파스텔 가든'의 정경


허브와 꽃차에 대한 애정, 그녀를 전원으로 이끌다


어려서부터 미술을 했던 윤정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건강 악화로 도중에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던 것이다. 평생 그림만 그릴 줄 알았던 그녀는 한국에 돌아온 후 자연스레 진로를 선회했다.

"취미 삼아 외국서적을 찾아가며 혼자 쿠키를 굽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그게 제 직업이 됐어요." 빵과 쿠키를 굽는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린 것이 반응이 꽤 좋았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베이킹 숍을 차렸다. 베이킹 수업을 하고, 쿠키를 만들어 온라인으로 판매도 하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혼자 시작한 일이었지만 재미도 있었고 수입도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바쁘게 일하면서도 그녀는 배우고 싶은 게 생기면 먼 지방이라도 한달음에 달려갔다.

"4년 전, 인천에서 경북 봉화까지 '덖음 꽃차'를 배우러 다녔어요. 고목재로 만든 진열장에 알록달록한 색감의 꽃차가 진열된 사진을 보고 한눈에 반했죠." 단순한 계기로 시작했지만, 공부할수록 점점 꽃차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함박꽃'이라 불리는 산목련을 따러 강원도 평창까지 가서 산을 오르기도 했다. 그러다 허브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재작년, 가족이나 다름없던 반려견 '어리버리'가 세상을 뜨면서부터였다. "슬픔을 잊기 위해서 몰두할 곳이 필요했어요. 그때부터 엄마와 함께 제라늄을 키우기 시작했죠. 제라늄을 비롯한 허브들을 옥상에서 키웠는데, 영 마음에 안 차더라고요."

↑ 베이킹, 덖음 꽃차, 천연비누 제작 등이 이루어지는 윤정 씨의 아담한 작업실

↑ 꽃차로 장식한 소이 캔들


그녀는 친하게 지내는 지인 중 전남 강진에 혼자 내려가 허브를 키우며 사는 언니를 보면서 전원생활에 대한 꿈을 구체적으로 그려 나갔다. 처음에는 제주도에 집을 지을 생각으로 땅을 샀지만, 막상 가보니 여행지가 아닌 거주지로서는 자신에게 맞지 않은 것 같아 땅을 되팔았다. 다시 적당한 곳을 물색하던 차에 조부모님의 별장이었던 양양의 한옥이 떠올랐다. 마침 부모님도 딸의 결정을 순순히 받아주셨다. 그리고 지난봄, 키우던 허브화분들과 베이킹 작업실이 모두 이곳으로 옮겨졌다. 꿈에 그리던 전원생활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이제는 부모님, 이웃 할아버지와 함께 계곡을 건너고 산을 타며 꽃과 열매를 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뒷산에만 가도 산목련, 도라지꽃, 오디 같은 게 지천으로 깔렸어요. 이웃에 귀가 안 들리고 말씀을 못 하시는 할아버지가 한 분 계시는데, 어느 날은 오디를 한 움큼 가지고 오셔서 눈짓으로 이거 필요하냐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꽃 따러 다니는 것을 알고 계셨던 거지요."

↑ 늘 보는 거실도 주방의 아치형 개구부를 통해 보면 더욱 포근하게 느껴진다.


맨땅에 헤딩, 세 식구의 한옥 리모델링 대작전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하죠. 한참 작업하다가도 셋이 모여 앉아서는 '언젠간 그때 그랬지 하고 돌아볼 날이 오겠지?'라며 이야기하곤 했어요."

이제 와 집안을 둘러보면 구석구석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어 어디를 봐도 감회가 새롭다. 이사가 결정된 후, 한옥의 외관 형태는 살리고 내부는 전면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모든 자재는 직접 공장에 가서 사고, 창호, 기와지붕 등 외부공사와 내부 보일러공사, 타일공사만 전문가에게 맡겼다. 그 외 작업은 모두 윤정 씨와 부모님의 몫이었다. 드디어 망치 한번 제대로 잡아본 적 없는 세 식구의 좌충우돌 리모델링 작업이 시작되었다.

"옆집 이모할머니댁에서 자거나 오색약수터 근처 숙소에 묵으면서 작업했어요. 두 달 동안 내부 철거부터 벽에 목재 합판, 석고보드, 단열재를 대는 것, 페인트칠이나 조명 다는 것까지 일일이 부딪혀가면서 해야 했죠."

↑ 보랏빛 도라지꽃차를 우려내는 윤정 씨


'작은 파스텔 가든' 리모델링 과정


↑ 1 개조 전 부엌의 모습

↑ 2 철거 작업

↑ 3 보일러배관 교체

↑ 4 천장공사

↑ 5 목재페인트 벗기기

↑ 6 단열추가 공사

↑ 7 창호 교체

↑ 8 바닥타일 깔기

↑ 9 벽면타일 붙이기

↑ 10 삼나무몰딩 설치

↑ 11 주방문 스테인드글라스 설치

↑ 12 벽면 및 가구 페인팅

↑ 세련된 조명과 아치형의 주방 입구가 돋보이는 파스텔 톤의 거실

↑ 아기자기한 벽장식이 돋보이는 윤정 씨의 방


요령이 없으니 작업속도는 당연히 느렸다. 옛날에 지은 집이라 벽체가 반듯하지 않아 작업은 더 어려웠다. 주방의 아치형 입구도 골칫덩이였다. 벽에 합판을 대려면 그 모양을 그대로 본떠야 했는데, 초보자가 방법을 알 턱이 없었다. 아쉬운 대로 윤정 씨가 신문지를 전지크기로 만들어 벽에 대고 따라 그렸다. 선을 따라 자른 신문지를 다시 합판에 대고, 윤정 씨 아버지가 그 모양대로 직소기로 잘라서 벽에 붙였다.

"그래서 자세히 보면 삐뚤기도 해요. 뗐다 붙였다 한 것도 많죠. 벽에 페인트칠할 때도 서로 사인이 안 맞아서 엉뚱한 데 포인트 컬러를 칠하기도 했는데, 오히려 그게 예뻐서 모든 방의 포인트 벽 위치를 바꿨어요."

세 식구가 힘을 합쳐 지금의 작은 파스텔 가든을 완성했지만, 그래도 일등공신은 윤정 씨의 아버지다. 윤정 씨가 인테리어 디자인을 구상하고 필요한 자재나 소품 등을 구매하면 조립하거나 설치하는 것은 모두 아버지의 몫이었다.

"제가 고른 스위치 커버가 옛날 방식으로 된 제품이라 설치가 어려웠어요. 게다가 조명이 많아서 스위치도 여간 많은 게 아니었거든요. 한 번은 엄마가 넌지시 전하시더라고요. 그 스위치 커버들을 일일이 달면서 아빠가 '좀 웬만한 걸로 사지.' 그러셨다고.(웃음)"

우여곡절 끝에 화사한 새 옷을 입게 된 한옥 '작은 파스텔 가든'. 앞으로도 손봐야 할 곳이 많지만, 윤정 씨와 부모님은 그저 즐겁다. 가을이 오기 전, 거실 한쪽에 작은 벽난로를 놓고, 마당에는 시멘트 바닥을 깨고 본격적으로 허브 정원을 꾸밀 생각이다. 지금은 임시로 세 개의 방 중에서 하나를 손님방으로 비워 두었는데, 앞으로 손님과 같이 덖음 꽃차, 소이 캔들, 천연비누, 홈베이킹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공방도 운영할 예정이라고 했다.

"내년 초에는 프랑스에 있는 허벌리스트 전문학교에서 허브를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돌아올 계획이에요." 아직 자연 속에서 더 배우고 싶은 게 많다는 그녀. 그 안에서 해를 거듭할수록 깊이를 더하는 꽃차의 향기처럼 그녀와 부모님의 삶도 더욱 진하게 익어갈 것이다.

작은 파스텔 가든 블로그http://blog.naver.com/lyjcrimso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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