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김담 경방 대표이사가 오후 6~7시에 갑자기 등산을 하는 이유는?

웃는얼굴로1 2013. 5. 29. 03:08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샐리리맨의 꿈이라면 기업에서 ‘별’인 임원이 되고, 나아가 CEO가 되는 것일 겁니다. 저는 月刊朝鮮에 몸담으면서 지금까지 80여명의 CEO와 오너 경영자를 직접 만났고, 그 중 30여명을 지면에 소개했습니다. 월간지의 기사 분량이 길다보니 적게는 2시간에서 4~5시간까지 인터뷰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때로는 2~3번 나눠 만나기도 했고요.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성공한 CEO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더군요.

①자기만의 시간

먼저 이들은 어떤 방식이로든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대신해 경영을 맡고 있는 김창근 SK수펙스 의장은 매일 아침 10~20분 자기 명상 시간을 갖습니다. SK케미칼 부회장일 당시 만났는데, 그는 “1985년 SK에 심신수련원이 생긴 후 20년간 스트레칭과 명상 등을 매일 아침 해오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와 함께 프로그램에 같이 참여도 했는데 수련의 맨 끝은 명상이더군요. 제가 “명상시간엔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김 의장은 “오늘 할 일의 경중완급(輕重緩急) 순서를 정한다”고 하더군요.

서울 영등포에 ‘타임스퀘어’라는 복합 쇼핑몰을 만든 김담 경방 및 타임스퀘어 대표이사는 가끔 오후 6~7시에 등산을 시작합니다. 그것도 동료없이 혼자 합니다. 밤 산행이 위험하거나 무섭지 않을까 물었더니 그는 “오히려 머리가 맑아진다”고 했습니다. 힘들고 복잡한 일이 생겼을 때 늦은 시간에 3~4시간씩 혼자 등산을 하고 나면 많은 문제가 풀린다는 것입니다.


	(왼쪽부터) 김창근 SK수펙스 의장, 김담 경방 및 타임스퀘어 대표이사, 이영하 LG전자 사장
(왼쪽부터) 김창근 SK수펙스 의장, 김담 경방 및 타임스퀘어 대표이사, 이영하 LG전자 사장
삼성코닝에서 만 32년간 일하다가 한국남동발전을 맡아 적자이던 회사를 흑자로 탈바꿈한 장도수 사장이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방법은 드라이빙입니다. 복잡한 일이 생기면 운전기사 없이 혼자 운전대를 잡고 공장 현장을 찾는다고 합니다. 현장 근로자들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면서 어지럽던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다고 하네요.

이영하 LG전자 사장은 출근 전 1시간 반 동안 혼자 ‘파워워킹’을 하는데, 이때 복잡한 회사 일 등 일상사를 정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 시간을 본인의 하루에서 가장 소중하고 요긴한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②‘스스로 미쳐야 산다’

제가 만나본 CEO들은 ‘미친 듯’이 일하고 있습니다. 깨어있는 동안, 아니 잠자면서도 회사 일을 생각하고 해법을 찾으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그분 들과 인터뷰하면서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 소름이 솟을 정도였습니다. 

박성훈 JEI재능교육 회장은 인터뷰 내내 “미치지 않았으면 지금 성공은 꿈도 못꿨다”며 “미쳐야 산다”고 했습니다. 그는 실제로 ‘제대로 된 학습지를 만들겠다’며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를 탄 일을 얘기했습니다. “뉴욕 맨해튼 한 복판에서 운동화를 하나 사 신으며 ‘무엇이든 건지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지요. 그리고 유명 출판사인 ‘맥그로힐’ 등을 포함해 뉴욕에서 출판사 문패 걸린 곳을 모두 찾아가서 면담을 하고 교재를 한 보따리씩 모았습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연구팀을 꾸려 불철주야 교재 개발에만 목을 맸다는 그는 “미쳤던 거지. 안 미치면 이 짓을 했겠나. 하루종일 주야(晝夜)로 책상 앞에 붙어서 교재만 쳐다봤는데”라고 했습니다. 박 회장은 “미쳐야 돼요. 그게 열정이죠. 미쳐지지 않으면 스스로 자기 일에 미치도록 자기를 끊임없이 설득해야 합니다”라고도 했습니다.

2조 3000억원의 자금을 굴리는 도용환 스틱인베스트먼트 회장도 비슷합니다. 그는 벤처캐피탈 회사를 운영했던 초창기에 사우디 부호들의 돈을 끌어들여 화제가 됐는데 우연이나 사우디쪽에 ‘끈’이 있어서가 아니랍니다.

	(왼쪽부터) 박성훈 JEI재능교육 회장, 도용환 스틱인베스트먼트 회장, 오세철 금호타이어 고문
(왼쪽부터) 박성훈 JEI재능교육 회장, 도용환 스틱인베스트먼트 회장, 오세철 금호타이어 고문
“우여곡절 끝에 사우디 부호 모임을 알게 됐는데 문 앞까지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했어요. ‘명함 한 장 만 놓고 가겠다’고 사정해도 통하지 않았지요. 간신히 중동 부호 몇 명의 이메일 주소를 알았고 그들에게 무작정 이메일을 보냈어요. 답장을 기대하지도 않고 수 백통을 보냈는데 이런 정성에 중동 부호들이 감복한 거지요.”

그에게 “무슨 얘기를 이메일에 그렇게 썼느냐”고 물었더니 “한국이 IT강국이란 얘기도 쓰고, 월드컵 축구 얘기도 쓰고 그냥 이메일 쓰는 것이 일과처럼 되어버렸다”는군요.  

  

오세철 금호타이어 고문은 타이어 판매에 얼마나 전력을 쏟았는지 지금도 땅을 보면서 걷는 습관을 갖고 있답니다. ‘자동차에 어떤 회사 타이어가 끼워져있는지’ 보려고 말입니다. 주차장에 외제차가 줄줄이 서있는걸 보고 화가 치밀어 타이어를 툭 쳐버린 적도 많답니다. 자동차가 빽빽 울면서 주인이 달려왔겠죠. 오 고문이 “정말 미안하다. 외제 타이어를 보면 노이로제가 걸려서 그렇다”고 양해를 구했더니 대부분 이해해줬다고 하더군요.

자나깨나 일 생각과 높은 업무 몰입도는 대박을 낚는 지렛대가 되기도 합니다. 함께 라운딩한 동반자들이 내뱉은 “연습장에서는 잘 맞는데, 이상하게 필드에서는 안 맞네”라는 푸념을 그냥 흘려 보내지 않고 계속 곱씹어 필드와 연습장의 중간을 찾아 ‘스크린 골프’를 창업한 김영찬 골프존 회장이 대표적입니다.

③‘끝없는 절차탁마(切磋琢磨)’

CEO와 오너들은 기업에서 최종 의사결정권자이자 최고봉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큰 틀만 잡아주고, 디테일한 부분은 다소 약할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은 얼마 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인터뷰하면서 여지없이 깨졌습니다.

조 회장의 입에서 나온 전문적인 항공 용어며, 기체에 대해 설명을 들으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잠시만 딴 생각을 하면 다음 질문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긴장감이 넘치는 타이트한 인터뷰였습니다. 1979년 대한항공에 입사한 조 회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대한항공 정비본부장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지금도 항공기의 정비나 기술 분야에 관심이 무척 높다고 합니다. 인터뷰에서 조 회장으로부터 비행기와 조종사들에 대한 ‘특별과외’를 받는다는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왼쪽부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장도수 한국남동발전 사장
(왼쪽부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장도수 한국남동발전 사장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을 만났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가 말하는 반도체 용어와 원리, 부가가치, 사회기여도 등은 마치 이공계 박사와 인터뷰를 하는 느낌이었거든요. 김 회장은 2003년 아남반도체를 합병해 비(非)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기 전부터 따로 반도체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반도체 분야의 책을 내도 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지요.

장도수 한국남동발전 사장과는 2시간 넘게 인터뷰했는데, 인터뷰를 끝내자 말자 그가 달려간 곳은 어학 수업장이었습니다. 요즘도 그는 매일 아침 9시부터 20분 동안은 일본어 회화를, 오후 5~6시에는 영어 회화를 합니다. 혹 재무 강의를 기회가 생기면 꼬박꼬박 참석한다고 하니, 대단한 열정이지요.

1년에 3~4번씩 만나는 매출 2조원대의 패션유통그룹을 경영하는 K사장의 사무실에 가 보면, 프로골퍼들과 찍은 사진 대신에 고전(古典)부터 신간도서가 책장과 책상 에 빼곡합니다. 그와 만나면 회사 일은 접어놓고 문학과 역사 얘기를 주로 합니다. 요즘 그는 사서삼경(四書三經)에 푹 빠져 매주 1회씩 스터디 모임을 한 답니다.

제가 만난 CEO 가운데 90% 이상은 평균 기상 시간이 새벽 5시로 거의 대부분 ‘아침형(型) 인간’이었습니다. ‘숫자에 아주 민감한 것’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가령 매출을 2조5000억원대라고 대략적으로 표현하는 대신에 꼭 ‘2조 5750억 2500만원’이라는 식으로 예외없이 매우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말하더군요.

일반 임직원 가운데도 회사 일에 올인하거나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 숫자에 민감하고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은 언젠가 CEO가 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그런데 CEO·오너들과 일반 임직원들의 차이를 하나만 꼽는다면, ‘주인의식의 깊이’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만난 CEO들 대부분은 상상을 초월하는 ‘주인의식’으로 뭉쳐 있더군요. 그래선지 인터뷰를 하면서 저 자신도 그들에게 몰입되는 경험을 여럿 했습니다.

오늘도 CEO를 꿈꾸고 있는 샐러리맨 여러분! 능력 향상과 더불어 주인의식을 더 높인다면 CEO 자리에 더 가까이 가지 않을까요? 파이팅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