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후심흑(面厚心黑), 낯가죽은 두꺼워야 하고 속마음은 검어야 한다!
중국의 근세 사상가 리쭝우(李宗吾, 1879~1944)가 위대한 통치자들의 속성을 정의한 말이다. 통치자들뿐 아니라 수많은 영웅호걸과 성현들도 낯가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두꺼웠고, 시커먼 속마음은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다는 것이다. 리쭝우의 '면후심흑'론은 약칭 '후흑학(厚黑學)'으로 당시 대단한 호응을 얻었다. 마오쩌둥(毛澤東)도 '후흑학'을 접하고 나서 1960년대 문화대혁명을 일으킬 용기를 얻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역풍수(逆風水)의 대가 세조 임금도 다를 바 없었다.
문화재청 제공
![](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212/21/2012122101098_0.jpg)
그러나 '천문지'나 '오행지'에서는 무지개를 '임금을 상징하는 태양을 가리는 신하의 흑심(黑心)'으로 해석한다. 무지개가 닿은 곳에 문종의 무덤자리를 정한 수양대군의 흑심이 분명해진다. 왕위계승법에 따라 임금이 된 단종을 쫓아내고 자신이 임금이 된 것은 그로부터 3년 후의 일이다. 이어서 얼마 후인 1357년 6월 22일 세조는 조카 단종을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 보낸다. 그런데 그 청령포의 풍수 입지가 고약하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것 말고도 그 바깥을 또 험한 산들이 감싸고 있어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 옹색한 곳이다. 물 감옥(水獄·수옥)이자 산 감옥(山獄·산옥)이다. 문자 그대로 하늘이 만든 천옥(天獄)이다. 풍수 고전 '청오경'이 말한 '산수수류(山囚水流)'의 땅이다. 산은 가두고 물은 흘러나가는 땅이란 뜻이다. 이러한 땅에서 '왕은 포로가 되고 제후는 망한다'고 '청오경'은 말한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단종을 영월로 유배 보내고 나흘 후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 무덤(소릉)을 파헤쳐 바다에 던져버렸다. 역풍수의 절정이다.
이러한 역풍수에 대해 하늘도 노했던지 그해 7월 말 세조의 맏아들인 의경세자가 까닭 없이 앓기 시작한다. 백약과 온갖 굿의 효험도 없이 그는 한 달 후인 9월 2일 죽는다. "비바람 무정하여 모란꽃이 떨어지고…"라는 시 한 편을 남긴 채.
그러나 세조의 풍수 행위는 멈추지 않는다. 이제는 역풍수가 아니라 순풍수(順風水)다. 의경세자가 죽은 지 사흘 뒤인 9월 5일부터 세조는 길지를 찾아 한양 부근을 샅샅이 뒤지게 한다. 길지 찾기는 40여 일 동안 계속되는데, 영의정 정인지 이하 조정의 주요 대신과 지관들이 총출동한다. 여기에는 노비풍수 목효지와 단종 사이의 비밀을 당시 수양대군(세조)에게 알린 강맹경도 있었다. 이때 강맹경은 우의정이 되어 있었다. 추천된 후보지들의 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하여 세조가 직접 현장으로 간 것만도 여섯 번이었다.
최고의 길지로 결론이 난 곳은 그 당시 지명으로 고양현 봉현 땅이다. 세조 임금은 주요 대신과 지관들을 대동하고 이곳을 답사한 뒤 능 자리로 결정했다. 이곳에 아들 의경세자를 안장하기 며칠 전인 10월 21일 단종을 죽인다. 이후 의경세자가 묻힌 곳은 경릉(敬陵·사진)이라 불렸고, 지금의 서오릉(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소재)은 이로부터 시작한다. 세조가 이렇게 정성을 들여 쓴 이곳 경릉은 길지였을까? 의경세자의 아들이 훗날 성종 임금이 되고 성종의 후손들이 조선의 마지막 임금까지 이어진다. 결국 조선은 세조의 나라가 된 셈이다.
세조의 역풍수는 이렇게 길고긴 과정 끝에 마무리된다. 세조 역시 면후심흑(面厚心黑)하였다.
'풍수, 역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돈버는 풍수] 도굴범과 풍수, 그리고 족보 (0) | 2013.01.14 |
---|---|
[김두규 교수의 國運風水(국운풍수)] 조선 르네상스 정신의 상징 효창원, 日帝가 없앴지만 백범이 가치를 알고는… (0) | 2013.01.07 |
[돈버는 풍수] 명산에는 명당이 없다 (0) | 2012.12.24 |
재복을 불러오는 현관 만들기 (0) | 2012.12.20 |
[김두규 교수의 國運風水(국운풍수)] 단종 어머니·문종 묘자리 '흉지'로 고른 세조… 그 흑심, 풍수인에겐 들켰다 (0) | 2012.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