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 역학

[김두규 교수의 國運風水(국운풍수)] 청와대 옮기려 했던 대통령들… 사람이 흩어지니 땅의 기운도 흩어져

웃는얼굴로1 2012. 3. 13. 00:12

두 대통령 천도론 무산으로 과천정부청사·세종시 등 '서얼'들이 태어나…
풍수의 핵심은 地氣 모이게 하는 것

조선조 관리 선발에 지리학 분야가 있었다. 풍수전문가인 '지관'을 선발하는 기술직이다. 이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 반드시 읽어야 할 풍수책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탁옥부(琢玉斧)'란 책이 있다. '옥을 다듬는 도끼'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옥(玉)은 산천을, 다듬는다는 것(琢)은 땅을 고르는 것을, 도끼(斧)는 술서(術書)를 의미한다. 대지를 옥으로 간주하는 땅의 미학이다. 이 책은 '풍수지리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나라를 세우고 도읍지를 정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우리 역사에서 건국과 풍수는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왔다. 후삼국통일의 당위성과 새로운 왕조 출현을 예언하였던 도선국사, 황제국 선포를 주창하였던 묘청, 공민왕 개혁의 선봉 신돈 등이 모두 명풍수였다. 조선 건국에 기여하였던 무학대사와 정도전 역시 풍수에 능했다. 물론 '탁옥부'는 "제왕의 창업은 덕(德)에 있지 무력이 아니며, 그 수성은 도(道)에 있지 땅이 아님"을 전제한다. 그러면서도 도읍지와 국운 사이에 풍수적 상관관계가 분명함을 중국의 역대 도읍지들로 예시하고 있다.

지난번 글에서 청와대 터를 다루었다. 1000년 가까이 도읍지(궁궐) 역할을 하면서 우리 역사에 기여한 공로는 무시하고 불행한 일들만 들춰내는 세속의 야박함을 이야기하였다. 동시에 필자는 청와대 터가 그 용도를 다했다는 말로 마무리하였다. 왜 그럴까?

집무처 청와대를 떠나려고 했던 전직 대통령이 둘 있었다. 국운을 생각할 때 청와대를 옮기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 것이다.
박정희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들이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의 수도 입지에 대한 고민은 진지했다. 그는 6·25 전쟁 직후 이승만 정권이 새로운 곳에 수도를 건설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고, 그 자신이 대덕 연구단지를 만들 때 그곳을 행정수도로 생각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였다. 그러한 고민 끝에 1977년 '임시행정수도' 건설을 발표했다.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긴급뉴스였지만 박 전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구상한 일이었다. 그가 새로이 행정수도를 옮기고자 한 까닭은 인구집중, 국토의 불균형발전 등 복합적이었지만 북한의 사정거리 안에 서울이 들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임시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기획단(단장·오원철)이 구성됐고, '백지계획'이란 암호 아래 준비가 진행되었다. 2년 후인 1979년 5월 대통령에게 최종안이 보고되었고, 재가를 받아 실행만을 남겨둔 상태였다. 충남 공주시 장기면 일대가 그 예정지였다. 그러나 1979년 대통령 서거와 함께 '백지계획'은 문자 그대로 백지화되고 말았다.

그로부터 20여년 후인 2002년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선후보는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충청권에 '신행정수도건설' 공약을 내세웠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 그는 신행정수도건설추진단(단장·이춘희)을 만들게 하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로 행정수도 이전은 좌절되었다. 대신에 행정부처만 옮기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안'으로 축소·변경되어 지금의 세종시가 탄생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박 전 대통령이 잡은 공주 장기면과 지금의 세종시가 인접하면서 금강변에 자리한다는 점이다.

청와대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였던 두 대통령의 천도론이 무산되면서 '서얼'들이 태어났다. 과천정부청사, 대전정부청사, 세종시 그리고 혁신도시들이 그들이다. 이제 대통령 집무처만 경복궁 후원인 청와대에 남고 국가 중추기관들이 대부분 떠나게 된 셈이다. 국무총리실도 금년 말에 떠난다. 풍수의 핵심은 땅의 기운이 흩어지지 않고 모이게 하는 것이다. 땅의 기운이란 것도 결국은 사람이 있음으로써 그 모이고 흩어짐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청와대는 그 용도가 다했다고 한 것은 사람이 흩어지고 기운이 흩어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좀 더 이야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