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1인용 노래방'…스피커 없이 헤드폰 사용
개인전용 고깃집 이어 혼자 떠나는 여행상품도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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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간다역 인근의 1인 노래방에서 한 일본인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흡사 독서실이다. 책상과 의자가 하나씩 마련된 방이 모두 24개. 한 명 들어가면 딱 맞는 작은 공간이다. 사람들은 여기서 공부 대신 노래를 한다. 일본 도쿄 간다(神田)역 인근에 최근 문을 연 ‘1인용 노래방’의 모습이다.
이 가게의 이름은 ‘완카라(ワンカラ)’. ‘원(one)’의 일본식 발음에 노래방을 뜻하는 ‘가라오케(カラオケ)’를 합쳤다. 개인전용 노래방이다. 혼자 놀기를 좋아하는 일본에서도 이런 업소는 처음이다. 세계 최초라는 게 업소의 설명. ‘장사가 될까?’라는 생각은 기우다. 평일 오후인데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다만 조용하다. 서로 말없이 순서만 기다린다. 모두 혼자왔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노래 반주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노래방 스트레스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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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용 노래방 내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가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이 혼자 노래방을 차지하고 노래를 부르는. 공감이 간다. 언제부턴가 노래방은 스트레스를 푸는 장소가 아니라 쌓는 장소가 됐다. “부장님! 거의 가수시네요”라는 빈말을 해야 하고, 분위기 살리느라 좋아하지도 않는 ‘뽕짝’을 불러야 한다. 혼자 노래방에 가서 실컷 소리를 지르고 싶을 때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실행이 어렵다.
완카라는 이런 수요를 겨냥했다. 그리고 전체 시스템을 여기에 최적화했다. 가게 문을 열면 좌우 양쪽으로 개인용 ‘밀실’이 나란히 도열해 있다. 공간이 협소한 만큼 일반적인 노래방기기는 없다. 대신 정면에 모니터가 있고, 옆에는 가수들이 녹음할 때 사용하는 것 같은 고정 마이크가 붙어 있다.
다른 사람에게 내 노래를 들려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스피커는 존재하지 않는다. 헤드폰을 끼고 곡명을 선택하면 반주가 나오는 시스템이다. 화면에는 노래 가사가 흐른다. 거기에 맞춰 노래를 부르면 헤드폰으로 반주와 자기 목소리가 함께 들린다. 대부분 카운터에서 별도의 요금을 지불하고 헤드폰을 대여하지만 단골손님 중에는 집에서 갖고 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녹음실에서 음반을 제작하는 프로가수들의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게 점원의 자랑이다.
혼자 한 시간 이상 노래를 부르면 당연히 지친다. 완카라는 이를 위해 안마의자를 갖춘 휴게실과 음료수 등을 파는 카페도 마련했다. 남성이 썼던 방을 꺼려하는 여성 고객도 있게 마련. 그래서 24개의 방 가운데 5개는 여성 전용칸이다. 혹시 누가 문을 열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소심한 고객을 위해 방마다 잠금장치도 설치돼 있다.
완카라의 요금체계는 세 종류다. 오후 6시 전에 오면 시간당 600엔(9000원), 그 이후엔 1100엔(1만6500원). 밤새도록 노래부르고 싶은 고객을 위한 ‘나이트팩 서비스’도 있다. 2600엔(3만9000원)을 내면, 자정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노래를 부르든 잠을 자든 자유다.
◆“수요는 충분하다”
일반적인 노래방에서 혼자 큰방을 독차지하고 노래를 부르려면 상당한 배짱이 필요하다. 최소한 한국에서는. 그러나 일본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완카라의 모기업인 고시다카(コシダカ)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에서 노래방을 혼자서 이용하는 고객은 전체의 30% 정도에 달한다. 이 회사는 군마(群馬)현 등 일본 전역에 수십 개의 가라오케를 운영 중이다. 자연스레 1인용 노래방의 수요를 감지한 것이다.
고시다카는 완카라의 타깃 고객을 세 종류로 설정했다. 회식 스트레스가 쌓인 직장인과 가사노동에 시달리는 주부, 그리고 노인들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도쿄에 1호점을 오픈한 뒤로 이런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사업주들의 문의가 크게 늘었다”며 “5년 안에 50호점을 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일본사회는 전반적으로 ‘외톨이 문화’가 강세다.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요시야’ ‘마쓰야’ 등 일본 덮밥체인점 중에는 아예 테이블이 없는 곳도 적지 않다. 작년 4월 도쿄 우에노에는 다른 손님의 눈치를 보지 않고 혼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히토리(1人)’라는 가게까지 생겼다. 이곳에서는 1인 고객을 위해 고기를 한점 단위로 판매한다. 독서실처럼 칸막이를 친 라면가게도 여러곳이다. 이온 등 대형 할인점도 마찬가지. 1인용 낱개 포장을 한 먹을거리가 흔하고 밥솥도 1인용이 판매대 앞쪽에 진열돼 있다. 혼자서 떠나는 여행상품도 인기다.
◆“친절함 뒤엔 피곤함이….”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느끼는 첫인상 중 하나는 친절함이다. 예전부터 그랬던 모양이다. 영국의 초대주일공사 루더퍼드 올콕은 19세기 말 일본에 체류하며 느꼈던 감정을 ‘대군의 도(大君의 道)’라는 책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일본인의 태도는 항상 온화하다. 신사의 나라다.”
후쿠모토 다쓰야 한서대 교수는 “일본인들이 친절하게 비치는 것은 그만큼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인관계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얘기다. 여러 사람이 모였을 때 하지 말아야 할 ‘터부’도 많다. 후쿠모토 교수는 “일본 샐러리맨들은 대개 노래방에서도 자기가 노래 부르고 싶은 것을 참으며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삼가려고 노력한다”며 “선배로부터 노래방 수칙을 자연스레 교육받고 거기에 맞게 행동한다”고 말했다. ‘박수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노래를 열심히 들어야 한다’ 등이 노래방에서 지켜야 할 대표적인 수칙으로 꼽힌다.
내성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문화가 더욱 고역이다. 인터넷 공간에 ‘가라오케 피해자 우호회’ ‘가라오케와 인권을 생각하는 모임’ 같은 모임이 있을 정도다.
대인관계가 피곤하다보니 사적인 시간에는 되도록 혼자 있기를 원한다. 박종현 일본 호세대(法政大) 교수는 “일본인들은 개인적인 공간과 시간을 확보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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