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중 20% 빚 갚는데 써, 모기지 사태 때 美보다 높아
가계빚 900조원 달하며 감당할 수 있는 한계 직면 "서민층 부담 덜 정책 필요"
지난해 전세 자금 5000만원을 빌린 직장인 박모(39)씨는 올해 외식과 여가 생활에 일절 돈을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월급 300만원에서 대출 원리금 130만원을 갚고 나면 생활비 대기도 빠듯하다. 박씨는 "올해 월급은 거의 오르지 않았는데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어 불안하다"며 "지출을 최대한 줄여 빚을 빨리 털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900조원에 달하는 가계 부채가 가계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가운데 올해 한국 경제에 '부채 디플레이션(debt―deflation)'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소비자들이 과중한 빚 탓에 소비를 줄이고, 그 결과 내수가 위축되고 경제성장 엔진이 꺼지는 현상을 말한다. 미국 경제학자 어빙 피셔가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처음 내놓은 개념이다.
◇부채 디플레이션 조짐들
최근 2~3년간 가계 부채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지적은 수없이 나왔지만 올 들어 차원이 다른 고비를 맞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빚을 내 빚을 갚는 '돌려 막기'가 더는 어려워지고, 소득이 뒷걸음질치면서 가계의 빚 상환 능력이 한계에 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①모기지 사태 당시 미국과 유사
지난해 우리 국민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원리금 상환 비율은 2010년보다 2.2%포인트 늘어 18.3%였다. 1000만원을 벌면 183만원을 빚을 갚는 데 썼다는 뜻이다. 이 비율은 올 들어 20% 안팎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데,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2007년 이 비율이 18.6%였다. 올해 우리 국민의 빚 부담이 미국에서 가계 연쇄 파산 사태가 발생했던 당시의 미국 국민보다 더 커진다는 것이다.
②악성 부채 만기 도래 집중
정부는 올 들어 신용등급 7등급 이하 700만명에 대한 신용카드 추가 발급을 봉쇄했다. 저신용자의 '카드 돌려 막기'가 불가능해지면서 개인 파산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부실 가능성이 높은 주택담보대출의 만기가 올해 집중된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상환 능력 취약 대출(이자만 갚는 거치기간에만 있는 대출 중에서 부채가 소득의 4배 이상이거나 담보 가치 대비 대출액이 40~50% 이상인 대출) 중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대출 비중이 21.2%에 이른다. 2013년 15.0%, 2014년 15.4%보다도 높다.
③빚 증가 속도, 소득 증가율 압도
작년 3분기 국민총소득(GNI) 증가율은 전년 대비 0.8%로 가계 부채 증가율(9%)의 10분의 1도 안 됐다. 물가 상승 탓에 지난해 1~9월 월평균 근로자 실질임금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5% 줄었다. 반면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가계가 부담하는 월평균 이자 비용은 9만3000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막바지"
지금까지 우리나라 가계는 부채를 늘리며 소비 수준을 유지해 왔는데, 부채를 더 늘릴 수도 없어 소비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소비 위축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RBSI)는 지난해 2분기 125였지만 3분기 연속 하락해 올 1분기 전망치가 101로 떨어졌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안 열어 연말연시에 백화점 매출이 부진에 빠진 것이 주 요인으로 작용했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은 “상당수 국민이 소득이 아니라 부채에 맞춰 살아가는 현재 생활 패턴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부채 디플레이션을 피하기 어렵다”며 “지금 가계 부채는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막바지에 이른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도 “재정난을 겪는 유럽을 중심으로 디레버리징(부채 줄이기)이 전 세계로 번질 것”이라며 “우리나라도 가계의 빚 줄이기가 본격화되면 부채 디플레이션이 올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가계 부채 문제가 심각하지만 부채 디플레이션까지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는 반론도 있다. 이석준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은 “아직 우리나라는 성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부채 디플레이션을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면서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는 사태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연쇄 가계 도산 사태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 당국은 일종의 딜레마에 빠져있다. 가계 대출을 줄여야 하는데 너무 빨리 줄이면 부채 디플레이션을 촉발할 수 있는 만큼 ‘속도 조절’이 필요한데, 수단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는 부채 디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을 막기 위해 가계의 지출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유경원 상명대 금융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저소득층의 생계형 대출이 큰 폭으로 늘어 부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서민층의 지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교육·교통·통신비를 낮추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손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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