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化粧)이 진할수록 무대 뒤 허탈함은 더 하다고 토로하는 뮤지션이 여럿이다. 최정상의 가객이든, 밤 무대를 전전하는 한물 간 가수든 마찬가지다. 삶이란 전장(戰場)은 그런 꺼림칙함을 준다. 화려할수록 조명이 꺼지면 씁쓸한 법인데, 스포트라이트를 찾아 불나방처럼 부산한 건 생리다.
‘난장의 한 판’이 끝났다. 총 사업비가 10조원으로 ‘단군 이래 최대’의 재건축 사업이라는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는 ‘비상식의 상식화’가 일상인 현장이었다. 국내 굴지의 건설사 두 곳은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였다. 법의 불비(不備)를 십분 활용했다. 이사비 7000만원 현금지원, 수 천억원대의 무상 특화설계 같은 제안으로 조합원의 표심을 흔들었다. 상대 비방, 흑색 선전…. 수주전이란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단돈 5000원에 불과하더라도 밥값 내지 않겠다’ 한 쪽이 시공사 선정 막판에 한 선언은 곱씹을 대목이다. 상대보다 도덕적 우위를 점하겠단 수(手)로 읽혔다. 적지 않은 현금을 뿌려온 업계 관행을 자복(自服)한 것이기도 하다. 의도가 선(善)했더라도, 순수하게 받아들인 쪽은 많지 않은 듯하다.
건설 업계의 자정(自淨) 노력이 전무한 건 아니었다. 회사마다 컴플라이언스(준법감시) 체계가 있다. 불법ㆍ탈법으로 이어질 ‘실탄(현금)’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감시하려고 만들었다. 그러나 규정은 사문화했다. 지키면 바보 취급 받았다. 눈 앞에 돈이 있는데 한가하게 규정 따질 처지가 아니란 변명도 숱했다.
해외건설 시장에서 활로를 찾기 힘드니 국내 주택시장에서 확실한 이익을 잡겠다는 계산을 탓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 셈법의 유효기간이 언제까지일지 불확실하다.
뒤틀린 재건축 수주전은 이번 ‘판’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또 다른 ‘판’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반포주공1단지에서 나타난 ‘쩐의 전쟁’이 강남권에서 확대 재생산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맥락에서 건설사에 ‘플러스 알파(현금 지원)’를 바라는 조합도 시장을 왜곡한 책임이 있다.
재건축 사업은 복마전이 된지 20년 넘었다. 업계의 자정 능력은 없다는 걸 증명하고도 남을 세월이다. 조합이 받은 막대한 혜택은 일반 분양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주변 집값도 크게 올려놨다. 과도한 이주비가 풀리면 전세시장이 들썩였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진 일에 서민까지 경제적ㆍ감정적 피해를 입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방치하면 재건축발 과잉 유동성이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스텝을 꼬이게 할 수 있다. 반포주공1단지 시공사 선정 투표장소는 잠실실내체육관이었다. 웬만한 공당(公黨)의 전당대회 뺨친다. 재건축판이 정치판을 흉내내는 만큼 게임의 룰도 얼추 비슷하게 맞출 방안을 고민할 만하다. 정치자금법은 법 위반자를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고,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5년간 공직을 맡지 못하게 해놓았다. 풀 메이크업을 한채 ‘일단 수주하고 보자’며 지키기 힘든 약속을 한 뒤 속앓이하는 건설사에도 장기적으로 나쁠 게 없다. 축배의 여운은 오래 가지 않고, 패배의 쓴맛도 극복 못할 게 아니다. 공정경쟁 없으면 공멸이라는 위기감을 새기는 게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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