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현일의 미국&부동산] ①미국의 집, 그리고 집값 이야기
한국인들이 가장 관심을 두는 부동산 주제는 무엇일까. 개인적 확신이긴 하지만 열의 아홉은 ‘집’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여기에 모든 사람이 가장 궁금해하는 ‘돈’ 이야기를 더하면 ‘집값’. 바로 집과 집값이 한국 부동산 시장의 변함없는 화두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인도 실생활에 밀접한 집과 집값 얘기에 민감하다.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많은 미국인은 집값 상승을 반갑게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 어차피 살 집인데, 세금만 오른다는 것이다.
■얼마나 벌어야 집을 살 수 있나
좀 흥미로운 얘기를 꺼내 본다면, 미국인들이 집을 사려면 얼마나 벌어야 할까.
한국에서는 평균 소득을 버는 2030세대가 서울에서 집을 사려면 12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저축만 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차라리를 집 사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미국도 그럴까.
당연한 얘기지만, 미국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땅덩어리가 넓어 지역마다 집값과 소득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참고로 미국은 몇 년을 모아 집을 사는 개념이 아니다. 보통 집값의 20%만 본인이 부담하고, 80%를 모기지 대출로 충당한다. 매달 원금과 이자를 안정적으로 상환할 수 있는 월 소득을 주택구매능력 기준으로 삼는다. 그래서 미국에선 직장만 튼튼하면 돈 없어도 집을 산다는 말이 나온다.
가장 비싼 곳부터 살펴보자. 한마디로 집값만 보면 서민들이 살만한 동네는 아니다. 모기지 정보업체 HSH닷컴이 2015년 발표한 주택 구매를 위한 도시별 최소 연봉 수준을 보면 영예의 1위, 다시 말해 가장 비싼 도시로 샌프란시스코가 꼽혔다. 평균 집값은 74만2900달러로 7억5000만원이 넘는다. 집값의 20%를 내고 나머지를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을 때, 연간 융자금 상환액이 가계 소득의 28% 이하가 되려면 최소 연간 14만2448달러를 벌어야 한다. 매달 융자 상환액만 3324달러다. 단언컨대, 필자도 SF에서 집사기는 글렀다. 2위는 샌디에이고, 9만5433달러가 필요하고, LA와 뉴욕은 8.9만 달러 정도를 벌어야 내 집 마련이 가능하다.
그나마 집 살만한 곳은 필자가 사는 달라스다. 평균 집값이 18만9600달러로 연간 소득이 4만8787달러면 된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곳에서도 방 4개짜리 괜찮은 지역의 집은 30만 달러를 쉽게 넘는다. 결국 달라스에서도 연봉 6만 달러는 돼야 괜찮은(?) 내 집 마련이 가능하다.
조사대상 27개 도시 중 영광스런 꼴찌는 피츠버그다. 평균 주택 가격이 13만5000달러로 연봉 3만1716달러면 내 집 마련이 가능하다. 한 달 주택융자 상환액이 740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어이없는 비교지만, 피츠버그에 둥지를 튼 메이저리그 야구 강정호 선수가 연봉은 달라스에 사는 추신수 선수보다 적지만 비슷한 크기의 집을 사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돈 없는 미국인도 내 집 마련 가능하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충분한 수입이 없으면 평생 집을 살 수 없을까. 아니다. 방법이 있다. 미국에서 내 집 마련은 최소한의 종잣돈과 은행에서 집을 빌릴 만한 신용도가 있어야 한다. 종잣돈은 집값의 5%에서 20%가 일반적이다. 다시 말해 최소 5%만 있으면 집을 살 수 있다. 3억짜리 집이면 1500만원은 있어야 한다. 소비 사회인 미국에서 그 5%를 저축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 5% 없이도 집 사기가 가능하다. 한국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최근 CNN은 비영리 트러스트에 가입해 종잣돈 없이 집을 사는 방법을 비중 있게 다뤘다. 그 기사의 주인공은 버몬트에 사는 한 전문대학 교수. 연봉 3만4000달러에 신용카드 빚이 5000달러, 학자금 대출이 3만5000달러 있다. 자산보다 빚이 더 많은 상황. 다시 말해 마이너스 인생이다. 은행에서 사전 승인받은 최대 주택담보대출 가능액은 5만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이 지역 평균 주택가격은 26만5000달러. 하늘에서 별 따기가 이 사람에게는 집 사기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2012년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다. 그것도 방 4개, 화장실 2개짜리 집이다.
바로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구매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비영리 기관 ‘챔플레인 하우징 트러스트’(Champlain Housing Trust)를 통해서다. 이 트러스트는 주택 공동 지분 소유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저소득 가정이 이 트러스트에 가입하면, 이 트러스트는 회원이 집을 살 때 종잣돈(다운페이먼트)을 대신 내주고, 구매자는 모기지를 은행에서 빌려 원금과 이자만 매달 내면 된다. 종잣돈은 대부분 정부에서 지원한다.
그리고 집을 팔 때 집값이 오르면 오른 만큼만 트러스트와 나눠 갖는다. 트러스트가 75%를 갖고, 소유자가 25%를 갖는 구조다. 대부분 이 집은 트러스트가 다시 되산다. 집값이 너무 올라, 저소득층이 이런 집을 사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런 공동 지분 주택 프로그램은 1967년 조지아 알바니 시골 지역에서 시작됐다. 1980년대 이 프로그램이 오하이오 신시내티 도시 지역으로 확장됐고, 현재는 200개의 이런 역할을 하는 비영리 트러스트들이 존재한다.
혹자는 이렇게 돈 없이도 집을 사게 해주니,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일어난 것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금융위기 후 2010년 말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집을 산 사람들의 은행 주택 압류(Foreclose) 비율은 0.46%로 시장 가격 주택들의 평균 압류 비율 4.63%보다 크게 낮았다. 그만큼 트러스트들이 집값 상승을 억누른 효과가 위기 때 발현된 것이다. 이런 트러스트들이 연봉은 많지 않지만 꾸준히 일하는 근면한 미국인들에게 내집 마련의 길을 터주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고로 근면하지만, 일찌감치 집 사기를 포기하는 한국인들에게도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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