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은 스스로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소비자이고 나름대로 올바른 결정을 내린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자들은 소비자의 이러한 믿음을 ‘객관적 평가에 대한 환상’이라고 한다. 즉 소비자가 종종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면서도 스스로의 비합리성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수박 한 통이 1만원이고 반 통은 7000원이라면 대부분의 사람은 한 통을 선택한다. 7000원짜리 수박 반 통을 금세 한 통으로 만들어 계산한다. 반통짜리 두개를 사면 4000원 손해라는 생각을 한다. 행동경제학자들의 주장처럼 소비자는 일상적으로 손해를 피하기 위해 수박 한 통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심지어 이러한 의사결정이 나름대로 합리적 결정이라고 믿는다. 과연 합리적인 결정일까?
구성원이 세 명인 가족이 ‘4000원이 더 저렴한’ 1만원짜리 수박 한 통을 구매했다고 해보자. 가족 수에 비해 큰 수박을 샀기 때문에 하루 이틀을 제외하고 억지로 먹거나 결국엔 남아서 버려야 한다. 결과적으로 소비를 통한 효용가치가 떨어진다. 또 다른 문제는 싸게 산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더 비싼 비용을 지불했다는 것이다. 반 통이면 충분히 즐겁게 소비했을 텐데 더 싸게 사겠다며 결과적으로 3000원을 더 쓴 셈이다. 냉장고에 오래 보관하면서 전기요금도 추가로 지불하고 다 먹지 못해 버려야 하는 상황에서는 쓰레기 처리 비용까지 늘어난다. 이쯤 되면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는 객관적 평가에 대한 환상이 분명해진다.
소비자는 생각보다 비합리적인 소비를 자주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소비의사결정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소비를 합리적으로 잘하는 것은 그만큼 소비 과정에서 신중한 의사결정 능력을 필요로 한다. 필요와 욕구에 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고 최종 구매 결정 이전에 기회비용에 대한 고려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소비자는 신중하고 불편하게 소비하는 것을 구질구질하다고 여긴다. 편리한 소비생활이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고 믿는다. 기업의 마케팅과 광고 등에 영향받아 소비자의 욕구가 왜곡되고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을 문제삼지 않는다.
마케팅과 광고는 소비자로 하여금 필요와 불필요를 구분하기 어렵게 할 정도로 대단한 마술을 부린다. 반 통보다 저렴한 한 통은 먹고 싶다는 욕구가 없어도 수박에 대한 구매욕구를 충동적으로 불러일으킨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품에 심리적으로 자극받았기 때문이다. 수박 반 통은 이미 소비자의 지갑을 움직이는 훌륭한 미끼 상품이었던 셈이다.
조작된 욕구를 충족하는 것은 소비자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싸기 때문에, 필요할 것 같아서, 지금 아니면 못 살 것 같아서 등과 같은 나약한 심리로 집어든 제품 때문에 관리해야 할 짐만 늘어난다. 싸고 편리하게 소비하고 구질구질하게 소유하면서 불필요한 것들, 사용하지 않는 것들을 ‘돌봐야’ 하는 피곤한 일상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소비자 스스로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점을 자각하는 일이다. 똑똑한 소비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버리고 최대한 불편한 소비를 해야 한다. 더 나아가 기업의 지나친 마케팅과 광고 등에 규제가 필요함을 깨달아야 한다. 소비자의 비합리적 의사결정에 비해 기업들은 지나치게 똑똑하다. 시장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균형을 찾는다는 논리가 우리를 합리적인 소비자라고 착각하게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재윤경|에듀머니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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