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생 급감에, 서울대 지방 출신 비율 감소도 한몫 “양 많고 술 먹는 분위기, 요즘 젊은 감성과 안 맞아”
1970년대 후반부터 30년 넘게 서울대 재학생들과 고시 준비생들이 즐겨 찾았던 ‘녹두거리’ 상권이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국가 고시 축소로 고시생들이 줄어든 데다, 서울대 재학생들이 불편한 교통 등을 이유로 발길을 멀리했기 때문이다.
과거 학생들이 가득 찼던 녹두거리의 식당과 술집은 이제 줄어든 손님으로 점포가 휑한 경우도 많고, 건물 1층을 제외한 나머지 층의 가게가 문을 열지 않은 경우도 흔하다.
![녹두거리가 있는 서울 관악구 대학동. 서울대학교 정문에서 1㎞가량 떨어진 이곳은 서울대 재학생과 고시생들이 사는 원룸·고시촌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이상빈 기자](http://t1.daumcdn.net/news/201612/19/chosunbiz/20161219055702966rtts.jpg)
◆ 고시촌 붕괴와 함께 한 녹두거리의 몰락
서울대 정문에서 서쪽으로 1㎞가량 떨어진 관악구 서림동과 대학동 일대에 있는 녹두거리는 70년대 후반 이후 서울대 재학생 중심의 대학가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거리 중심에 있던 막걸리집이던 ‘녹두집’의 이름에서 유래된 녹두거리는 큰돈을 쓸 수 없었던 학생과 고시생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1980년대 녹두거리에서 열린 자주관악제의 모습. /서울역사박물관 제공](http://t1.daumcdn.net/news/201612/19/chosunbiz/20161219055703165ejja.jpg)
시간이 지나며 고시촌을 중심으로 주점과 식당 등이 생겨났다. 다양한 먹거리를 저렴한 가격에 해결할 수 있었기에 당시 재학생들에겐 녹두거리만한 모임의 장소가 없었다.
신입생 환영회와 개강파티, 종강파티 등은 대부분 녹두거리에서 열렸고, 녹두거리 한 번 안 가보고 졸업하는 서울대생은 없었을 정도였다.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학기 중에는 사람이 몰려 거리 입구부터 줄을 서서 올라 갔을 정도로 녹두거리는 서울대 재학생과 졸업생에겐 각별한 곳이었다.
◆ 권리금 1억원에서 2000만원으로 떨어져
최근 찾은 녹두거리는 청춘의 열기가 느껴지는 활기찬 상권과는 거리가 있었다. 상가 건물의 지하 1층과 지상 2층은 가게가 비어있거나 다른 업종으로 바꾸려고 공사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술집과 식당을 채운 사람도 적다.
![일명 ‘녹두거리’로 불리는 서울 관악구 대학동 화랑로 일대 상권이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건물 2층과 지하 1층의 가게가 폐업해 비어 있는 점포도 적지 않다. /이상빈 기자](http://t1.daumcdn.net/news/201612/19/chosunbiz/20161219055703338vpod.jpg)
이곳에서 국밥집을 하는 김모(49)씨는 “7~8년 전만해도 24시간 가게를 열어도 늘 손님이 있었는데, 요즘은 고시생이나 간간이 찾는 정도라 영업시간을 줄였다”고 말했다.
관악구청에 따르면 지난 5년간(2012~2016) 녹두거리가 있는 대학동에서 폐업 신고된 술집·음식점(일반음식점·휴게음식점)은 모두 391곳으로 직전 5년간 신고된 266곳보다 46.9%(125곳) 증가했다.
권리금도 떨어졌다. 2009년~2010년 초까지 1억원대였던 권리금이 지금은 2000만~3000만원 선으로 내려갔다.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던 사거리 1층 고기집의 권리금도 2008~2009년 무렵 1억5000만원까지 갔지만 지금은 3000만원 정도로 내려갔다.
대학동 D공인 관계자는 “옛날에 잘나가던 상권을 잊지 못하는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낮추지 않으려고 하지만, 떨어진 권리금을 보면 상권이 많이 죽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 ‘샤로수길’에 상권 내줘
![서울대생들이 자주 찾는 서울대입구역과 낙성대역 사이 ‘샤로수길’. 아기자기한 맛집들과 편리한 교통으로 인근 학생들 외에 일반인들도 많이 찾는 상권으로 떠올랐다. /이상빈 기자](http://t1.daumcdn.net/news/201612/19/chosunbiz/20161219055703497brmq.jpg)
녹두거리의 몰락에는 고시생의 유출 때문이란 이유가 있다. 2009년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제도 도입과 사법고시 축소 및 폐지(예정), 외무고시 폐지와 행정고시 폐지 등으로 고시생들의 유입이 급격히 줄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대학동의 25~29세 주민등록인구는 2008년 4257명에서 2016년 3790명으로 줄었다.
서울대의 지방 학생 비율이 줄어든 것도 녹두거리 몰락의 한 요인이었다. 2004년 서울 출신 서울대 합격생 비율은 전체 서울대생의 29.3%였다.
하지만 2016년에는 40.4%로 12년 새 서울 학생의 비율이 10% 이상 오른 것이다.
인근에서 7년째 자취 중인 서울대생 변성민(27)씨는 “5~6년 전만해도 신입생 환영회나 개강파티 등 학교 행사들을 녹두거리에서 하고 친구 집에서 자는 경우가 많았다”며 “요즘은 서울 출신 입학생들이 늘어서인지, 귀가 시 편의 때문에 교통이 편한 서울대입구역이나 낙성대역 쪽에서 약속 장소를 많이 잡는 편”이라고 했다.
녹두부동산 조형진 중개사는 “예전에는 녹두거리가 양을 많이 주는 식당에 밤새 술 먹는 분위기로 장사가 꽤 잘 됐었다”며 “요즘은 맛집으로 소문난 곳을 선호하는 데다, 가깝다고 가기보다 아기자기한 가게들을 골라 찾아가는 학생손님들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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