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투자

권리금 받게 해준다더니..되레 상가 임대료 급등 '장사 접을 판'

웃는얼굴로1 2016. 1. 27. 10:11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가보호법)은 ‘빵꾸법’이다.”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서 우유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오영란(56)씨. 그는 지난해까지 상암동 먹자골목 초입에서 8년 동안 우유 소매업을 했다. 그러나 상수동 일대가 개발되자 임대인(상가 주인)는 오씨에게 월세를 두 배 올려주든지, 아니면 나가라고 요구했다. 오씨는 당시 120만원이던 월세를 240만원으로 두 배 올려 내면서까지 버텼다. 권리금 회수 기회를 보장하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가 임차인의 권리금을 보호하기 위한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7개월이 지났지만 되려 오른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는 상인들이 적지 않다. 서울에서 신흥 상권으로 부상한 서울 마포구 연남동 일대 상가 밀집 지역. [사진=이데일리 DB]


하지만 권리금을 받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임대인이 주변 시세보다 훨씬 높은 350만원을 월세로 줄 수 있는 임차인(세입자)을 구해오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개정된 상가임대차보호법은 계약 만료 3개월 전부터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권리금 회수 기회를 보장하게 돼 있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3개월 안에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면 권리금 회수 기회가 없다는 얘기다. 오씨는 “상가 주인이 월세를 높여 받으면 다음 임차인 찾기가 어려워지는데 이마저도 3개월 이내에 해결해야 한다”며 “법이 개정됐지만 보호받지 못하는 상인들이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상가 임차인의 권리금 보장을 담은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7개월이 지났지만 곳곳에서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권리금을 서로 챙기려는 상가 임대인과 임차인 간 갈등 속에 임대보증금과 임대료만 오르는 부작용이 생겨나고 있다.


◇법적 허점 많아…되려 권리금 없어지기도

개정된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임대인이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만약 임대인이 방해행위를 하면 임차인은 손해배상 소송을 걸 수 있다.


그러나 오씨의 말처럼 현실에선 애매한 경우가 많다. 사실상 임대인의 임차인 권리금 회수 방해행위를 막을 안전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우선 임대인이 월세를 과도하게 올리는 행위다. 하지만 현행법상 환산보증금(보증금과 월세 환산액을 합한 금액)이 4억원을 넘을 경우 임대료 연 상승률 제한을 받지 않는다. 월세 인상폭이 얼마까지가 과도한지에 대한 기준이 애매모호하다는 얘기다.


건물을 철거·재건축하면 계약 갱신 보호 기간인 5년이 지나지 않아도 임차인을 내보낼 수 있도록 한 조항 역시 논란 거리다. 마포구 상수동에서 경영식집을 운영하던 정모(47)씨는 건물주가 재건축을 이유로 가게를 비우라고 요구해 가게를 비웠지만 이후 임대인이 취한 조치는 인테리어를 새로 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기나긴 법정 싸움을 해야 한다. 손해배상을 받을 권리금 감정평가에 드는 비용 역시 소송을 거는 임차인 부담이다. 보통 건당 500만~800만원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용산구 한남동 A공인 관계자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이후 상가 주인은 대부분 월세나 보증금을 올리고 권리금을 없애고 있다”며 “생계가 급한 이들은 언제 결론이 날지 모르는 분쟁에 시간을 쏟기보다는 월세가 더 싼 곳을 찾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되려 오른 임대료…상권 쇠퇴 원인 되기도

권리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상인들도 적지 않다. 마포구 상암동에서 쭈꾸미 가게를 운영해온 주영훈(가명)씨는 작년 초까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100만원을 냈다. 그런데 재계약 기간을 앞두고 건물주가 보증금 4000만원, 월세 170만원으로 올려 줄것을 요구했고, 주씨는 권리금은 커녕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장사를 접어야 했다.

이 상가의 권리금은 3000만원 정도로, 상가 주인이 결국 권리금을 보증금 명목으로 바꿔 버린 것이다. 이 상가 주인은 주씨가 못챙긴 권리금 만큼을 새로 들어오는 임차인에게 ‘바닥권리금’이란 항목으로 직접 현찰로 챙겨 오히려 이득을 봤다. 반쪽자리 권리금 보호법안이 임대료를 올린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급등하는 임대료가 주변 상권을 쇠퇴시키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부동산 114에 따르면 2013년 4분기까지만 하더라도 서대문구 신촌의 상가 임대료는 1㎡당 4만 6900원으로 홍대(2만 4500원)보다 비쌌다. 그러나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상가 세입자들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2014년 4분기를 기점으로 두 지역의 임대료는 역전된다.


최근 들어선 홍대 일대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홍대 중심 상권의 높은 임대료에 임차 수요가 인근 상수·연남동 등으로 옮겨가면서 지난해 4분기 홍대 상가 임대료는 1㎡당 3만 6800만원으로 전분기보다 2% 가량 하락했다. 홍대 커피프린스골목에서 20여년간 라이브카페를 운영한 곽상환(60)씨는 “많은 이들은 높은 월세를 버티지 못하고 상수동과 합정동 쪽으로 가게를 옮겼다”며 “근처 라이프카페는 이제 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소상공인이 안정적으로 영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가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김승종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개정 상가임대차보호법은 그동안 60여 년간 상인 사이에 있었던 금전 거래의 법적 개념을 확립시켰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이젠 계약 보장 기간을 늘리고 계약갱신권을 강화하는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다슬 (yamye@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