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너른 마당이 있는 집을 지어주기 위해 부모들이 의기투합했다. 내 자식뿐 아니라 모두의 아이를 위해 방 한 칸씩 내어 마당과 수영장이 있는 소셜하우스를 만든 것. 아이들은 일오집에서 친구, 이웃과 더불어 함께 자란다.
대안학교 학부모, 함께 모여 집을 짓다
아이를 아파트에서 키우는 부모 대부분은 "뛰지 마라"는 잔소리를 입버릇처럼 달고 산다. 그렇게 아이를 단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집을 바란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경제적인 문제 등 현실에 쫓겨 그저 막연히 마음속으로 생각만 할 뿐이다. 넓은 마당과 야외 풀장, 텃밭이 있는 일오집은 부모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그런 작은 바람에서 출발한 소셜하우징이다.
혼자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이지만 여럿이 힘을 합쳐 함께 이뤘다. "아이들이 다니고 있던 대안학교 학부모들이 주축이 되어 집을 짓기 시작했어요. 아홉 가구가 주택협동조합을 만들었고 퇴근 후 아이들이 하교한 학교 빈 교실에 모여 토지 매입부터 설계, 시공사 선정, 자금 조성 등 집 짓는 모든 과정을 의논하고 결정했죠. 2013년 5월 입주를 시작했으니, 2년 3개월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승혁이 엄마 안소희 씨는 난관도 많았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지금의 터를 발견했지만 수십 년간 버려져 있던 땅이었고, 심지어 그 땅에 무단으로 집을 짓고 사는 사람도 있었다. 문화재보호지구로 묶여 있어 고도제한에도 걸렸고, 건축비 대출도 쉽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일오집은 14가구와 1채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름도 그래서 일오집이다.
300여 평의 대지에 세 동의 건물을 ㄷ자로 배치하고 그 가운데 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중정형으로 마당과 미니 풀장, 텃밭도 만들었다. 마당을 비롯해 커뮤니티 공간 등 함께 쓰는 공간은 각 세대에서 방 한 칸만큼씩 땅을 내놓았기에 가능했다. 개인 공간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으로 확보한 것. 마당 면적만도 100여 평 정도로 용적률을 양보해서라도 마당 넓은 집을 짓고 싶은 그들의 바람을 그대로 옮겨 지었다.
열네 가족의 취향에 맞춰 그린 집
일오집의 설계는 부산국제영화제 피프 파빌리온을 건축한 한국해양대학교 건축학부의 안웅희 교수가 맡아 진행했다. 그는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구조에서 벗어나 세대별 맞춤 디자인을 적용했다. 단순히 구조가 다른 14채의 집이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각 가정의 라이프스타일과 생활 패턴, 가족 구성원에 맞춰 모두 오더메이드로 디자인을 완성한 것이다.
"일오집의 14집은 모두 다 다르게 생겼어요. 저희 집은 두 개 층을 사용하는 중층형 구조예요. 1층과 2층을 오르내리는 계단 옆에는 짤막하게 미끄럼틀을 만들어두었고, 전용 마당에는 나무 데크를 깐 테라스와 작은 텃밭도 마련했어요."
B동 102호에 사는 이선경 씨는 일오집에서 유일하게 마이너스 옵션을 선택했다. 평소 집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지라 바닥재부터 싱크대, 욕조 등 모든 것을 스스로 발품을 팔아 선택했다. 내 집이 생기면 하고 싶었던 인테리어를 모두 적용한 것. 거실 책장부터 싱크대 틈새에 넣을 수납장 등 필요한 것은 웬만하면 뚝딱 만들어 내는 손재주가 좋은 남편 강성배 씨까지 가세하자 온전히 부부 취향에 맞춰진 집이 완성되었다.
넓은 집은 아니지만 계단 아래 책상을 놓아 간이 서재를 만들고 좁은 욕실에는 두 아이가 들어가도 비좁지 않은 넉넉한 욕조를 만들어 넣었다. 또 마당으로 문이 활짝 열리는 폴딩 도어를 단 작은 공간에는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면서 일할 수 있도록, 핸드메이드 비누를 만드는 이선경 씨만의 작업실도 있다. 애초에 설계 단계부터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췄기 때문에 집 안 구석구석 자투리 공간까지 알차게 활용하고 있다.
총 4층으로 지어진 B동은 101호와 102호, 그리고 401호, 402호 이렇게 네 세대가 산다. 한 세대가 두 층을 사용하는 구조인데, 재미있는 것은 윗집의 출입문이 3층이 아닌 4층으로 나 있다는 것. 가족들이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거실을 4층에 두어 층간 소음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설계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눈에 띄는 점은 1층에 정원이 있다면 4층 집에는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천창과 밖으로 시원하게 탁 트인 창문이 있다는 것. 그들은 그렇게 같은 집에 살지만 서로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소유하고 누린다.
"거실과 주방이 있는 4층이 아이들의 놀이방 겸 저의 작업 공간이에요.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요. 아이들이 뛰어도 어차피 3층 역시 저희 공간이기 때문에 층간 소음 걱정이 훨씬 덜해요."
402호 김민지 씨네 가족은 일오집이 처음 입주를 시작한 지 일 년쯤 뒤인 지난해 5월 부득이한 사정으로 빠지게 된 다른 세대를 대신해 이사 왔다. 서현이와 서준이는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언니 오빠가 생긴 것이 좋다. 한복디자이너인 민지 씨와 남편 창환 씨가 급한 일이 생겨 아이를 챙길 여력이 되지 않을 때는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것도 든든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엄마에게는 언제든지 육아를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하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힘이 된다.
남편 역시 학교와 직장에서 만난 친구들과는 또 다른, 제각각 직업이 다양한 형 동생으로 새로운 인맥이 형성되었다. 처음에는 반대하던 부모님들도 지금은 지지하고 응원해준다.
"일오집에 들어오고 나서 생활비가 눈에 띄게 줄었어요. 아파트에 살 때는 주말이면 아이들과 놀이공원이든, 체험 프로그램이든 어디든 나들이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 같은 것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는 거죠. 수영장도 있고, 텃밭도 있고, 마당도 있고, 도서관도 있고, 함께 놀 수 있는 친구들도 여기 다 있으니까요."
일오집은 열네 가족 모두에게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가장 만족스러운 집이다.
기획: 전수희 기자 | 사진: 박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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