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 역학

[박규태]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웃는얼굴로1 2015. 7. 19. 21:22

   관 속의 시신이 사라지는 묘지

 

 예로부터 풍수에서는 기이하고 신기한 현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구전으로 많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묘지에 관 뚜껑을 열어보니 시신에 입힌 옷은 그대로 있는데 돌아가신 분의 유골이 어디론가 사라졌다.”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가 하면 산소를 다른 곳으로 이장하려고 땅을 파서 보니 관이 원래 있던 장소에서 아래나 위로 옮겨져 있었다.”라고 하는 말도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예전에 비해서 듣기 어렵게 된 것은 사실이나 요즘에도 가끔 듣게 되는 전설의 고향 같은 이야기들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일반인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나 풍수를 미신으로 생각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신비함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과학적인 사실을 간과하게 되거나, 일부 영적인 문제로 포장하여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의 소행을 덮는 일이 되기 합니다. 이 시간에 이와 같은 이야기들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의리지장이라는 장례제도

 

 시신이 없어졌다고 주장하는 묘지들을 살펴보면 그럴만한 이유들이 숨어 있습니다. 사회 관념이 경직되었던 시대에는 남편이 없거나 호적에 올리지 못한 자식을 키우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이 당시에는 이러한 것들이 흉이 되었기 때문에 원치 않는 자식이 생기거나 결혼하지 않고 동거 중에 한 쪽이 사별 또는 가출을 한 경우 자손의 혼사를 막게 되므로 비밀리에 시신 없는 가묘를 만든 뒤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이와 비슷한 풍습은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전쟁이나 오늘날 메르스 같은 돌림병이 마을을 돌면 시신을 화장하였으며, 전쟁이 일어나 시신을 찾지 못한 부모님은 관속에 자식이 살아생전 입었던 옷을 시신이 입고 있는 것처럼 위치를 만든 뒤 장사를 지내는 의리지장(衣履之葬)’이라는 장례제도가 있었습니다.

 

 가깝게는 일제 강점기, 징용에 끌려가 돌아오지 못하였거나 6.25 전쟁 중에 죽어 유골을 찾지 못한 경우, 정부에서 보내 준 사망 통지서 또는 살아생전 입었던 옷을 관에 넣은 후 묘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사연 없는 무덤은 없다

 

 정리하면 시신이 없어지는 첫 번째 이유는 시신을 묻은 묘가 산성 땅이기 때문입니다. 산성 성분은 유골을 녹이므로 시신이 놓여 있던 곳을 살펴보면 그림자 같은 아주 희미한 흔적들이 드문드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산소를 매장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후손들이 알아서 묻지 않는 이상 가슴 아파할까 봐 쉽게 말하지 못하는 장소입니다.

 

 두 번째는 전쟁 중에 시신을 찾지 못한 경우입니다. 이러한 관에는 시신 대신 편지나 옷 같은 물건들을 정리해 놓아 매장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연을 짐작합니다. 이 사실을 들어서 알고 있는 후손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후손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세 번째는 사연이 있는 묘지들입니다. 이것이 유골이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경우일 것입니다. 동거 혹은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워 주위 사람들 모르게 시신 없는 관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 경우 지관들이 살아 있는 배우자에게 추궁하면 사연을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라는 속담이 생각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