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조선 초기 한양 천도 과정에서 정도전이 중심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필자는 지난 5월 24일자 B2면 칼럼에서 정도전이 한양 천도를 반대해 이성계의 역린을 건드렸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일부 독자들은 "생소한 이야기"라며 의문을 표시했다. 오랫동안 그 문제를 연구한 풍수학자로서 필자가 보는 관점은 이렇다.
1392년 7월 고려를 멸망시킨 이성계는 한 달 만인 8월 한양 천도를 선포한다. 그럼에도 다시 이듬해인 1393년 1월 이성계는 권중화가 추천한 계룡산을 살피러 남쪽으로 내려간다. 이렇게 천도는 쉽지 않았다. 천도에 대한 최대 논쟁은 1394년 8월 8일부터 8월 13일 사이에 벌어진다. 당시 강력한 도읍지 후보로 떠오른 무악(현 연세대 일대)과 한양(현 경복궁 일대) 현장에서 무려 6일 동안 천도를 둘러싼 풍수 논쟁이 벌어진다. 당시 천도론은 크게 세 파로 나뉜다.
- 정도전의 위폐와 영정이 모셔져 있는 경기도 평택 문헌사.
첫째 부류는 이성계의 천도론 적극 찬성론자들이다. 여말선초 지식인들 가운데 음양·풍수의 3대 대가로 알려진 권중화·하륜·무학이 중심 세력이다. 권중화는 계룡산을, 하륜은 무악을 추천할 정도로 풍수에 달통하였다. 특히 하륜은 개국공신이었으나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의 풍수설을 바탕으로 계룡산 도읍지를 철회시킴으로써 일약 스타가 된 정치인이었다.
둘째는 정도전이었다. 성리학에 바탕을 둔 신념(나라의 다스림은 지세가 아니고 사람에게 달렸다)으로 반대하였다. 정도전은 공민왕의 몰락 이유 가운데 하나가 토목 공사를 크게 일으켰기 때문(大興土木)이라는 사실을 언급할 정도였다. 천도에 따르는 토목 공사가 갓 태어난 조선을 주저앉힐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행동 영역을 성리학과 실용주의에 한정시킴으로써 결국은 풍수와 도참을 신봉하였던 세력들(이성계 포함)에게 버림을 받는다.
셋째 부류는 개경에 기득권을 갖고 있던 구신(舊臣)들과 이들을 '부업(副業) 고객'으로 삼던 서운관 관리(풍수사)들이었다. 개경이 최고의 길지라는 이유로 반대한다. 새로운 세상을 거부하였거나 그 당위성을 읽어내지 못한 기능인들이었다.
1394년 8월의 천도 논쟁은 반대론이 우세였다. 이성계는 어떻게 대처하였을까. 갑자기 그는 화를 내며 말했다. "나는 천도를 결정했다… 의심스러운 것은 소격전(신·별 등에 지내는 제사를 올리는 도교 사원)에 가서 결정하겠다." '신탁(神託)에 따르겠다'는데 정도전이나 서운관 관리(풍수사)들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 상황이 반전된다.
정도전도 속으로 역린을 건드렸다고 순간 뜨끔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술에 취하면 곧잘 "한고조(漢高祖·이성계)가 장자방(張子房·정도전)을 쓴 것이 아니라 장자방(정도전)이 곧 한고조(이성계)를 쓴 것이다"라는 말을 하곤 하였다. 이성계 입장에서 불편한 진실이었다.
8월 24일 한양이 조선의 도읍지로 최종 결정된다. 며칠 후 한양의 주요 건물(종묘·사직·궁궐·시장·도로)의 공간 배치가 결정된다. 이때 주도적 역할을 한 이는 권중화였다. 권중화는 정도전보다 나이가 스무 살이나 많은 정치 대선배였다. 만약 정도전이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면 풍수설을 무시하고 광화문에서 숭례문(남대문)까지 일직선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럴 경우 관악산 화기(火氣)가 곧바로 경복궁을 치게 된다. 이를 피하기 위하여 숭례문에서 광화문까지의 도로의 흐름을 틀어 관악산의 화기를 떨쳐낸다. 비보·진압풍수이다. 숭례문(崇禮門) 현판을 세로로 세워놓은 까닭도 마찬가지이다. 가운데 글자 '예(禮)'가 오행상 불(火)에 해당된다. 이를 세워 놓음은 관악산 화기에 맞불을 놓는 행위이다. 풍수에 능한 권중화의 발상이다.
한양에 궁궐이 완성된 1395년 10월 이성계는 정도전에게 궁궐의 여러 전각 이름을 짓도록 명한다. 경복궁·사정전·근정전 등 지금 우리가 경복궁에 가면 볼 수 있는 전각과 사대문 이름들은 정도전의 작품이다. 정몽주의 죽음 이후 최고의 성리학자로 자부하던 정도전이 이 부분만큼은 적임자였다. 패자에 대한 동정심 때문인지 한양 천도 과정에서 정도전의 역할이 지나치게 많이 부풀려 있다. 그러나 풍수적 관점에서 보면 그는 일찍이 이성계·이방원의 눈 밖에 난 역사의 하수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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