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정도전'이 인기이다. 역사 속 인물과 극 중 인물은 다르다. 사극 작가가 정도전이라는 인물을 통해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를 말할 뿐이다. 기본적으로 허구(픽션)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 역사 속 정도전은 어떠했을까? 시대의 영웅이었을까, 역사의 하수인이었을까? 시대의 영웅이자 동시에 하수인이었다. 독일 철학자 헤겔(Hegel)에 따르면 이성(Vernunft)은 자신의 궁극목적(자유)을 실현시키기 위한 도구로서 욕망과 정열에 사로잡힌 어느 개인을 활용한다. 그 개인은 실천가이자 정치인으로서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를 통찰한다. 알렉산더, 카이사르(시저), 나폴레옹 등과 같은 세계적 영웅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러나 이성은 그들의 최후를 결코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악전고투 만신창이 속에서 자신들의 목적을 성취하는 순간 이성은 그들을 폐기한다. 이들의 활동 무대가 바로 역사(Geschichte)이다. 안방극장에서 사극이 인기를 끄는 까닭은 이러한 시대영웅(동시에 하수인)들이 '이성의 간교한 지혜(理性의 奸智: List der Vernunft)'에 놀아나는 '광대놀이'가 재미있어서일 것이다.
- 태조 이성계 / 정도전
정도전은 분명 시대의 영웅이자 조선 개국의 일등 공신이었다. 고려 멸망과 새로운 세상의 필연성을 통찰하였다. 이성계를 자신의 목적 실현 도구로 삼았다. 마침내 이성계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열었지만 얼마 후 죽임을 당한다. 흔히 그의 죽음을 이성계의 후계자를 둘러싼 권력 다툼에서 패했기 때문으로 묘사한다. 과연 그게 전부일까.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이성계와 그를 도왔던 개국 공신들의 풍수관이 미묘한 차이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미세한 차이지만 나라를 연 창업자에게는 개국 공신들의 발언 하나하나가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특히 풍수 관련 발언은 매우 민감하다. 우리나라보다 왕조의 흥망성쇠가 빈번하고 많은 왕조가 있었던 중국의 경우 개국을 전후하여 어김없이 풍수 논쟁이 등장한다. 그 가운데 가장 큰 풍수 주제는 새로운 도읍지 선정이다. 불가피하게 기존 도읍지를 쓸 수밖에 없을 때라도 전 왕조의 궁궐을 쓰지 않았다. 허물고 다른 곳으로 옮겨지었다. 왜 그러한가?
원나라를 세운 쿠빌라이(忽必烈)의 일등 공신이 유병충(劉秉忠)이었다. 학자 출신 정치가로서 풍수에도 조예가 깊었다. 원나라 수도(현재의 베이징)의 입지 선정과 도성 건설도 그의 작품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유병충은 말한다. "옛날부터 나라를 세움에 있어 가장 먼저 지리의 형세를 이용, 왕기(王氣)를 살리고 이를 바탕으로 대업을 성취한다(自古建邦立國, 先取地理之形勢, 生王脈絡, 以成大業)". 이 말은 나라를 세운 이들에게 금과옥조였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고려를 멸망시키고 가장 먼저 한 것이 천도였다. 지기가 쇠했다고 여겨지는 개성을 다시 조선의 도읍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이성계의 입장이다.
이러한 의도를 간파한 조준·김사형 등 개국 공신들은 "옛날부터 임금이 천명을 받고 일어나면 도읍을 정하여 백성을 안주시키지 않음이 없었습니다"라는 말로 동조한다. 무학 역시 이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어디로 할 것인가에 대해 "여러 사람의 의견을 따라서 결정하십시오"라는 의견을 덧붙였을 뿐이었다. 반면 정도전은 이 문제를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지 유학자다운 발언을 한다. "나라의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은 사람에게 있지 지리의 성쇠(盛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때가 1394년 8월이었다. 그러나 이성계 입장에서는 이것은 일종의 '역린(逆鱗)'을 건드린 불쾌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정도전 이 친구와 계속 함께 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398년 그는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때 이성계는 아직 살아 있었다. 우연인지 이성계의 천도론-조선 왕조의 대업을 위한 토대-에 적극 찬성하였던 조준·김사형·무학 등은 천수를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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