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한국만 늘어나는 가계빚…금융당국이 `부실 위험` 사실상 방조

웃는얼굴로1 2011. 1. 12. 00:43

가처분소득 대비 143%
위기 겪은 美보다 훨씬 높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억제하려면 정책금리를 인상하고 유동성을 회수해야 한다. 하지만 고등학교 경제학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런 간단한 정책을 정부는 쉽사리 실행하지 못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지금도 늘어나고 있는 가계부채가 또 다른 시한폭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도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경기부터 살리자'며 작년 한 해 동안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시간만 보냈다. 더욱이 작년 8월29일 주택담보대출 규제인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할 때에는 '한시적 인하'카드를 썼다.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면 '원위치'시키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시장에는 '3월 전에 주택담보대출을 다 받으라'는 신호로 인식됐다.

전문가들은 금융 당국이 적어도 1년 전부터 가계대출의 변동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금융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손질해뒀다면 이런 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가계대출 얼마나 심각하기에

한국은행에 따르면 1 · 2금융권을 통틀어 본 가계대출 잔액은 2008년 말 516조원에서 2009년 말 551조원으로,작년 10월에는 584조원으로 증가했다. 11~12월 주택담보대출만 8조원 이상 증가(금융감독원)한 점을 고려할 때 12월 말 가계대출 잔액은 600조원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계부채 위험 수위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43%다. 일본(135%)이나 미국(128%),독일(98%)보다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130%)을 크게 웃돈다.

장민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다른 나라들은 줄어드는 추세인 데 비해 한국은 이 비율이 계속 증가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위기를 겪은 국가들의 경우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50~180%였다"며 "이 수치가 150% 안팎에 이르면 금리 인상이 가계에 큰 부담으로 다가오게 된다"고 설명했다.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93%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선 정부의 기준금리 인상은 가계에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 고정금리제로의 전환을 적극 유도하지 못한 금융당국의 책임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뒷북치는 금융당국

금융당국은 가계부채의 증가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제기되자 작년 말 발표한 '올해 업무보고'에 가계부채 문제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구체적으로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예대율 규제를 지속하고 △장기 · 고정금리 대출을 확대하며 △대출 거치기간 연장을 제한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이런 제도적 변화가 실제 효과를 내려면 올해 하반기나 내년 초는 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금융연구실장은 "이미 늘어난 가계부채를 다시 줄이기는 쉽지 않다"며 "추가적인 대출을 억제하는 정도인데, 그 효과는 상당히 지난 후에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금융감독 당국 관계자는 이와 관련, "작년에 경기가 덜 풀린 상황이었기 때문에 출구전략을 고민하던 정부에선 가계대출 문제에 적극 대응하기를 꺼렸다"며 "제도적인 준비를 미리 했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은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가계소득 · 주택가격 안정 필수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금융감독 당국과 기획재정부 한은 등이 가계부채에 대응할 수 있는 종합 대책을 서둘러 내놔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은미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장기적으로 가계부채 문제를 연착륙하게 만들려면 우선 가계소득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주택가격을 적절히 관리해 급락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센티브를 확실히 제공해 고정금리로의 전환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출 이자만을 갚는 현재 관행에서 벗어나 원금까지 갚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저소득층의 가계부채도 심각한 수준인 만큼 이들의 소득을 늘릴 방법도 함께 강구해야 근본적 처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은/안대규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