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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운명의 주인공은 바로 나!

웃는얼굴로1 2014. 4. 19. 18:27

공병호

 

저녁 늦게 아내가 가게 문을 닫고 집에 들어왔을 때, 제가 낮에 읽었던 책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어쩌면 이 사람들은 아들과 딸 그리고 아내와 남편 모두 각자의 인생에서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게 하고 또 그것을 당연하게 여길까’ 하는 이야기였죠.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워렌버핏의 아내 수잔버핏입니다. 이제는 고인이 되었죠. 웨렌버핏이 유언장에 많은 재산을 남겼고 또 자신이 먼저 죽었을 경우에 유언장을 집행하는 제1인자로 선택했던 아내가 암으로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수잔버핏은 1952년에 세계 최고의 투자가로 자리 잡게 된 워렌버핏과 결혼해서 슬하에 3명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결혼 25년째가 되던 해 수잔버핏은 남은 인생을 좀더 자신을 위해서 살고 싶다는 결심을 하고 남편 곁을 떠나 센프란시스코로 향하게 됩니다. 부부사이에 불화가 있었던 것은 전혀 아닙니다. 이제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1970년대의 이야기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워렌버핏은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행과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내 아내는 블루스와 재즈를 연주하고 싶어 했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아내는 샌프란시스코로 가게 되었다. 1970년대 중반의 일이였고 수잔과 나 우리 두 사람은 늘 가깝게 지냈으며 서로 오고가기를 반복했다. 이제 아내는 일년에 2백시간에서 3백시간을 제트기를 사용하게 됐는데 이 같은 시간은 린더버그 보다도 훨씬 더 오랜 시간을 공중에서 보낸 것이다.” 아내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아내가 자신의 삶을 개척해 갈 수 있도록 해주는 남편도 멋지지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수잔의 용기에도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수잔버핏의 이야기에 이어서 저는 아내에게 낸시 펠로시(Nancy Patricia D’Alesandro Pelosi)의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낸시 펠로시는 미국 최초의 하원의원 의장을 지낸 사람입니다. 집은 샌프란시스코에 있습니다. 그녀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또 때로는 금요일까지 워싱턴 디씨에서 의원생활을 했습니다. 낸시 펠로시가 절친하게 지내던 하원의원 살라가 병으로 죽게 됐습니다. 그때 살라가 낸시 펠로시로 하여금 자기 자리를 이어서 반드시 정치에 진출하기를 간곡하게 권하게 됩니다. 그전까지 낸시 펠로시는 학창시절에 만난 은행가인 남편과 함께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6년에 걸쳐 무려 5명의 아이를 연속으로 낳아서 키우는 멋진 주부로서 또 힘든 주부로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낸시 펠로시는 아이를 키우는 가운데서도 언젠가 아이들이 독립할 시점이 되면 로우스쿨을 진학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하원의원 살라가 죽음을 맞이하게 됐을 때 낸시 펠로시의 나이는 47세였습니다. 그때 마지막 남은 과제는 고등학교 2학년이였던 딸 알렉산드라였습니다. 그녀는 알렉산드라를 불러서 이렇게 물어봅니다. “일년 뒤에 네가 대학을 갔을 때 엄마가 정치계에 뛰어 드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지만, 지금 네가 한창 중요할 때 엄마가 너를 떠나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워싱턴에서 의정생활을 해야 되는데, 너는 내가 그렇게 하는 것에 동의할 수 있겠니? 엄마는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던지 간에 행복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딸에게 의견을 물어보게 됩니다. 막내 딸 알렉산드라는 이렇게 단호하게 이야기 합니다. “엄마, 지금부터는 엄마 자신의 인생을 사세요.” 낸시 펠로시는 딸의 이와 같은 권유에 용기를 얻어서 자신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 후 낸시 펠로시는 하원의원으로 선출되고 또한 역사상 최초의 여성하원의장에 당선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이면에는 두 명의 굳건한 남편 워렌버핏과 은행가의 남편이 있게 되죠.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가는데 무척 익숙한 사람들이였습니다. 어쨌든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가정을 이루지만 각자의 인생은 스스로가 책임을 지고 살아가게 하는 멋진 사례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