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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보유도 투자다”…‘제2의 워런 버핏’ 세스 클라먼

웃는얼굴로1 2014. 4. 16.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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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 클라먼 회장.

굴리는 돈만 270억달러(약 28조9000억원)에 달하는 미국의 대형 헤지펀드 바우포스트 그룹(Baupost Group)을 이끄는 헤지펀드업계 거물이다. 한국에는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이름이지만 클라먼 회장은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 회장, 폴 존슨 폴슨코 회장 등 헤지펀드 업계 전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물이다.

특히 헤지펀드를 이끌고 있지만 기업가치분석을 통한 투자를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가치투자자로 유명하다. 언론이 클라먼 회장을 곧잘 투자의 귀재이자 가치투자 대가인 워런 버핏 버크셔헤서웨이 회장과 비교하는 배경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에 본사를 두고 있는 버크셔헤서웨이 회장인 워런 버핏을 오마하의 현인(oracle)으로 부르는 것처럼 클라먼 회장은 보스턴의 현인으로 부른다. 바우포스트그룹 본사는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자리를 잡고 있다.

바우포스트그룹에 돈을 맡긴 고객들은 클라먼 회장을 사이비종교(Cult) 지도자처럼 맹신하고 따른다. 클라먼 회장이 이처럼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것은 그가 거둔 놀라운 투자 성적 때문이다. 코넬대학과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을 졸업한 클러먼 회장은 지난 1982년 바이포스트그룹을 설립한 이후 연간 기준으로 단 두 차례만 손실을 봤을 뿐 지난해까지 나머지 19년간 매년 플러스 수익률을 냈다. 시장상황에 따라 한두 해 출중한 수익률을 내는 펀드매니저는 많아도 이처럼 오랫동안 꾸준한 수익을 올리는 펀드매니저는 드물다. 더 놀라운 것은 설립 후 연평균 18%라는 대박 수익률을 거두고 있다는 점. 2700만달러의 투자금으로 시작한 바우포스트 운용자산규모가 22년 만에 1000배인 270억달러로 급증한 이유다. 클라먼 회장은 지난 1997년 외환위기 후 주가가 폭락한 국내 제약사에 투자해 큰 돈을 벌기도 했다.

클라먼 회장이 지난 1991년 내놓은 투자전략서인 ‘안전마진’은 중고시장에서 한 권당 1500달러에 팔릴 정도로 명품 투자서적이 됐다. 요인으로 기업 펀더멘털에 비해 시장에서 형성되는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질 때 투자하면 확실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안전마진의 개념이다.

현금에 집착하는 가치투자자

클라먼 회장이 탁월하면서도 꾸준한 투자수익을 올리는 데는 그만의 비결이 있다. 헤지펀드를 이끌면서도 고위험 고수익을 좇는 대다수 헤지펀드와는 달리 과도한 위험을 피하고 보수적으로 조심스럽고 안전하게 투자하는 게 그의 투자 제 1원칙이다. 다른 헤지펀드와 달리 현금보유 비중을 높게 가져가는 것도 이처럼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넌다”는 클라먼 회장의 신중한 투자철학 때문이다. 시장전망이 불확실하고 좋지 않을 때는 투자 포트폴리오의 50% 이상을 현금으로 보유하기도 한다. 장이 빠질 때 현금을 쥐고 있으면 그만큼 돈을 버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 현금을 쥐고 있어야 투자기회가 왔을 때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게 클라먼 회장의 생각이다.

무수익 자산인 현금을 신주단지 모시듯 꼭 껴안고 있는 것을 투자자들이 별로 좋아할 것 같지 않지만 바우포스트그룹에 돈을 맡긴 투자자들은 클라먼 회장의 현금사랑을 굳이 비판하지 않는다. 현금비중과 상관없이 다른 헤지펀드보다 더 좋은 수익률을 매년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 가치투자를 신봉하는 클라먼 회장은 아무리 시장전망이 좋고 주가상승 모멘텀이 확실하더라도 기업 내재가치보다 더 오른 주식은 쳐다보지 않는다. 이런 점은 버핏 회장과 많이 닮아있다.

하지만 버핏 회장과의 차이점도 있다. 억만장자 버핏 회장은 “주식을 얼마만큼 오래 보유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가장 이상적인 것은 영원히(forever) 소유하는 것”이라며 “주식도 부동산처럼 장기투자를 하라”고 투자자들에게 조언한다. 반면 클라먼 회장은 장기투자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정기적인 투자포트폴리오 자산배분 조정을 선호한다. 시장흐름 변화에 따른 투자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다. 1분기 이상 똑같은 포트폴리오를 가져가는 일이 드물 정도라고 한다.

증시랠리는 트루먼쇼처럼 허구다

그런데 버핏 회장과 견줄 만큼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가치투자 거물 중 한 명인 클라먼 회장이 자산거품 경고등을 울렸다.

클라먼 회장은 현재 글로벌 증시 환경을 자기가 살아온 세상이 실제로는 인위적으로 짜맞춰진 리얼리티쇼였다는 것을 남자주인공(짐 캐리)이 발견하게 되는 지난 1998년 영화 <트루먼쇼>(The Truman Show)에 비유하고 있다. 증시 트루먼쇼의 감독은 바로 벤 버냉키 전 연준의장,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총재 등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맡고 있다. 그리고 이들 중앙은행장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유동성의 바다에서 투자자들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강력한 상승장(불마켓)에 빠져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영화 <트루먼쇼> 주인공이 결국 이 모든 것이 현실세계가 아니라는 점을 밝혀내는 순간, 대혼란에 빠지는 것처럼 지금 시장도 왜곡된 시장실체를 발견하는 즉시 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으로 빠져들 것이라는 게 클라먼 회장의 경고다.

클라먼 회장은 지난 3월 고객들에게 보낸 투자서한을 통해 “기업이익 증가세가 크지 않았음에도 (지난해) S&P500지수가 32%, 나스닥지수가 40% 급등했다”며 “시장과 실물경제와의 간극이 넓어지고 있다.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미국증시는 역사적으로 상당히 비싼 수준에 다다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클라먼 회장은 “투자자들이 시장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시장 반환점은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증시 부양기조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을 투자자들이 알 때가 될 것”이라며 증시 대폭락의 전조로 금리오름세를 꼽았다. 클라먼 회장은 “언제 심각한 조정이 올지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시장이 반대(약세장)로 돌아설 때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투자자들은 끝이 없이 떨어지는 시장상황에 직면하고 별탈없이 넘어갈 수 있는 투자자는 극소수 일 것”이라고 암울한 비관론을 펼쳤다. 큰 폭 증시 조정을 전망하고 있는 바우포스트그룹은 이미 지난해 고객들에게 40억달러의 투자자금을 돌려준 뒤 아예 신규 투자금을 받지 않고 있다.

클라먼 회장의 투자 인사이트

클라먼의 투자철학은 과도한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이다. 클라먼 회장은 “탁월한 가치투자자는 탐욕이 일을 망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가치투자자는 인내하고 원칙을 지켜야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탐욕을 부리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 세계적인 헤지펀드 회장이지만 그의 책상에는 각종 금융정보를 제공하는 블룸버그터미널이 없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하는 주식시장 변동성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란다. 클라먼 회장은 거래비용이 보유자산을 갉아먹도록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과도하게 손바뀜을 자주 하면 거래 비용만 커진다. 일단 계획을 세운 뒤 이를 지키고 변화가 필요할 경우에는 가장 값싼 트레이딩 방식을 찾으라고 주문한다.
 
시장흐름을 따라가려면 굳이 대표주식들을 따로 사기보다는 지수상장펀드(ETF)에 투자하는 게 거래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는 격언이 있듯이 자산다양화도 중요하다. 시장 흐름에 따라 포트폴리오 자산배분을 재조정(rebalance)하는 것도 잊지 말라고 조언한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3호(2014년 0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