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변 본사 둔 SK·한화 등 곤욕
호사가들 "하류 한강물, 상류 끌어올려 물길이 자연을 역류해 불길하다" 주장
풍수학자 최창조씨 "물 퍼올려 흘려도 죽은 하천이 살아나면 길한 풍수" 반박
기업 어려움 겪을 때면 어김없이 등장
1985년 국제그룹 도산땐 '용산 氣가 세서'… 1999년 대우그룹 분해땐 '서울역 잔혹史'
"청계천은 돈이 흐르는 명당"
"매일 새벽 국내서 가장 많은 현금 거래, 도매시장들 포진… 여기 터 잡는 건 당연"
1985년과 1999년 각각 국제그룹과 대우그룹이 분해됐을 때, 두 그룹의 본사가 있던 서울 용산과 서울역 주변의 풍수(風水)가 입방아에 올랐다. 역사적으로 외세의 군사 주둔지였던 용산은 지기(地氣)가 강해 국제그룹이 결국 군사정권의 칼을 맞았다는 괴담, 서울역 동쪽 지역은 지형상 건물이 해가 지는 서쪽을 향하는 형상이라 대우그룹도 결국 낙조(落照)할 수밖에 없었다는 괴담이다. 이런 괴담은 같은 지역에 있는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경제계를 휘돌아 '용산 잔혹사(史)', '서울역 잔혹사'라는 스토리까지 만들어냈다. 서울역 주변에 본사를 둔 CJ그룹 총수가 구속되고 STX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때도 그랬다.
이번엔 비슷한 풍설이 서울 청계천을 두고 솔솔 나오고 있다. 청계천 변에 본사를 둔 SK와 한화가 총수 구속으로 어려움을 겪고 작년 본사를 청계천 변으로 옮긴 동양그룹이 자금난으로 공중분해 위기에 몰리자, "청계천 역시 기업 하기 어려운 풍수가 아니냐"는 것이다. 호사가들은 워크아웃 중인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총수 모자(母子)가 함께 구속된 태광그룹(흥국생명)의 불운도 괴담에 함께 엮는다. 두 사옥이 있는 신문로는 청계천의 상류인 백운동천(川)이 흐르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와 1970년대를 거치며 복개됐지만 수맥(水脈)이 살아있다면 똑같이 불길한 기운을 받는다는 것이다.
청계천 풍수를 둘러싼 괴담은 청계천 복원의 방식과 관련돼 있다. "하류의 한강물을 상류로 끌어올려 흘리는 방식이기 때문에 물길이 자연을 역류하고 있다. 그래서 불길한 풍수"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청계천은 수심을 40㎝로 유지하기 위해 하루 13만t이라는 많은 물을 인위적으로 흘려야 한다. 이를 위해 한강 자양 취수장에서 매일 10만t의 물을 퍼올려 정수한 뒤 총 길이 11㎞의 송수관을 통해 청계천에 공급한다. 모자라는 물은 지하철에서 나오는 지하수로 채운다. 한 환경운동가는 이를 두고 "한강물을 거꾸로 올려 물을 흐르게 하니 혈류를 역류시키는 꼴이라 경제가 시들며 망할 도리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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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남쪽에 나란히 서 있는 한화그룹 장교동 사옥과 동양그룹 본사 모습. 상류 쪽 천북(川北)에 사옥을 둔 SK그룹까지 세 곳이 잇따라 어려움을 겪으면서, 재계에선 청계천의 풍수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풍수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곳은 예나 지금이나 명당”이라고 말한다. / 채승우 기자
◇청계천의 풍수는 원래 인공적인 것
이에 대해 풍수학자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는 이렇게 일축했다.
"풍수의 이념은 환경에 손을 대지 말자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살기에 이로운 쪽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물을 퍼올려 흘린다고 해도 그 결과로 시커멓게 죽어 있던 하천에 맑은 물이 흐르고 물고기와 오리가 뛰논다면 그게 풍수의 이념에 부합한다." 하류의 물을 상류로 끌어올려도 그것이 사람을 풍요롭게 한다면 '길한 풍수'라는 것이다. 그는 2007년 발간한 책 '도시풍수'에서 "어찌 물이 경제를 지배한다 말인가"라며 비과학적 비판을 질타했다.
"청계천의 맑은 물이 풍수의 길한 기운을 만든다"는 사고는 도성(都城)의 풍수를 매우 중시한 조선조 때부터 이어졌다. 그래서 왕조는 서슴없이 물길에 손을 댔다. 고려시대까지 이름 없는 자연하천이었던 청계천이 명당수로 자리한 것은 조선 개국 이후였다. 명당수란 왕조가 그 기운을 밝게 하기 위해 궁궐 가까이 둔 물길이다. 경복궁 서북의 백운동에서 발원해 서울의 도심부를 관통하며 중랑천에 이르는 13.7㎞의 청계천은 그 입지 때문에 조선시대 '내명당(內明堂)'으로 불렸다. 조선시대 한강은 '외명당(外明堂)'으로 자리했다.
조선조는 내명당에 맑은 물이 흐르도록 청계천을 깊고 넓게 팠다. 대표적인 공사는 태종과 영조 때였다. 태종 11년(1411년) 조선조는 5만2800명을 동원해 청계천을 정비하는 대규모 공사를 벌였다. 영조 때인 1760년엔 57일간 21만명을 동원해 개천 폭을 넓히고 석축을 쌓고 수로를 직선화했다. 이것이 현재 청계천 수로의 원형이다. 예부터 청계천의 풍수는 그곳에 사는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 자연 그대로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조성된 것이다.
◇권력과 자본이 상생하던 청계천
청계천 변은 2005년 청계천 복원 이후 서울의 새로운 비즈니스센터로 변모했다. 50대 그룹 중 6곳이 이곳에 본사를 두고 있다. 청계천 북쪽보다 남쪽이 집중적으로 개발돼 대기업의 건물 상당수는 청계천을 북쪽에 두고 자리하고 있다. 이런 모양으로 진행된 청계천 개발은 용산 개발과 맞물리면서 "앞으로 서울의 빈부를 가르는 말은 '강남·강북'이 아니라 '천남(川南)·천북(川北)'이 될 것"이란 이야기도 한때 돌았다.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천북'은 권력(청와대), '천남'은 자본의 센터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우연일까. 조선시대에도 청계천은 도성 내부를 권력과 재력으로 거의 정확하게 양분했다. 청계천 북쪽으로는 궁궐과 종묘사직, 주요 관청이 들어섰고 남쪽으로는 중인과 하층민의 민가와 상업 지대가 들어섰다. 계급적으로는 천북은 권력을 쥔 양반들이, 천남은 몰락한 양반이나 기술관료·장인·역관·상인들의 터전이 됐다. 조선 후기 영조 시대에 이르면 의관·역관 등 부유한 중인들이 부촌을 형성한 천남에서는 그 시대 자본가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지은 호화로운 집들이 줄줄이 들어선다. 청계천의 준설을 결정한 영조로서도 이 거대한 고대광실(高臺廣室)의 철거 문제가 골칫거리가 되기도 했다.
조선시대 청계천은 때론 협조하고 때론 질투하고 갈등한 권력과 자본의 경계선으로 자리한 것이다. 조광권 서울시교통연수원장은 '청계천에서 역사와 정치를 보다'란 책에서'질긴 역사적 관성이 작용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물론 합리적 설명도 가능하다. 임희지 서울연구원 도시공간연구실장은 "청계천 남쪽에 빌딩군이 들어선 것은 재개발이 청계천 남쪽부터 본격화돼 대형 건물이 들어설 만한 큰 부지들이 나왔기 때문"이라며 "북쪽은 번화가인 종로에 인접해 있어 넓은 부지가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1970년대 강남처럼 상대적인 낙후가 '천남'의 개발을 앞당겼다는 것이다.
◇청계천은 돈이 흐르는 서울의 핏줄
풍수학자인 우석대 김두규 교수는 "명당수 청계천은 지금도 변함없는 명당"이라고 말했다. "조선시대엔 명당수 청계천을 따라 물류가 움직였고 그때 조성된 큰 시장들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청계천은 한양이란 생명체의 큰 핏줄이고 남산·인왕산·북악산의 개울은 작은 핏줄에 해당한다. 대한민국에서 매일 새벽 가장 많은 현금이 거래되는 도매시장들이 그곳에 포진하고 있다. 이익 창출을 최대의 목표로 하는 대기업이 이곳에 터를 잡는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요즘 어려움을 겪은 한화그룹 본사 앞 장통교(長通橋)는 거부(巨富)를 쌓은 아홉 부자의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곳이다. 상거래로 부를 쌓은 상인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이다. 인근 센터원 빌딩(미래에셋 입주) 터는 조선시대 화폐를 만들던 주전소 자리로 알려져 있다. 공중분해 위기에 처한 동양그룹이 입주한 시그니처 타워는 영희전(永禧殿)을 왕래하던 길목이었다. 영희전은 조선시대 역대 왕의 영정을 모신 곳이니 당연히 길지였다.
풍수 전문가인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장은 "동양그룹은 청계천으로 이주한 지 채 1년이 안 됐다"며 "이곳의 지세(地勢)를 받기 전에 이미 곪았던 문제가 터진 것"이라고 풀이했다. SK와 한화의 경우 경영과 관련된 본질적인 위기가 아니기 때문에 좋은 풍수에 힘입어 곧 제자리를 찾을 것이란 견해도 있다. 김두규 교수는 "총수가 잠시 구속된다고 사운(社運)이 기울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미신일지 모르지만, SK와 한화는 더 좋은 풍수를 조성하기 위해 비보(裨補·풍수적으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것)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SK 사옥은 건물 1층 바닥에 거북을 형상화한 돌을 놓고, 한쪽 벽에는 물이 흐르는 산수화를 설치했다고 한다. 남산을 등지고 청계천을 앞에 둔 한화 사옥은 배산임수의 좋은 터지만, 풍수에서 좋게 보지 않는 '남고북저(南高北低)'가 흠이라 앞마당(북쪽)에 작은 언덕을 만들어 보완했다고 한다.
◇괴담으로 혼쭐난 모 재벌 사옥
하지만 괴담이 실제 경영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서울역 '서향(西向)괴담'이 그런 사례다.
이야기에는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등장한다. 이 회장이 1970년대 신사옥 부지로 서울역 동쪽 지역을 염두에 뒀는데 풍수 때문에 뜻을 거뒀다는 것이다. 당시 이 회장은 "이곳은 지는 해를 바라보는 서향인 데다 터의 기운도 좋지 않다"는 지관의 의견을 듣고 태평로에 사옥을 세웠다는 내용이다.
풍수학자들에 따르면 서울역 동쪽의 지세는 인왕산 지맥이 남대문에서 살짝 꺼졌다가 남산으로 뻗어가는 모양이다. 김두규 교수는 "산을 등지고 낮은 곳을 바라보고 앉아야 편한데 일부 사옥은거꾸로 산 쪽을 바라보고 앉아 불편한 형국"이라고 말했다.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묘를 일곱 번이나 이장할 정도로 풍수를 신봉했던 이병철 회장이라면 굳이 사옥 터로 삼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향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풀이했다. 최창조 전 교수도 "요즘처럼 건축 기술이 발달한 세상에 서향 건물이 뭐가 문제가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런데 서향 괴담은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튀었다. 서울역 인근 모 재벌그룹이 신축한 사옥에 세들겠다던 사람들이 무더기로 계약을 해지한 것이다. 단지 서향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 그룹은 사옥 앞에 코끼리 상을 설치하는 비보책을 쓴 뒤 이를 입소문으로 알려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풍수에선 서쪽을 상징하는 동물로 백호를 내세우고, 백호를 이기는 동물로 코끼리를 내세운다. 코끼리 상을 만들어 혹시 불길하게 작용할 수 있는 서향의 기운을 억눌렀다는 것이다.
조선닷컴 이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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