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 역학

[김두규 교수의 國運風水(국운풍수)] 시진핑이 옮긴 아버지의 묘역, 진시황릉을 꼭 빼닮았더라

웃는얼굴로1 2013. 7. 13. 09:05

지도자 나오는 現龍在田 터
中시안 공항서 2시간 걸려… 生家와는 車로 20분 거리

대지에서 용맥을 찾고
용의 머리에 무덤을 마련… 조경으로 풍수의 정점을

중국 풍수의 완벽 재현
묘 뒤 나무로 '주산' 만들고… 左右숲이 '청룡백호' 모양
그 가운데 주작대로 지나면… 유해·석상 앞 평평한 명당이

현무를 상징하는 소나무와 神木인 향나무로 묘역 꾸며


	[Why][김두규 교수의 國運風水(국운풍수)]
지난 5월 25일 시진핑 주석의 선영과 고향을 찾아 중국 시안(西安)으로 출발한 것은 거의 같은 시기에 집권한 한·중·일 세 지도자(박근혜, 시진핑, 아베 신조)의 권력 향방을 풍수를 통해서 엿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지도자의 운에 따라 그 나라 운명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 더구나 시중쉰 묘 이장 소식을 들었기에 그 의도가 궁금하여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답사 예정지는 세 곳이었다. 시중쉰 묘와 생가 그리고 시 주석이 15세부터 22세 때까지 '생산대'에 입대하여 7년 동안 농촌 생활을 하였던 량자허(梁家河) 토굴이었다. 나는 시진핑 주석의 부친(시중쉰 전 부총리) 묘에서 '중국 풍수의 완벽한 재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은 풍수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전통문화가 파괴되는데 문화대혁명에서 그 정점에 달한다. 풍수 역시 금기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1988년 인민일보는 풍수지리를 '신흥환경지리학'으로 복권시킨다. 2012년 12월 스촨(四川)성에서 '한문화(漢文化) 풍수'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선포식이 있었다. 4박5일의 국제적 행사였다. 필자도 문화재청 파견으로 그 선포식에 참관하였다. 이미 풍수는 자랑스러운 그들 최고의 정신문화였다.

시간 절약을 위해 시안공항에서 바로 푸핑(富平)현 시중쉰 묘역으로 이동하였다. 요즈음 답사 목적지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내비게이션 덕분이다. 고속도로에서 푸핑 톨게이트를 나서자마자 쉬중쉰 묘가 있는 타오이촌(陶藝村) 안내 표지판이 눈에 보인다. 공항에서 2시간이 채 안 걸렸다.

지난번 글에서 시 주석 부친 묘를 현룡재전(見龍在田·나타난 용이 밭에 있음)의 형국이라고 소개만 하였고 구체적 내용은 이번 기회로 미뤘다. 땅을 살핌에 산악 지역과 평지가 다르다. 산악 지방에서는 내룡과 사신사가 분명하지만 평지에서는 구름 속의 기러기처럼, 재(灰) 속에 놓인 실처럼, 풀 속의 뱀처럼 식별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제대로 된 혈인 경우 멀리서 보면 왕성한 형세가 은근히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평지에 혈이 맺히면 물도 덩달아 모인다('장서'). 시중쉰 묘 바로 앞을 환포하는 웬첸하(溫泉河)와 스촨하(石川河)가 바로 그들이었다.
이렇게 평지(밭)에 나타난 용을 찾아 이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답사 출발 전에 '야후 중국'에 들어가 시중쉰 묘와 풍수 관련 검색을 하였지만 '풍수상 아주 좋다(風水�好)'는 문장밖에 왜 이장을 하였으며, 왜 좋은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결국 필자의 풍수적 안목으로 그 땅을 읽어낼 수밖에 없었다. 의문은 어렵지 않게 시중쉰 묘역에 이어 생가를 답사하면서 풀렸다.

생가는 묘에서 자동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단춘향(淡村鄕:시자좡·習家莊)에 있다. 묘역과 달리 생가 안내판이 전혀 없다. 근처를 배회하면서 물어물어 찾았다. 안내판이 없는 것은 시 주석이 못하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현재 생가에 거주하는 시중쉰의 사촌 제수, 즉 시주석의 당숙모(73)가 설명한다. 왜 이장을 하였으며, 이 마을 근처 선영이 아닌 지금의 곳에 자리 잡았는지 아느냐 물었으나 '잘 모른다'는 답변이다. 생가 대문 위 현판 '후덕재물(厚德載物)'은 무슨 뜻이며, 누가 붙인 것인가를 물었다. 질문을 이해 못 한 것인지 아니면 답변을 회피하는지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사람이 말하지 않아도 땅과 그 위에 서 있는 것들은 말해준다.

후덕재물은 주역 곤괘(坤卦)에 나오는 말이다. '군자가 대지의 후덕한 정신을 배워서 인류를 품어 안는다(전북대 김기현 교수 풀이)'는 뜻이다. 시 주석의 모교 칭화대(淸華大)의 교훈이자 이번 박근혜 대통령이 그곳 연설시 인용했던 문장이다. 생가를 곤괘의 후덕재물로 보았다면, 시 주석 부친 묘는 건괘(乾卦)의 현룡재전으로 본 것이다. 곤괘는 보필자의 미덕을 이야기함에 반해 건괘는 창조적 지도자의 미덕을 말한다. 하늘의 창조적 역량(건괘)은 땅의 후덕한 보필(곤괘)을 통해서야 비로소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건괘에서 말하는 용이 자신을 나타냄이란 무슨 뜻일까? 널리 덕을 베풀어 대중을 제도하겠다(博施濟衆)는 뜻과 자신의 풍문을 듣고 함께 일어나주기를(聞風興起) 바라는 염원이다. 이는 설핏 시중쉰의 부인 치신(濟心:시 주석 모친)이 이장하던 날 유족 대표로 행한 발언에서 엿볼 수 있다. "시중쉰 동지가 마침내 광활한 황토의 땅인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그의 유지를 떠받들어 각자의 업무에 최선을 다하여 혁명 후손들을 양성할 것입니다."

시중쉰 묘역이 '나타난 용'이라면 그 가운데 어느 부분에 써야 할까? 평지에서는 용맥을 찾고(심룡·尋龍) 혈을 정할 때(정혈·定穴) 용의 머리 부분을 찾아야 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용의 이마나 코에 써야 한다. 그러나 용 머리에 무덤을 썼다 할지라도 평지이기 때문에 그 모습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묘역 조경을 통해 이를 드러내야 한다. 고도의 풍수 행위이다.

실제로 보니 우선 시중쉰의 유해와 석상이 안치된 뒤쪽에 나무를 겹겹이 심어 주산을 만들었다. 멀리서 보면 균형이 잘 잡힌 실제 산과 같다. 일종의 비보(裨補) 숲이다. 주산 뒤로는 용이 머리를 들이민 입수(入首)의 흔적을 뚜렷하게 살렸다. 주산 좌우로 또 숲을 조성하여 청룡백호를 만들었다. 안치된 유해와 석상 앞에 평평한 공간, 즉 명당을 만들었다. 명당은 본디 제후가 천자를 알현하는 공간인데, 지금은 수많은 방문객이 이곳에서 참배를 한다. 그 앞으로 주작대로가 길게 펼쳐졌다. 비보 숲에 식재된 나무 종류들도 중요하다. 소나무, 향나무, 측백나무가 주종을 이루어 묘역을 감쌌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모란이 군락을 이뤘다. 소나무는 '명당의 기둥'이며 현무(玄武)를 상징한다. 향나무는 사당과 무덤에 심는 신목(神木)이다. 측백을 무덤가에 심는 것은 벌레가 침범하지 못하게 함이지만 불로장생의 신선나무(仙樹)를 상징한다. 모란은 뭇 꽃의 우두머리이다. 이렇게 용의 머리 부분을 완벽하게 드러냄으로써 '현룡재전(見龍在田)'임을 확신케 한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묘역 참배와 답사를 마치고 정문으로 나와 멀리서 바라보니 진시황릉과 그 분위기가 너무 흡사하다. 최초로 중국을 통일하였던 진시황 천하관의 재현일까, 풍수를 통해서? 중국의 어느 풍수학인이 이렇게 사라진 풍수를 완벽하게 복원하였는지…. 조선의 풍수학인으로서 그를 한번 만나보고 싶다. 바로 이 현룡(見龍:시중쉰)은 굴 속의 잠룡(潛龍:젊은 날의 시진핑)이 비룡(飛龍:지금의 시진핑 주석)이 될 것이라는 '세례 요한'과 같은 선지자였다.

 


	[Why][김두규 교수의 國運風水(국운풍수)]
1975년 당시 칭화대에 다니던 시진핑과 아버지 시중쉰이 허난성 뤄양(갫陽)에서 찍은 사진. / 조선일보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