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 역학

一漢, 二河, 三江, 四海… 조선 지관들은 미래 도읍지로 강가·바닷가 지목했다.

웃는얼굴로1 2011. 11. 26. 11:12

끝내 제국이 못된 프랑스
해양국가로 못갔기 때문
포화상태 서울의 운명은?

 

"조선의 수도는 처음에는 한(漢), 두 번째는 하(河), 세 번째는 강(江), 네 번째는 해(海) 자(字)가 들어가는 순서로 바뀔 것이다."

1617년(광해군 9년) 역모를 알리는 한 장의 상소가 임금에게 전해진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 역모를 꾀하고 있는데, 그가 "一漢, 二河, 三江, 四海"란 참언을 만들어 민심을 소란케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 상소로 인해 허균은 이듬해인 1618년 능지처참이란 끔찍한 형을 받아 죽는다. '도읍지를 옮긴다(천도·遷都)'는 것은 권력의 교체를 의미한다. 함부로 말을 꺼냈다간 역모 혐의를 뒤집어쓰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 말은 허균이 지어낸 말이 아니었다. 5년 전인 1612년(광해군 4년) 종6품 벼슬의 지관(地官) 이의신이 임금에게 천도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린다.

'임진왜란과 역변이 계속하여 일어나는 것, 한양 주변 산들이 벌거벗은 것 등이 모두 한양의 지기가 쇠한 데서 비롯한 것이니 교하(交河)로 천도를 하옵소서'라는 내용이었다. 교하는 한양과 개성의 중간 지점으로 동쪽으로 멀리 삼각산이 병풍을 치고, 북쪽으로 송악산이 웅장하게 섰으며, 남쪽으로 옥야천리(沃野千里)가 펼쳐 있고, 서쪽으로 한강이 넓게 흘러 배가 다니기에 좋은 땅이라는 것이다. 광해군은 상소를 예조에 내려 의논토록 한다. 이에 대해 당시 예조판서 이정구뿐만 아니라 홍문관과 사간원은 이의신을 처벌해 흉흉한 인심을 안정시킬 것을 임금에게 아뢴다. 그러나 임금은 처벌할 생각이 없었다. 문제가 된 상소는 이의신이 자발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임금의 사전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 서자 출신으로 임금이 된 광해군의 불안정한 권력 기반, 끊임없는 대신들 간의 당쟁 등을 해결할 대안으로 천도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하천도론을 제기한 이의신을 처벌하자는 조정 대신들과 이를 거부하는 광해군과의 싸움은 이후 몇 년 동안 지속된다. 참고로 광해군 6년(1614년) 한 해 동안만 이의신을 처벌하자는 상소가 100건이 넘었다.

'一漢, 二河, 三江, 四海'는 임진왜란 이후 불안해하던 백성들이 기대하던 새로운 세상이 반영된 참언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모두 '물 수 변(�G)'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수도가 강이나 바닷가에 들어선다는 것이다. 여기서 언급된 一漢은 당시 수도이던 한양을 말하는 것이고, 二河는 교하를 말함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三江과 四海는 어디일까? 여러 추측이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미래 도읍지가 될 곳으로 당시 조선 지관들은 바닷가를 지목했다는 점이다. 지정학자들은 한 나라, 특히 수도가 어느 곳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민족성, 정치제도, 대외정책 등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데 동의한다. 19세기 말 독일의 지리학자 라첼(F. Ratzel) 역시 "바다는 해양민족의 대담성과 거시적 안목을 심어준다"고 했다. 자본주의 발달 이후 유럽에선 경쟁적으로 그 패권국이 바뀌었다. 포르투갈·스페인·네덜란드·영국 등이 한때 패권을 차지했다. 그러나 패권을 꿈꾸었던 프랑스만은 끝내 제국을 이루지 못했다(나폴레옹도 실패했다). 프랑스가 해양국가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한 나라의 수도가 분지에 있는가, 해안에 있는가는 그 나라의 흥망성쇠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

지금 우리의 수도는 어떠한가? 포화상태가 된 서울이 과연 미래 세계 대국의 수도가 될 수 있을까? 남북통일 후 수도로서 그 기능을 감당할 수 있을까? 국운을 크게 진작시키기 위해서 언젠가 한 번의 천도는 필연적이다. 세계강국 대한민국의 새로운 수도는 어디여야 할까? 답은 이미 '一漢, 二河, 三江, 四海'에 나와 있다. 이 네 가지를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땅을 찾으면 된다. 과거의 땅 서울과 교하를 포함하면서 동시에 미래의 땅 三江과 四海를 선취(先取)하는 땅이 어디일까? 다음번 글에서 계속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