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가게들이 모여 있는 '소호' 스타일 거리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의 화장품숍 메카로, 그리고 다시 유명 브랜드의 마케팅 격전지로 가로수길이 변신하고 있다. 영국계 최고급 자동차 브랜드인 재규어랜드로버가 최근 가로수길에 팝업스토어 형식의 매장을 냈다. 이 매장에서 압구정동 방향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가림막을 치고 리모델링 중인 옥림빌딩이 나온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르노삼성자동차가 신차 홍보를 위한 공간을 조만간 오픈할 예정"이라고 귀띔해줬다.
국내 1호 애플스토어도 가로수길에 자리 잡을 예정이다. 그동안 국내 파트너를 통해 프랜차이즈식 매장을 운영해 온 애플이 처음으로 직영매장을 내겠다며 선택한 곳은 청담동이나 명동이 아닌 가로수길이다. 미국 브랜드 '마이클코어스'도 작년 말 명품 매장 집합소인 청담동 대신 가로수길에 브랜드 체험공간(플래그십스토어)을 만들었다. 여행사 하나투어도 플래그십스토어를 열고, 롯데백화점도 전문숍 1호점인 '엘큐브'도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이들은 '판매'로 수익을 내기 위해 이곳을 선택하지 않았다. 브랜드를 홍보하고, 제품을 알리는 일종의 '플랫폼'으로서 가로수길을 활용하는 사례다. 이 상권을 찾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소비력을 갖췄고, 트렌드 변화에 민감한 30~40대라는 점이 상권 자체를 '홍보마케팅 플랫폼'으로 만드는 변화를 가져온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방문한 가로수길은 한산했다. 그러나 대기업과 기관투자가들은 임대료 상승세가 꺾인 작년부터 오히려 가로수길 빌딩 쇼핑을 가속화한 모양새다. LG생활건강은 200억원대 규모 가로수길 대로변 빌딩을 작년에 사들였다. 자라 등 SPA(생산·유통 일괄) 브랜드를 가진 스페인 최대 기업 인디텍스의 아만시오 오르테가 회장도 경쟁사 H&M이 입점한 빌딩을 매입했다. 김성순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전무는 "명동은 대중적이고 청담은 명품 위주다. 세계적으로 가장 각광받고 있는 분야가 준명품(affordable luxury)인데 한국에서 이 색채가 강한 거리는 가로수길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가로수길 주고객층은 신사동 주변 직장인과 압구정 여성층으로 소비력이 비교적 탄탄한 편이다.
입지적으로도 매력 있다. 길의 시작은 신사역, 끝은 압구정역인 '더블역세권'이다. 신사역 인근은 외지인들이 몰리고, 압구정 쪽은 1만여 가구 압구정아파트 단지 입주민들이 가로수길 이용자다. 또 아직 명동이나 청담동 상권보다 건물 자체 가격이 싸서 소규모 투자가 가능하고, 미래 가치 상승 기대감이 크다.
가로수길 상권 스스로가 꾸준히 진화한 점도 한몫한다. 큰 투자자 몇 명, 대기업 몇 개가 이 골목상권을 다 틀어쥐는 게 아니라 불황기운이 감지되면 독특한 임차인을 영입해 분위기를 바꿔 나가는 식으로 변화해 그때그때 트렌드에 부응한다. 화장품 가게 일색이던 이 골목은 유커가 급감하는 와중에도 다른 상권에 비해 공실이 많다든지 하는 대대적인 '몰락'의 징조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건물주들 스스로가 임차인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해 리스크를 회피한다. 최근 들어 자동차나 전자제품 스토어 등 다른 업황을 영입해 변신하는 것 자체가 타 상권과 차별된다는 평가다. 이상혁 상가정보연구소 연구원은 "압구정로데오 거리와 달리 가로수길은 공실이 거의 없다"며 "특정 유명 상가에 의존하는 구조가 아니라, 거리 자체가 트렌드에 맞게 변하고, 입지까지 좋아 부침이 덜한 편"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사드 갈등에 주축을 이루던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한 상황에서 사모펀드들이 몇 년 새 빌딩 매입에 관심을 보이자 기존 임차인들이 추가로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 우려도 적지 않다. 가로수길 쪽에서 영업을 하는 한 상인은 "사모펀드는 빌딩을 사서 높은 수익을 올리려다 보니 이를 임차인들에게 전가시키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매일경제 박인혜 기자 / 용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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