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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이 시민이 됐죠"..봉제골목 '창신숭인'의 도시재생 4년

웃는얼굴로1 2017. 8. 13. 17:42

[생생부동산]도시재생 1호 '창신숭인' 마중물사업 4년 마무리..주인의식 성숙vs여전히 불편 엇갈린 반응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골목풍경. 인근 봉제 골목에서 원단 등을 실어 나르는 오토바이와 트럭들이 쉴 새 없이 지나다니지만 도로가 낡고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혼잡함이 가중된다. /사진=김사무엘 기자


지난 4일 오전 9시. 이른 시간부터 서울 종로구 창신동 좁은 골목은 각종 의류원단과 재봉된 옷 등을 실어나르는 오토바이들로 번잡했다. 폭 4m 남짓의 도로는 오토바이 2대가 동시에 지나가기에도 비좁아 보였다. 1.5톤 트럭 1대가 들어선 순간 골목은 트럭과 오토바이, 행인들로 뒤엉켜 마비가 됐다. 국내 의류산업의 메카라 불리는 동대문 일대 창신·숭인동의 흔한 풍경이다. 거미줄처럼 뒤얽힌 낡은 골목길은 서울의 1960~70년대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것처럼 노후도가 심각했다. 2000년대 재개발 붐을 타고 이곳에도 뉴타운사업이 추진됐지만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동네가 늙어가는 속도는 점차 빨라졌다.
 
주민들은 재개발이 아닌 ‘도시재생’을 선택했다. 국내 1호 도시재생선도지역으로 추진된 ‘창신숭인 도시재생사업’이 올해로 4년을 맞았다. 올해 말이면 국비 200억원이 투입된 마중물사업(도시재생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선도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은 대부분 완료된다.
 
문재인정부가 도시재생뉴딜을 역점사업으로 추진하는 상황에서 창신숭인의 변화된 모습에 관심이 쏠린다. ‘둥지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해 주민 스스로 마을을 변화시키는 힘을 키웠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 이전과 나아진 게 없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주민도 상당수다. 일부 구역에선 전면 철거방식으로 재개발을 다시 추진하는 곳도 나타났다. 창신숭인 도시재생 4년의 ‘명’과 ‘암’을 들여다봤다.

창신숭인 도시재생 지도. /사진제공=창신숭인 도시재생센터


◇“주민이 시민으로…” 주민 스스로 참여하는 마을 살리기 프로젝트

“4년 동안 주민이 시민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됐다고 봅니다.”
 
지난 4일 창신동 창신숭인도시재생센터에서 만난 손경주 도시재생 코디네이터(자문계획가)는 창신숭인 도시재생사업의 초기 성과를 이렇게 평가했다. 도시재생 코디란 도시재생 현장에서 주민과 호흡하고 지자체와 소통하면서 각종 사업이 추진력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현장 전문가다.
 
마중물사업을 추진하는 4년 동안 주민들이 마을 일에 스스로 참여하고 결정하면서 주인의식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손 코디는 “도시재생 초기 4년의 목표는 동네를 다 갈아엎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진짜 주민이 원하는 사업을 주민 스스로 결정해 추진하는 것이었다”며 “동마다 주민협의체대표회의를 구성하고 지자체와 협의하면서 마을을 변화시킨 것이 이전 정비사업과 가장 큰 차이”라고 강조했다.
 
창신숭인이 처음부터 도시재생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아니었다. 서울 곳곳에서 뉴타운사업이 한창이던 2007년 이곳도 뉴타운지역으로 지정됐다. 낡은 동네를 모두 철거하고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조성하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수십 년간 터를 잡고 살아온 주민들의 반대가 이어졌다. 다른 구도심과 마찬가지로 창신숭인도 세입자가 전체 주민의 80%가량을 차지했다. 재개발이 진행되면 제대로 된 보상도 못 받고 타지로 밀려나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창신숭인 봉제거리를 일군 봉제인들도 마찬가지였다. 1950~60년대 전쟁 피란민 등이 이주해 의류를 생산하기 시작한 봉제거리는 1980년대 들어 청계천 평화시장의 봉제공장들이 창신동 주택가로 들어오면서 급격히 규모가 커졌다. 대부분 다세대·다가구주택을 개조한 가내수공업 형태의 영세 하청공장이었다. 이들 역시 재개발이 진행되면 내몰릴 처지였다.
 
뉴타운추진위원회와 이를 반대하는 주민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의 갈등은 갈수록 깊어졌다. 결국 창신숭인뉴타운은 주민들이 주도한 실태조사 결과 토지 등 소유자 30%가 반대하면서 2013년 10월 정비구역에서 해제됐다. 뉴타운 전체가 해제된 첫 사례였다.
 
이후 주민들은 국토교통부가 2014년 처음 공모한 도시재생 선도지역사업에 지원했다. 그해 5월 창신숭인은 첫 도시재생 선도지역 13곳 가운데 한 곳으로 선정됐다. 재생지역은 뉴타운 해제지역인 창신1·2·3동, 숭인1동 일대 83만㎡였다. 2024년 완료를 목표로 첫 4년 동안엔 마중물사업을 추진했다.
 
4년 동안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울퉁불퉁하던 콘크리트도로 일부는 아스팔트로 바뀌었고 거리 곳곳엔 CCTV(폐쇄회로TV)가 설치됐다. 주민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주민 공동이용시설 4곳도 올해말에 대부분 완공될 예정이다.
 
주민 공동이용시설 가운데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씨를 기념하는 백남준기념관이 지난 3월에 문을 열었다. 백남준씨가 유년시절 13년을 산 집터에 건물을 지어 기념관과 카페로 활용한다. 카페는 창신숭인 주민 43명이 소액을 출자해 설립한 ‘지역재생기업’(CRC)이 맡았다. 마중물사업이 끝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주민 주도의 재생을 추진하기 위해 법인을 만든 것이다. CRC는 백남준카페나 다른 주민 공동이용시설을 운영하면서 나는 수익을 지역재생을 위해 재투자한다. 주민 공동이용시설을 중심으로 지역을 활성화한다는 구상이다.
 
◇“200억원 쏟아붓고 뭐했냐” 볼멘소리도…주민 공감대 형성이 중요

4년의 도시재생 성과에 회의적인 주민도 적지 않았다. 대부분은 “200억원이나 쏟아부었는데 뭐가 달라졌냐”는 반응을 보인다. 차 1대 다니기도 비좁은 골목과 빈약한 주차장, 공원 등 기반시설은 사람을 정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떠나게 만든다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창신동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여기는 월세가 30만~40만원 수준으로 서울 평균보다 저렴한데도 세입자가 안 찾는다”며 “동네가 낡고 살기 불편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도시재생으로 수백억 원이 투입되면 부동산이 ‘들썩’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마을 곳곳에 들어선 신축빌라는 이런 기대감을 반영했다. 하지만 높은 언덕에 기반시설도 부족한 이곳까지 빌라를 분양받으러 오는 사람은 적었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낡은 골목 풍경. 4년째 도시재생 사업이 추진 중이지만 여전히 정비가 이뤄지지 않은 곳도 상당하다. /사진=김사무엘 기자


전체적인 노후도가 심각해 재개발이 아니고서는 집 몇 채 고치고 도로 몇 곳 손본다고 나아지지 않는다는 시각도 많다. 이에 창신동 23번지 일대 등 3곳에선 현재 다시 재개발사업을 추진한다.
 
창신숭인 CRC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극적인 변화를 ‘지양’하고 천천히 바꿔나가는 도시재생의 기본 개념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아직 부족한 것이다.
 
손 코디는 “집값 급등을 우려해 초기에는 예민할 정도로 마을 외향을 바꾸는 공사는 거의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 정부가 50조원, 500개 지역 등 숫자를 내세워 뭔가 성과를 보여주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주민 역량을 키우는 일”이라며 “이번 정부 5년 동안 도시재생 개념을 성숙시키기만 해도 성공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김사무엘 기자 samuel@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