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까지 ‘오렌지족·X세대’로 불리던 신세대들의 집결지로 주목받으며 서울의 대표 상권으로 군림했던 강남 압구정로데오거리. 현재는 과거 영광을 인근 신사동 가로수·세로수길 등에 넘긴 지 오래다. 이제는 새롭게 떠오른 서울 곳곳의 각종 '문화의 거리'에도 밀렸다. 인근 청담동 ‘명품·한류스타거리’와의 연계도 형편없어 시너지 효과를 전혀 발휘하지 못한다. 몰락의 늪에서 부활을 꿈꾸는 압구정로데오거리의 문제점 세가지를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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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로데오거리 인근 한류스타거리. /사진=김창성 기자 |
◆‘특색’ 없어 외면 당하는 상권
화장품, 옷·신발, 네일숍, 고깃집, 미용실, 커피숍…. 어딜 가나 쉽게 볼 수 있는, 압구정로데오거리를 차지하는 주요 상권이다. 익숙한 구성에 특색이 없다보니 일부러 이곳을 찾는 이도 드물다.
최근 평일 낮 이곳을 찾았을 때도 거리에 사람들이 없어 한산한 기운만 감돌았다. 같은 시간 수만명이 넘는 유동인구로 발 디딜 틈조차 없는 강남역 주변·명동 거리 등과 대비되는 풍경이다. 이곳에는 강남역·명동거리 등에 위치한 가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끄러운 호객행위조차 없다. 옷가게를 드나드는 손님들도 소비를 하기보단 구경만 하고 그냥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핀란드 여성작가 ‘토베 얀손’이 1945년부터 직접 그리고 글을 쓰며 탄생시킨 캐릭터인 ‘무민’을 모티브로 한 ‘무민 카페’도 최근 압구정로데오거리에 문을 열었지만 세계 최대라는 규모에 걸맞지 않게 매장 내부는 정리가 덜 된 모습이다.
사람들이 ‘무민’이라는 캐릭터를 잘 알지 못하는 것도 압구정로데오에 왜 이 카페가 입점했는지 갸우뚱하게 하는 요소다. 무민 카페를 찾은 여대생 박지영씨(23)는 “무민이 뭔지 잘 모르겠다”며 “그냥 지나다가 1층에 큰 인형이 있어서 사진을 찍으러 들어왔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A씨도 “처음 무민 카페가 문을 열었을 때 요란하게 테이프 커팅식까지 하길래 뭔지 궁금해서 한번 가봤는데 캐릭터 용품 같은 거 파는 곳이라 별 감흥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분당선 압구정로데오역이 위치한 도로변은 그나마 사람들의 발길이 있었지만 압구정로데오거리를 찾아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잠시 쉬러 나온 건너편 갤러리아백화점 직원을 비롯한 인근 상권 직원들과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는 시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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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한 압구정로데오거리. /사진=김창성 기자 |
◆명품·한류거리와 ‘시너지’ 없다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이 위치한 압구정로데오역 사거리는 청담동 ‘명품거리·한류스타거리’가 시작되는 곳이다. 이곳에는 인도변을 따라 다양한 해외 명품브랜드숍이 줄지어 있고 ‘한류스타거리’를 안내하는 안내관과 표지판도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과 청담동 명품거리는 압구정로데오거리를 찾는 일반 소비층과 이질감이 큰 콘텐츠다.
한류스타거리를 안내하는 안내판에는 인근 연예기획사 5곳의 위치를 표시한 게 전부다. 연예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 소속 한류아이돌 가수와 연관된 상품을 판매하는 ‘SUM’이라는 매장 역시 압구정로데오거리와의 시너지 요소가 전혀 없다.
압구정로데오거리에서 20년 넘게 공인중개업을 하는 B씨는 “압구정로데오거리의 주요 타깃은 흔히 말하는 일반 소비자인데 명품거리와는 이질감이 크고 한류스타거리와의 접점도 없다”며 “그곳을 찾는 외국관광객과 소비자들이 자연스럽게 압구정로데오거리로도 흡수돼야 하는데 마주보는 두 거리가 추구하는 방향이 너무 상반돼 시너지 요소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압구정로데오거리를 찾는 이들의 소비를 방해하는 관할 강남구청의 꽉 막힌 행정도 꼬집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면 알겠지만 주차공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구청 주차단속 차량은 수시로 단속을 한다”며 “2만원짜리 옷 하나 사려고 5~10분 정차했다가 4만원짜리 주차딱지를 끊는데 누가 이곳에 다시 오겠냐”고 토로했다.
이어 “최근 가로수·세로수길 상권의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기 버거워진 상인들이 상대적으로 낮아진 이곳 상권으로 다시 돌아오는 움직임이 있지만 이런 상황이면 다시 떠나게 될 것”이라며 “몇년 전 정비한 도로 역시 거리 안을 골고루 둘러볼 수 있는 양방향이 아닌 일반통행이라는 점도 소비자들의 발길을 끊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지는 상권, 역세권도 소용없다
“분당선 압구정로데오역이 들어설 때 다들 기대감이 컸는데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교통편이 좋다고 무조건 상권이 뜨는 건 아닌가 봐요. 역명 지을 때도 ‘신청담역’과 경쟁하느라 진을 뺏는데 전혀 효과를 못 봤습니다.”
압구정로데오거리에서 10년 가까이 식당을 운영한 C씨는 한산한 압구정로데오거리를 가리키며 이 같이 말했다. C씨는 교통편이 좋아지면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이곳을 찾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숨지었다.
C씨의 말처럼 압구정로데오거리는 역세권 치고는 한산한 모습이다. 인근 빌딩에는 오피스 수요가 없고 대부분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입주했다.
다른 역세권과 달리 점심·저녁 시간의 대규모 고정 소비층이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관광객 등 외부 수요층이 이곳에서 식사와 술을 해결할 만큼 특색 있는 상권도 아니다.
버스로 10여분만 가면 신사동 가로수·세로수길에 유명 셰프가 운영하는 식당과 특색 있는 술집들이 많지만 압구정로데오거리에는 이에 대적할 특색 있는 상권이 없다. 분당선을 이용하면 압구정로데오거리보다 더 활성화된 선릉역·삼성역·강남역 상권 등으로 이동이 가능한 것도 사람들이 굳이 이곳에 머물지 않는 이유다.
외부 수요는 그렇다 쳐도 1400가구가 넘는 대형 주거단지인 길 건너 한양아파트 배후수요를 끌어들일 만한 요인도 없다.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오는 주거단지의 특성에 맞게 가족단위 고정 수요층을 노린 특색 있는 상권이 아쉽다.
김창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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