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랑스 파리시는 1970년대까지 도심에 대형 상업건물이 들어설 때 용적률 인센티브를 줬다. 그 결과 골목마다 프랜차이즈 음식점이나 고급 의류 판매점 등이 대거 들어섰고, 단일 업종의 대형 상점이 한 지역에 집중되는 현상도 벌어졌다.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소규모 식료품점이나 서점, 전통 카페 등은 조금씩 밀려났다.
#2. 캐나다 몬트리올시 마일엔드는 섬유 산업이 쇠퇴하면서 지역이 점차 침체했지만,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활기를 찾았다. 작업 공간으로 쓰기 좋은 빈 공장 건물이 많고, 임대료도 낮아 예술가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상업시설이 늘어나고 몬트리올시도 2008년 개발을 위해 이 일대에 900만달러를 투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상황은 다시 나빠졌다. 집값이 하루가 다르게 뛰면서 예술가들은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
![지역민에게 필요한 식료품을 파는 프랑스 파리의 한 가게. /블룸버그 제공](http://t1.daumcdn.net/news/201605/11/chosunbiz/20160511063302244ccdj.jpg)
![서울 서촌 한옥마을. 이 지역에선 대로변인 자하문로와 사직로변을 제외하고 구역 내 전 지역에 프랜차이즈 가맹점 입지를 제한하는 내용의 지구단위계획 재정비안이 마련되고 있다. /조선일보 DB](http://t1.daumcdn.net/news/201605/11/chosunbiz/20160511063302427bvip.jpg)
특정 지역의 상권이 살아나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그 결과 기존에 거주하거나 영업했던 주민들이 내쫓기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과 영국, 유럽 등 한국보다 이른 시기에 도시화가 진행됐던 곳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은 흔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중에서는 정부와 지자체가 주민들과 손잡고 대처해 젠트리피케이션이 확산되는 것을 막은 사례도 있다. 도시화가 상대적으로 늦은 한국도 지자체를 중심으로 사회 문제화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을 대책 마련에 나섰다.
◆ 해외선 정부가 직접 개입도
프랑스 파리의 경우엔 시가 문제 해결을 위해 먼저 팔을 걷어붙였다. 파리시는 2006년 도시기본계획인 파리도시계획을 수립하면서 전체 파리시 도로 길이의 16%에 해당하는 259㎞를 ‘보호 상업가’로 지정했다. 총 3만여개의 상업시설이 여기에 포함됐다. 보호 상업가로 지정된 거리에 있는 건물 1층에 입점한 소매점포와 수공업 점포는 다른 용도로 바꿀 수 없도록 했다. ‘강화된 보호조치’ 대상 거리는 건물 1층에 있는 모든 창고와 빈 공간을 소매점포와 수공업 점포로 바꿔야 했다.
파리시는 ‘비탈 카르티에’ 사업을 진행했다. 비탈 카르티에는 파리시가 정비사업을 위임한 파리 동부지역 혼합경제정비회사(SEMAST)가 비어 있거나 주인들이 팔기 위해 내놓은 상가를 사서 지역 상인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임대한 것이다. 이 사업을 위해 파리시는 2004년 기준 8700만유로를 지원했다. 이 사업이 시행된 보부르 템플 지역의 경우 상권 다양화를 위협했던 도매의류 상점은 741곳에서 593곳으로 줄었다.
몬트리올의 경우엔 예술가들이 먼저 나섰다. 예술가들이 직접 ‘몬트리올 크리에이티브 아틀리에(ACM)’라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작업공간으로 쓸 건물을 매입했다. 몬트리올시도 건물주와의 협약을 통해 적정 수준의 임대료가 유지되도록 하고, 단기 계약을 방지하는 조례를 통해 예술가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그 결과 ACM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몬트리올 전체에서 230개의 작업실을 제공하고 650명의 예술가를 지원하고 있다.
영국 런던시 북부 해크니구의 쇼디치 지역도 젠트리피케이션을 극복한 사례다. 이 지역은 오랜 기간 침체됐던 지역이었지만, 1980년대 말 젊은 예술가들과 디자이너가 이곳에 작업 공간을 구하기 시작하면서 달라졌다. 그러나 임대료가 함께 오르며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었던 예술가들이 내몰릴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영국 중앙정부가 나섰다. 정부는 2012년부터 이 지역에 변화를 주기 위해 랜드마크 건물을 짓고, 갤러리와 박물관, 예술가가 운영하는 공간을 한 달에 한 번씩 연장 운영하도록 했다. IT회사들도 이 지역에 몰려들었는데, 정부와 해크니 자치구, 해크니 의회는 입지 선정과 자금 조달 등 다방면으로 지원해 새 사업체들이 쇼디치에서 터를 잡도록 도왔다. 그 결과 예술가와 IT 기업들은 지금까지 쇼디치에서 공존하고 있다.
맹다미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젠트리피케이션에 성공적으로 대응한 해외 사례의 공통점은 공공과 민간이 함께 도시의 미래상에 대해 공감대를 이루고, 공공이 지역 특성에 맞게 행정∙재정적으로 지원했다는데 있다”며 “주민들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문제점을 공론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지자체 대책 마련중…전문가들 “실효성 높여야”
국내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젠트리피케이션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시는 지구단위계획이나 정비계획을 만들 때 젠트리피케이션 예방대책을 함께 수립하도록 했다. 또 상가 리모델링·보수 비용을 지원하고 건물주는 임대료를 올리지 않는 장기안심상가 사업을 진행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핵심시설(앵커시설)을 만들어 영세 소상공인과 문화·예술인에게 임대하기로 했다.
대책은 조금씩 진전을 보이고 있다. 시는 올 1월 ‘서울시 상가임차인 보호 위한 조례’를 공포했고, 이달 중 장기안심상가 신청자를 모집한다. 프랜차이즈 가맹점 입지를 제한하는 내용의 경복궁 서측(서촌) 지구단위계획 재정비안도 마련 중이다. 창작공간인 신촌문화발전소와 대학로 인근 연극종합시설도 각각 올해와 내년 첫삽을 뜰 예정이다.
성동구도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 잰걸음을 하고 있다. 성동구는 지난해 8월 전국 지자체 최초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신설했는데, 조례는 ‘지속가능발전구역’을 지정해 주민 협의체가 외부 입점업체를 선별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구는 이 조례에 근거해 서울숲길, 상원길, 방송대길을 지속가능발전구역으로 지정하고 지난 2월 주민협의체를 구성했다.
구는 또 지식산업센터 허가 과정에서 1, 2층 점포를 공공기여 몫으로 받아 총 면적 588㎡의 ‘안심상가’ 공간을 확보해 놓았다. 안심 상가는 임대료 상승으로 밀려날 위기에 처한 상인들에게 제공될 예정이다. 건물주와 임차인이 자율적으로 임대료 인상을 자제하는 상생협약도 권유 대상 건물주 255명 중 140명이 체결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도심 곳곳에서 벌어지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감안할 때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이런 대책과 더불어 상가임대차보호법 등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 연구위원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막도록 지구지정을 강제하거나 기존 임차인이 계속 상주하도록 하는 법적인 제도가 미비해 당장 큰 효과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면서 “이해관계자 간 합의를 통해 정책이 효과를 내도록 토대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핵심은 임대료 상승인데, 현재로서는 지자체 힘만으로는 임대료 상승을 막기 어렵다”라면서 “법 개정을 통해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임대료 인상률을 지자체가 조례를 통해 임의로 제한하고, 계약갱신요구권을 현재 5년에서 10년으로 늘릴 수 있게 법무부에 법 개정을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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