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동네목수가 '부동산 종합 컨설턴트'된 사연은?

웃는얼굴로1 2014. 7. 1. 03:54

[피플]박학룡 동네목수 대표 "구역지정 해제 장수마을 공동체 회복이 목표"

 

"여기 집 좀 알아보러 왔는데요. '동네목수' 박학룡 대표님 어디계세요?" 지난 28일 서울 성북구 장수마을 내 '작은 카페'에 들어선 부부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집을 산다면서 공인중개소가 아닌 동네목수를 찾아서다.

인터뷰를 하던 박학룡 동네목수 대표는 "이제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따야하나 봐요"라며 웃었다. 2011년 설립된 '동네목수'는 마을기업이다. 지난 2004년 전면 철거식 개발이 예정됐던 장수마을은 2013년 구역 지정에서 해제될 때까지 버린 동네나 다름없었다. 마을 주민들은 언제 떠나게 될지도 모를 이 마을에 애정을 두지 않았고 이웃간 정(情) 대신 쓰레기가 넘쳐났다.

박학룡 동네목수 대표

이를 안타깝게 여긴 박 대표는 마을 주민들의 집을 수리하고 공동체를 회복시켜 구역지정 이전과 같은 마을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이곳에 '동네목수'를 설립했다. 집 수리를 전문적으로 하지만 사실 박 대표는 장수마을의 홍반장으로 통한다.

박 대표는 "주민들은 집 수도꼭지만 고장나도 저부터 찾아와요"라고 했다. 계획 단계였던 2007년부터 따지면 장수마을에 뛰어든 지 올해가 벌써 7년째. 그보다 마을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는 이도 없다. 집주인들이 집을 내놓거나 전세를 놓으면서 박 대표에게 소개를 부탁하는 건 당연한 일이 됐다.

사진=진경진 기자

박 대표는 "이곳에 거주하시는 분들 대부분이 노인분들이라 자연스럽게 마을기업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것 말고도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도와드리고 주민들간 얽힌 이해관계를 해결할 때도 있다. 가끔은 은행 융자상담도 도와드리는데 이 정도면 내가 '토탈 컨설턴트' 아니냐"며 멋쩍게 웃었다.

성북구에 살고 있던 박 대표는 '주거권운동네트워크'에서 활동하면서 인근 동네였던 장수마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특히 뉴타운·재개발 사업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 보다 '대안'을 제시해 성공 모델로 만들고 싶었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전면 철거 방식은 지역주민들이 재정착해 예전의 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운 구조여서 다시 커뮤니티를 회복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며 "특히 형편이 어려울 수록 이웃간 관계에 의지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 관계가 끝나면 이 사람들은 생존기반 자체가 무너지는 것으로 이런 가치가 지켜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장수마을 주거 재생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한창 재개발사업이 붐을 타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높은 상황에서 박 대표의 활동은 찬물을 끼얹는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여기는 서울성곽도 있고 재개발이 되기가 어려운 지역이었는데도 당시엔 사람들이 집도 안 보고 투자를 했다"며 "투자자들에게 재개발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면 서로 욕설이 오가는 게 일상이었다"고 말했다.

재개발이 무산된 지금은 오히려 더 긴밀한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그는 "투자자들은 우리 때문에 재개발을 못하게 됐다고 욕을 하면서도 투자한 집을 수리하는 건 다시 우리한테 상담한다"고 했다. 추가 손실을 줄이려면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 대표의 목표는 장수마을을 주거재생사업의 성공 모델로 안착시킨 후 사정이 비슷한 인근 지역에도 적용시키는 것이다. 그는 "2~3년 후엔 장수마을의 집 수리도 거의 마무리 될 것 같다"며 "그때부턴 주민들이 자생할 수 있는 일거리를 만드는 사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수마을이 잘 정착되면 인근에 성곽마을 재생 사업에도 이 모델을 적용해 주민 공동체가 살아있는 마을이 확대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수마을 전경/사진=진경진 기자
 
머니투데이 진경진기자 jk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