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주택·인테리어

경남 하동으로 이주한 조동진·고미선 씨 부부

웃는얼굴로1 2014. 3. 4. 10:04

“마음 편하고 건강하니 삶이 즐겁죠”

 
동갑내기 부부 조동진·고미선 씨(55)는 귀농·귀촌 6년 차다. 여느사람처럼 돈 벌고 결혼하고 살았던 30여 년의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아름다운 산과 강이 있는 경남 하동군 평사리로 이주했다.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조씨는 건설사 사장 자리를 미련 없이 정리하고, 시골 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이들 부부는 평소 소망하던 아담한 한옥을 짓고, 3100㎥(900여 평)의 과수원을 경영하며 노후 생활을 즐기고 있다. 글 오현식 기자 사진 고승범(사진가)
 
 

“왠지 어색했던 남의 옷을 벗어놓고, 이제야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아 편안합니다. 도시에서는 늘 이방인 같은 불안감이 마음 한편에 있었는데, 이제 비로소 안식처로 돌아온 것 같거든요.” 
조동진 씨 부부가 처음부터 시골행에 뜻을 같이했던 것은 아니었다. 조씨는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늘 귀농할 꿈을 품고 살았지만, 부인 고씨는 낯선 시골 생활이 썩 내키지 않았다. 이런 부인을 설득하느라 조씨는 기회 있을 때마다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

자녀 교육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앞을 가로막았지만, 큰애가 대학교에 들어가고 둘째가 기숙사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기회가 찾아왔다.

“둘째 아이 교육이 마음에 걸렸지만, 더 늦기 전에 귀농을 결심했습니다. 마침 아내가 건강이 나빠지면서 시골에 가서 살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막상 시골에서 살아보니 아내의 건강을 되찾은 건 물론이고,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이제 도시 생활로 돌아가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조씨 부부는 어느덧 시골에서 사는 재미에 푹 빠졌다. 요즘에는 지난해 수확한‘ 대봉시’ 곶감 출하를 앞두고 마무리 손질에 한창이다. 이들 부부는 3100㎡ 과수원에서 대봉시와 매실을 생산하며 농촌에서 사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본래 농사는 대봉시뿐이었지만, 일손을 분산하기 위해 수확기가 빠른 매실나무를 심어 남의 손은 물론 농기계 힘도 빌리지 않고 과수원을 꾸려가고 있는 것.

“과수원이 1000평 이상 되면 대형 농기계가 필요하고 남의 손도 빌려야 합니다. 그런데 대형 농기계를 사용하면 땅이 다져져 친환경 농업을 하는 데 방해가 되죠. 900평 남짓한 과수원은 저희 부부가 큰 욕심내지 않고 경영하기에 아주 적당한 면적입니다.”
 
 

친환경 농법으로 고품질 곶감과 매실 생산
 
이들 부부는 농약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곶감과 매실을 생산한다. 대신 음식물 쓰레기 등으로 천연 퇴비를 만들어 과수원의 지력을 높인다. 여기에 매일같이 풀을 베고, 제때 가지치기를 하며 온갖 정성을 들여 품질 좋은 과일을 생산하고 있다.

“농촌에서는 일거리가 없으면 무료해서 못 삽니다. 시골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시로 되돌아가는 사람을 볼 때마다 안타깝죠. 그냥 전원생활만 하는 것보다 과수원을 하면 일단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데다, 운동을 따로 하지 않아도 절로 건강을 챙길 수 있어 좋습니다.”

조씨는 “ 비록 조그맣지만 과수원은 시골에서 사는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일터이자, 적잖은 수입을 안겨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다준다”고 자랑했다.
 
이곳에서 그는 농자재 구입비를 빼고 연간 1500만 원 정도의 순수익을 올린다. 웬만한 음식 재료는 텃밭에서 길
러 먹기에 부식비가 거의 들지 않는 것도 시골 생활의 장점이다. 그래서인지 100만 원 정도 들어가는 한 달 생활비는 과수원 수입으로 얼마든지 충당할 수 있다.

“노후 직업으로 농사만 한 것이 없다”는 조씨는“ 부부끼리 할 수 있는 규모의 80% 정도 되는 땅에서 농사를 지으면 적당히 땀도 흘리고 생활의 여유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씨 부부는 얼마 전 사진을 함께 배우면서 공동의 취미 생활을 시작했다. 사진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사진 기술을 배우는 건 물론 생각이 비슷한 사람과 만나면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된 것. 특히 평사리는 인근에 목공·공예 등을 배울 수 있는‘ 지리산학교’가 자리하고 있어 이들 부부에게 농촌 생활의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동호회원들과 함께 출사 가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흉금을 터놓고 지낼 만큼 친한 이웃사촌이 많이 생겼어요. 이들과 만나 술이나 차를 마시는 것도 시골 생활이 주는 즐거움입니다. 도시에서는 이익이나 목적을 위해 모임을 갖는 게 보통이지만, 이곳에서는 서로 계산하지 않고 모이다 보니 언제 만나도 편하고 즐겁습니다.” 
조씨는 최근‘ 지리산학교’에서 귀농 학교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귀촌ㆍ귀농을 준비하는 것에서부터 집을 짓고 정착하기까지의 경험을 정리해‘ 귀농 귀촌, 알아야 할 88가지’라는 책을 내면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 것이다.

“한옥을 짓고 살다 보니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오는 사람마다 질문하는 게 거의 비슷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움 될 만한 정보를 제공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러던 차에 지리산학교에서 만난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 책까지 내게 됐죠.”
 
 

기氣세다고 포기한 땅 사들여 한옥을 짓다

     

조동진 씨는 도시에서 살면서도 짬짬이 좋은 집터를 물색하면서 귀농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 2004년 소설‘ 토지’ 세트장이 있는 평사리에 과수원이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노부부가 전원주택을 짓기 위해 땅을 샀다가 풍수지리상 기가 세다는 말을 듣고 매물로 내놓은 것이었다.

 
그가 보기에도 집채만 한 바위가 듬성듬성 는 데다, 경사가 급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 땅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좋은 집터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악양 벌판과 너머 섬진강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라 왠지 마음이 끌려 설일 것도 없이 계약했습니다.”

조씨는 2008년 귀농해 1년 동안 전세를 살면서 한옥 지을 준비를 다. 하지만 집 짓는 일은 평탄치 않았다. 집을 짓기 전에 땅을 본 목수가‘ 물이 나는 곳엔 집을 지어선 안 된다’며 말리고 나선 것.
 
이때부터 조씨는 풍수와 관련한 책을 뒤적이며 궁리에 나섰다. 우선 물이 빠지도록 집 주위 땅속 곳곳에 흉관을 묻었다. 축대 아래에는 파이프를 묻어 집터 밖으로 물이 잘 빠져나가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터를 다지고 집을 짓기 시작한 지 1여 년 만에 한옥을 완성했다.

평사리 산 중턱에 자리한 그의 집은 풍광이 좋기로 소문나 있다. 
 “집을 지으려면 풍수지리를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조씨는 "수가 좋은 집터가 아니라고 했을 땐 가슴이 철렁했지만, 거실에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색다른 풍광을 자아내는 악양 들판을 바라보면 그간의 고생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뿌듯하다”며 웃었다.
 
 
 
 
 ※이글은 월간 전원생활에 게재된 기사를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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