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 역학

[김두규 교수의 國運風水(국운풍수)] 北의 '풍수 통치' 3가지… 백두혈통론·영변 핵시설 입지·金씨 父子 무덤자리

웃는얼굴로1 2014. 2. 25. 10:20


	일러스트

"조선의 풍수는 조선 사회의 특질을 더하는 것이며, 그 특질이 멀리 삼국시대로부터 신라, 고려, 조선이라고 하는 유구한 세월을 거쳐 살아서 오늘에 이르렀으며, 그 심원한 깊이와 강한 보급력은 장래에도 변함없이 생활상 영향이 클 것이다."

인용문은 80여 년 전인 1931년 일본인 학자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이 쓴 [조선의 풍수] 서문 결론이다. 그의 예언대로 풍수는 해방 이후 남북한 그 어느 곳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남한에서는 묘지 풍수가 지속적으로 수용되다가 점차 소멸되어가는 양상이지만, 그 대신 건축과 인테리어에 풍수가 습합(習合)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북한에서는 풍수를 '봉건 도배의 무덤자리 잡기 욕심'으로 부정하였다. 그렇다고 북한에서 풍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난번 글에서 "풍수의 주술성을 정확하게 꿰뚫고 통치 이데올로기로 활용한 나라가 북한이었다"는 문장으로 마무리했다.

최근 북한은 풍수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백두산 주산론에 근거한 '백두혈통론'이다. 둘째 '철옹산성'(영변읍성의 다른 이름) 지하에 입지한 영변 핵시설의 입지이다. 셋째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 무덤 입지이다. 그곳은 "금거북이 늪에 들어가는 모양인 금구머리 형국"(평양방송)의 길지라고 한다.

문제는 백두산 주산론과 백두혈통론이다. 남북한 모두 백두산을 우리 주산으로 여기는데, 이는 고려 말 이후 유학자들에 의해 형성된 폐쇄적 국토관에서 기인한 것임을 이전 글(2011년 10월 1일자)에서 밝혔다.

풍수에서 땅을 봄에 있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산의 얼굴(面)과 등(背)을 밝히는 일이다. 산에도 얼굴과 등이 있다. 예컨대 북악산 정상 남쪽이 산의 얼굴이라면 그 반대쪽은 등에 해당된다. 실제로 산의 얼굴과 등 쪽은 부동산 가격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를 보여준다. 어떻게 산의 얼굴과 등을 가리는가? 산의 얼굴 쪽은 완만한 반면 등 쪽은 가파르다. 당연히 산에서 발원하는 물길도 얼굴 쪽에서는 아주 유장(悠長)하게 많은 수량을 이끌고 흘러간다. 반면 산의 등 쪽으로 흐르는 물길은 가파르게 바람을 일으키며 짧게 흘러간다.

그렇다면 백두산의 얼굴은 어디일까? 물길의 흐름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하는 물길 가운데 가장 긴 것이 송화강이다. 송화강은 만주 일대를 휘감아 돌며 연해주를 거쳐 타타르해협과 오호츠크해로 나간다. 고조선과 고구려 우리 조상들의 활동무대인 셈이다. 그러한 옛 무대를 버리고 백두산 이남으로 우리 터전을 한정지었던 것은 발해 멸망 이후였다. 산의 얼굴에 터전을 잡지 않고 산의 등 쪽으로 숨어든 것이다. 고려 왕조만 하더라도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기본정신을 잃지 않았다. 조선왕조와 그 이후에 들어선 남북한 모두 백두산을 한민족의 주산, 우리 영토의 북방 한계선으로 언젠가부터 상념하고 있다. 폐쇄적 국토관으로 우리 민족의 활동 영역을 스스로 축소시켜 버렸다. '백두혈통론' 역시 그러한 결과물의 하나이다.

과연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나 그의 이복형 김정남이 백두산 정기를 받고 태어난 것일까? 김정은 위원장의 외갓집 선영은 '여러 신하가 임금에게 조례를 올리는 군신봉조형(群臣奉朝形: 제주시 봉개동)'에, 김정남의 외갓집 선영은 이른바 '향기로운 난초가 토끼를 마주하는 방란임토형(芳蘭臨兎形: 창녕군 성산면 방리)'에 자리한다. 어느 곳이 더 나을까? 다음에 계속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