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 역학

裨補(비보·모자라는 기운을 보완하는 것)풍수의 금자탑 신라 황룡사 9층탑… 반대파 포용, 국론통일 이뤄 國運 바꿔

웃는얼굴로1 2013. 12. 23. 11:21


	[Why] [김두규 교수의 國運風水(국운풍수)] 裨補(비보·모자라는 기운을 보완하는 것)풍수의 금자탑 신라 황룡사 9층탑… 반대파 포용, 국론통일 이뤄 國運 바꿔

"너희 나라는 여자를 임금으로 삼아 이웃 나라의 업심여김을 당하고 있다. … 내가 종친 한 사람을 보내어 너희 임금으로 삼되, 그 스스로 임금 하기 어려우니 마땅히 군대를 보내어 호위케 하겠다."

이른바 당태종의 '선덕여왕 퇴위론'이다. 당시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협공을 받아 대야성 등 40여개의 성을 빼앗기는 절체절명의 국난이었다. 신라는 당나라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사신을 거듭 보낸다. 서기 643년(선덕여왕 12년) 9월 당태종은 신라 사신에게 해결책으로 앞에서 인용한 '선덕여왕 퇴위론'을 내놓는다.

이에 신라 내부에서도 여자 임금의 권위를 인정하는 세력과 여왕 퇴위론을 주장하는 세력으로 양분된다. 여왕 퇴위론에 동조한 세력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 김춘추(그리고 그 연합체인 김유신) 세력이다. 선덕여왕 입장에서 답답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위기를 어떻게 반전시켰을까?

자신이 후원하였던 불교계 자장 법사를 활용한다. 자장 법사는 재상 후보로 언급될 만큼 정치적 역량이 있던 인물이었다. 643년 당나라에 유학 중이던 자장 법사는 귀국하라는 명을 받고 급히 귀국한다. 귀국 후 여왕을 만난 자장 법사가 국론 분열의 원인 분석과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이 '황룡사 9층탑 조성'이었다.

자장 법사는 문수보살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 나라(신라)는 산천이 험한 탓으로 사람의 성질이 추하고 사나울 뿐만 아니라 잘못된 의견을 많이 믿는다.… 9층탑을 세우면 이웃 나라가 항복하고 아홉 나라가 조공하여 왕업이 길이 태평할 것이다."

왜 하필이면 탑인가, 다른 것들도 많을 터인데?

'산천의 기운이 달아나는 형상이면 탑을 세워 멈추게 한다(走者以塔止之)'는 것이 비보풍수의 원칙이다. 그리하여 황룡사 9층탑이 세워졌다. 탑을 세운 지 30년 만에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통일을 이룩한다.

후세의 역사가는 말한다. "탑을 세운 뒤 운수가 형통하고 삼국을 통일했으니 탑의 영험이 아니고 무엇이랴."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의 평이다. 참으로 허접스러운 '전설'이다. 9층탑 하나 세웠더니 국운이 반전되어 삼한이 신라로 통일되었다는 황룡사 9층탑 전설이 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황룡사 9층탑 조성을 건의한 사람은 자장 법사였다. 하지만 9층탑 조성 총감독으로 임명된 이는 여왕 퇴위론에 동조하던 김춘추 세력이었다. 다름 아닌 김춘추의 아버지 김용춘(용수)이었다. 반대 세력을 포용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도편수는 적국인 백제의 명장(名匠) 아비지였다. 적국의 문화와 기술을 인정하고 수용한 것이다.(아니면 적국을 흔들어 놓을 고도의 정치 행위였던가?) 이에 응한 아비지도 '이적 행위'에 대한 고뇌가 적지 않았으나 신라로 간다.(수년 전에 불타버린 숭례문을 북한의 도편수를 초빙하여 복원케 하였으면 지금의 남북관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뿐만이 아니다. "귀족들이 가진 경제력을 탈취하여 공사에 투여함과 동시에 9층탑이 세워지면 복속하게 될 아홉 나라를 열거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신라 중심 시각을 제시하였다. 국론 통일에 긍정적 작용을 하게 하였다."(윤명철 동국대 교수)

이것이 전부일까? 9층탑이 있는 황룡사는 전사자의 명복을 빌고 충성을 선동하였다(예컨대 화랑도). 탑을 세워 한 집단의 운명을 바꾸었다. 비보풍수의 핵심은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