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함 속 여유로움 방배동 주택
↑ 북쪽으로 돌아앉은 대지에 기존 주택의 불편함을 보완한 가족의 보금자리를 재건축했다.
3代가 생활하기 편리한 동선과 세심한 디테일을 살리면서, 주택이기에 가능한 다채로운 라이프스타일도 놓치지 않았다. 더불어 단열 및 에너지 성능까지 고려한 도심형 집짓기를 소개한다.
↑ 벽돌과 부식 철판의 조화가 멋스러운 주택의 외관
기억을 꺼내어본다. 지나가는 사계절을 담아내던 마당, 쪽문을 열면 보이던 부엌, 온갖 잡동사니를 뒤지던 다락, 여름이면 마루 틈새 아래로 보이던 누렁이, 마당건너 불 켜진 건넌방의 삼촌. 우리가 자라던 한옥은 소통과 교류가 있는 공간이었다. 마당에서는 자연과 사람이, 쪽문을 통해서는 부엌의 엄마와 아이가, 마루를 사이에 두고 안방과 건넌방의 가족이 이어지던 공간이었다. 마당에는 햇볕이 내려앉기도 하고, 낙엽이 떨어지기도 하고, 눈이 쌓이기도 해서 변화하는 계절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억울하게 혼난 날은 혼자 흐느껴 울기에 꼭 알맞은 작은 다락방은 또 어떠했나. 실컷 울고 나면 위로가 됐고 나도 모르게 잠이 왔다. 집이라는 것은 자연과 사람이, 사람과 사람이 이렇듯 교감하는 장소여야 한다. 이러한 교감은 투자성이나 경제성이란 가치와는 바꿀 수 없는 것들이다.
↑ 주변 풍광을 놓치지 않도록 곳곳에 창을 내었다.
↑ 자연을 접할 수 있는 작은 마당이 집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 EAST ELEVATION
↑ 재건축 전 기존 건물의 모습
HOUSE PLAN
대지위치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
지역지구 일반주거지역
대지면적 309㎡(93.63평)
건물규모 지하 1층, 지상 2층
건축면적 154.23㎡(46.73평)
연면적 405.97㎡(123.02평)
건폐율 49.79%
용적률 91.24%
주차대수 3대
최고높이 8.49m
구조 철근콘크리트 라멘조
단열재 비드법 보온판 2종3호
외벽마감 레드 조약돌 점토벽돌타일, 부식스테인리스스틸
내벽마감 석고보드위 친환경 수성페인트 창호재 베카 패시브 시스템창호
구조설계 강구조, SDM 구조
설계 ㈜스페이스 목금토 건축사사무소 031-781-6545 www.spacemgt.co.kr
시공 비젼 디자인
건축비 3.3㎡(1평)당 약 500만원
↑ 1층은 내부에서 공간이 닫혔다 열리는 가변형 공간으로 융통성을 발휘한다.
방배동 건축주의 요구는 순수했고 명확했다. 대지가 주변의 좋은 산으로 둘러싸였으니 전망을 즐길 수 있게 해달라는 것, 시공비는 높지 않아야 한다는 것, 겉으로든 속으로든 과도함이 없는 담백한 집이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여름엔 시원하면서도 겨울엔 따뜻한 집이어야 한다는 것, 하자보수 문제를 최소화 해달라는 것. 손자를 둔 독립심이 강한 건축주 내외는 2층 공간을, 곧 두 아들의 엄마가 될 딸 내외는 아이들이 맘껏 뛰어 놀 수 있도록 1층의 공간을 원하였다.
멋진 대지였다. 동측으로는 품성 좋아 보이는 우면산으로 들어서는 길목이다. 서측으로는 멀리 기운찬 관악산이 펼쳐져 있고 그 아래 남태령 고개가 보인다. 아름다운 대지를 얻어 그림을 그려나가는 일은 건축가의 복이다. 이 즐거움을 집안 곳곳에 들여놓기로 했다. 가능성을 많이 품은 대지에서는 좋은 설계 그림들이 저절로 나온다. 그러나 북쪽으로 돌아앉은 대지에 따뜻하고 시원한 주택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 또한 단열과 에너지 기능을 중시하되 패시브 주택의 일반적이고 밋밋한 매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독일이나 미국처럼 패시브 인증 기준이 없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렇다고 외국의 기준을 우리나라에 적용한다는 것이 당위성이 있는 일인가? 또, 이로 인한 비용부담을 건축주에게 안기는 것이 옳은 일일까? 많은 고민 속에 패시브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재 주택 난방비의 1/2 수준의 고효율 주택에 도전하기로 건축주와 협의했다.
↑ 부모님을 위한 하늘 열린 2층 테크 여유로움을 느끼게 해준다.
먼저 설비적 요소가 아닌 자연적 요소를 충분히 이용하였다. 태양광을 최적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남동향의 배치와 우면산의 산바람이 집안 깊숙이 들어오도록 평면을 구성했다. 외벽은 두께 200㎜의 단열재(비드법 보온판) 위에 점토벽돌 타일을 이용하였다. 벽돌 대신 점토벽돌타일을 이용한 것은 벽돌의 단점, 즉 잡철물을 이용해 무거운 벽돌을 벽에 잡아두는데 이로 인해 생기는 열교를 없애기 위함이었다.
아래층의 부식스테인리스 철판 마감은 벽면의 철물 접합을 최소화하도록 부식철판의 폭을 조정했다. 창호는 국내 제작의 3중 유리 플라스틱 단열바를 쓰도록 하여 외산 자재의 사용을 자제하였다. 이외에 열교환기의 설치와 창호의 기밀테이프 시공에 꼼꼼한 주의를 기울인 것이 우리가 취한 패시브 기술의 전부였다. 그러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지난겨울 -10℃에 달할 정도로 한파가 심했지만 에너지적으로 불리한 1층(40평)이 평균 실내온도 22℃를 유지하면서도 인근 같은 규모의 집들에 비해 난방비가 절반에도 훨씬 못 미쳤다. 또한 집안 곳곳에서 일정한 온도의 흐름이 주는 쾌적함을 느낄 수 있었다. 건축주는 "추운지는 모르고 지냈어. 그리고 여름엔 산에서 내려오는 공기가 정말 시원해"라며 만족한 미소를 지으신다. 4월에 준공한 후 큰 비를 겪고, 매서운 겨울을 지내고서야 건축가는 이제사 마음을 놓는다.
물론 패시브 주택 전문가들에게는 비효율 주택으로 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묻고 싶다. 독일의 기준을 검증 없이 우리나라에 적용하는 것이 맞는 일일까? 직접 경험한 독일은 여름에도 가끔은 스웨터를 입어야 하고 겨울엔 햇빛도 잘 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온돌이라는 바닥 난방 시스템이 있고, 이는 우리의 정서와 몸에 더욱 제격이다. 인증을 받기 위해 외국의 자재를 사용하고 그들의 기준에 맞게 설계하는 것에는 오류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건축가들은 지역성과 정서를 고려하고 건축주의 비용과 효용에 합리적인 '적정 기술'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요즘 이러한 논의들이 생겨나고 있어 무척 반갑다.
↑ 부부와 아이들이 서로를 마주보며 '따로 또 같이' 있는 듯한 즐거운 공간
INTERIOR SOURCES
바닥재 Z:IN 원목마루(거실), Z:IN 강화마루(침실)
욕실 및 주방 타일 유로타일
수전 등 욕실기기 대림
주방 가구 한샘
조명 남광조명
현관문 동방 노보펌
방문 주문제작
붙박이장 한샘
벽지 개나리 종이벽지
폐열회수장치 진성 ERV 전열교환기
창호기밀테이프 프로클리마
↑ 작은 공간도 활용한 건축가의 배려가 돋보인다.
↑ 화이트 컬러로 마감한 심플한 침실의 모습
2층에서 보이는 전망은 우면산, 관악산까지 거칠 것 없이 호방했다. 다양한 액자에 풍경이 담겨 있듯이 외부로의 시야를 가려주거나 혹은 개방하여 산으로 둘러싸인 사계절을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북측으로 창을 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에너지 절약보다 좋은 전망이 선사하는 즐거움에 그 비용을 지불하기로 결정한 탓이다.
건축주 내외분이 계단을 이용하여 마당에 내려오지 않아도 자연을 직접 즐길 수 있도록 2층에 하늘이 열린 데크를 만들었다. 봄비가 조용히 내리는 날이면 툇마루에 앉아 우면산을 마주하며 한 잔의 차를 마시는 일도 즐거울 것이다. 지나가던 동네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건네도 좋겠다. 1층 경관은 아쉽게도 주변이 주택들로 막혀 있었다. 마당 이외에는 자연의 즐거움을 접할 수 없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1층의 젊은 가족에게는 내부에서 공간이 닫혔다 열리는 가변형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부부와 아이들이 서로를 마주보며 '따로 또 같이' 있는 듯한 즐거운 공간이 되었다. 호기심 가득한 어린 아들에겐 부엌과 통하는 다락을 만들어주어 혼자 놀면서도 엄마와 늘 함께 있는 느낌을 받도록 하였다. 경사진 대지로 생긴 공간의 단차는 이러한 가족적인 공간을 창출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부엌에는 창을 골목으로 내어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볼 수 있기에 낮에 혼자 일하는 주부가 외롭지 않을 것이다.
외장재는 스테인리스 철강업계에서 평생을 보낸 건축주를 위하여 부식스테인리스로 디자인했다. 손자는 이 주택에서 자라면서 할아버지가 일구어낸 사업에 대해, 또 할아버지의 근면함과 지혜로움에 대해 기억하고 그리워할 것이다.
↑ 긴 창을 통해 늘 푸르른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
아름다운 봄, 처음 대지를 보러 와서 이듬해 봄에 건물이 완공되었다. 건축가 혼자가 아닌 건축주와의 많은 대화 속에 지은 집이라 그동안 나눈 많은 이야기들이 실현될 수 있었다. 열심히 지은 주택에 가끔 초대받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건축주가 주택을 사랑하고 막 지어진 때보다 더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는 모습을 보는 시간, 건축가에게 이보다 더 행복하고 감사한 시간들이 있을까? <글 _ 권재희>
건축가 권재희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를 졸업했다. 스페이스5와 엄앤드이 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힌 후, 2006년 스페이스 목금토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였다. 현재 부천대학교 실내건축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작품 : ㈜유남전기 동탄사옥, 안양시 관양지구 내 근린상가, 구로여자정보산업고등학교 현관 및 복도 리모델링 외 다수
월간 <전원속의 내집>의 기사 저작권은 (주)주택문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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