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전원주택의 화두는 '강소주택'이다. 크고 화려하기 보다는 작지만 실속 있는 집이다. 그 콘셉트는 '친환경+저에너지'다. 한마디로 건강에 좋고 비용(건축 및 유지관리비)이 적게 드는 집이다.
우리민족의 전통 주거양식인 한옥(韓屋)은 어떨까? 사실 한옥은 많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지만, 비싼 건축비 탓에 지금까지 소수의 보금자리로만 머물러 왔다.
최근 들어 다양한 한옥이 개발되고 있고, '반값'을 내세운 한옥도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주재료인 목재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데다 공정이 까다로워 실제 공사를 하게 되면 '무늬만 반값'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가운데 '진정한' 한옥 대중화를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지난 25년 동안 이의 실험 및 연구, 시공에 몰두해온 '숨은' 한옥 전문가가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강원도 홍천 산골에 자체 공장과 연구실을 갖추고 신개념의 대중 한옥 보급에 나서고 있는 서경석(54) 신한옥연구소 소장이 바로 그 주인공.
홍천 산골에 들어선 신한옥 공장 겸 연구소에서 주문 제작한 각종 기계를 설명하는 서경석 소장 |
홍천이 고향인 서 소장은 이미 전국에 20여 채의 한옥을 지었다. 현재는 내린천 상류인 인제군 상남면 미산리에 가장 진화한 신한옥을 건립중이다. 그런데 그 외관과 재료가 매우 독특하다. 일단 지붕을 기와가 아닌 너와로 엮었다. 또 건물 본체의 벽면도 나무와 황토를 재료로 사용했는데, 나무의 쓰임새와 황토 역시 이전 한옥과는 확연히 다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옥의 개념은 상당히 왜곡되어 있어요. 문화재로 지정된 전통 건축물이나 사찰의 대웅전, 향교 등을 한옥의 전형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사람이 실제 거주하는 집이 아니지요. 이런 건축물은 외관과 위엄을 중시하다 보니 당연히 좋은 재료에 많은 품이 들게 되고 그러다보니 건축비도 비쌀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진정한 우리 한옥은 우리민족의 생활주택입니다. 기와 뿐 아니라 초가집, 귀틀집, 너와집도 사실 넓은 의미의 한옥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한옥을 정의한다면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으로 지은 집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9년에야 비로서 한옥에 대한 기준을 마련했는데, 기둥·보 구조와 기와로 지어진 집을 일컫는다. 하지만 서 소장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한옥이란 우리 조상들이 그저 주변에 있는 목재와 황토 등을 주재료로 지어온 살기에 좋은 집"이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캐나다 등 수입산 목재로 지은 한옥은 엄밀한 의미에서 한옥이 아니란 게 거의 주장이다.
서경석 신한옥연구소 소장이 공장을 방문한 방문객들에게 신개념의 반값 대중 한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그래서 그가 짓는 신한옥의 지붕은 너와와 기와를 두루 사용한다. 물론 벽체 등 몸체의 주재료는 목재와 황토다. 그런데 그가 쓰는 목재는 뭔가 특이하다. 굵기가 일정치 않고 심지어 울퉁불퉁하다. 길면 긴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버리는 게 없다. 표준화와 모듈화를 통해 자투리 목재까지도 모두 활용한다. 심지어 가공하다 남은 목재 슬러지 까지도 황토에 넣는 지푸라기 대신 재활용한다.
"한옥 대중화의 핵심은 건축비를 획기적으로 낮추는 것입니다. 이는 자재 특히 목재의 표준화와 모듈화에 달려있죠. 수입목재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목재를 100% 활용한다면 이의 실현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는 값비싼 수입산 목재 대신 국산을 사용하면 원가를 대폭 낮출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제원자재 가운데 유일하게 국산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게 바로 목재다. 또한 그는 한옥 재료로 소나무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수종의 나무를 다 사용한다. 이는 표준화와 모듈화를 통해 가능하다. 2년 정도 잘 건조하면 강도나 품질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모든 나무를, 그것도 종류와 생김새에 관계없이 한옥 재료로 사용이 가능할까? 그가 짓는 신한옥은 기둥과 보의 연결 부분과 벽체가 맞닿는 부분을 일정 규격으로 통일시켰다. 표준 규격화한 것. 그래서 목재의 모양이 한쪽을 굵고 한쪽은 가늘어도 상관없다. 연결 부위만 짜 맞추면 나머지는 황토를 활용해 벽체를 완성한다. 이렇게 탄생한 한옥은 반듯반듯한 수입목재를 사용한 집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전통미가 묻어난다.
신한옥 공장 겸 연구소에 적재된 각종 자재들 |
서 소장이 현재 인제군 미산리에 짓고 있는 가장 진화한 신한옥은 아예 목재를 40㎝(일부 60㎝)로 표준화했다. 일종의 '통나무 벽돌'인 셈이다. 이 통나무 벽돌은 절단된 부위가 벽체의 안과밖에 위치하도록 시공한다. 다시 말해 벽체의 두께가 40㎝가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시공은 나무의 통기성 때문이다. 나무의 물과 영양분이 위아래로 이동하는 것처럼 목재의 통기 역시 위아래로 움직인다. 이렇게 시공하면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한옥의 진가가 100% 발휘된다.
황토 역시 색다르다. 그가 쓰는 황토는 지푸라기 대신 목재 슬러지를 재활용한다. 지푸라기 보다 훨씬 질겨 수명이 오래간다. 또 황토에 작은 스티로폼 알갱이를 섞어 단열의 성능을 높였다.
"표준화와 모듈화를 통해 생산된 모든 국산 목재를 활용하면 누구나 손쉽게 저렴한 가격으로 한옥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어요. 현재 제시되는 반값 한옥은 3.3㎡(1평)당 600만~700만 원 대이지만, 이 보다 더 저렴한 400만~500만 원대도 가능합니다."
국산 목재 활용은 국가경제 차원에서도 엄청난 긍정적 파급효과를 가져온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먼저 연간 3조1000억 원에 달하는 목재 수입을 30%(1조원) 가량 대체할 수 있다. 나무를 벌채해 가공하고, 다시 묘목을 식재하는데 필요한 고용 창출과 그에 따른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 또한 엄청나다.
신개념의 신한옥 시공 현장 모습 |
하지만 국산 대중 한옥을 실현하겠다는 서 소장의 집념과 노력은 아직 그 만의 고군분투일 뿐이다. 정부(지자체)와 관련 기관은 물론 학계에서조차 그의 국산 대중 한옥 주장에 대해 '진보적인' 아이디어 정도로 치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도 그는 외로운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동안 자신이 개발해온 기술력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나 보조 없이 오직 개인적인 투자를 통해 자생력을 키워왔지요. 그 결과 목조건축, 기둥·보 방식, 한옥 지붕과 천정·벽체 관련 15가지 특허를 갖고 있습니다. 대기업에서 뛰어든다 해도 저를 따라 잡으려면 향후 20년은 걸릴 겁니다."
실제 홍천에 있는 그의 공장 겸 연구실에는 각종 기계들이 설치되어 있고, 표준화·모듈화를 통해 생산된 자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부지 면적만 1만㎡(3000평)에 이른다. 서 소장이 소유하고 있는 임야도 무려 33만㎡(10만평)나 된다. 나무를 자르고 운반하고, 이를 표준화한 규격에 맞게 가공하는 기계들 모두 주문제작해서 쓴다. 그는 "이미 들어간 시설 투자비만 6억~7억 원은 족히 될 것"이라며 허허 웃는다.
그는 국산 목재를 사용한 대중 한옥의 미래를 낙관한다. 향후 2~3년 내 빛을 보게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래서 그는 향후 각종 자재 생산 공장 규모를 3만3000㎡(1만평) 규모로 늘릴 계획이다. 대규모 생산을 통해 원가를 더 낮추게 되면 그만큼 대중 한옥을 널리 보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을 지켜라"는 할아버지의 유지가 '힘'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고, 투자비는 계속 들어가는 이 같은 일에 그가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할아버지께서는 늘 장손인 제게 '산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산은 사실 조상의 산소를 말한 것이었지만, 저는 항상 산을 지켜야겠다고 다짐하곤 했지요. 그게 지금까지 고향인 홍천 산골을 떠나지 않고 국산 대중 한옥의 연구 및 보급에 전력할 수 있게 해준 에너지가 되었던 것 같아요."
그는 7남매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할아버지로부터 대규모 임야를 물려받았다. 그게 33만㎡(10만평)에 이르고, 이는 국산 목재를 사용하는 대중 한옥 연구의 물적 기반이 되었다. 그는 산을 지키라는 할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평일에는 서울에서 근무하지만, 매주말이면 홍천으로 내려와 신한옥 연구 및 보급에 몰두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신한옥 연구 및 보급만 해도 일이 벅찰 법 한데 그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그런 낌새를 전혀 느낄 수 없다. 그의 '화려한' 이력을 보면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는 감사원 산하 한국감사협회 10대 회장을 역임했고, 지금은 명예회장이다. 현재 모 조합의 상임감사직을 맡고 있으며, (사)한국임업경영인협회 부회장, (사)한국산악회 이사도 겸하고 있다. 지난 1997년에는 신지식임업인에 선정된 임업 전문가이다. 민주평통 자문위원도 거쳤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과거 전국대회(생활체육) 사격(클레이) 부분 금메달리스트라는 것. 이후 전국체전 사격감독을 맡기도 했으며, 지난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 당시에는 강원도사격회장 자격으로 성화봉송 주자로 참여해 체육사에 이름을 남겼다.
금메달리스트·부동산박사·신지식임업인 등 화려
그는 또한 박사다. 농학과 법학 학사에 행정학 석사와 부동산 박사(강원대) 학위까지 받았다. 공인중개사 자격증까지 덤(?)으로 갖고 있다.
"현재 산림휴양에 관한 책과 논문을 집필중입니다. 향후 친환경주택, 통나무와 황토, 한국형 주택 등을 망라한 생태건축론(가칭)을 책으로 펴낼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산림자원에 대해서도 앞선 생각을 실천해온 사람이다. 그 결과 산돌배나무를 6만6000여㎡(2만여 평) 보유하고 있다. 본디 백의민족이란 배꽃에서 유래된 것으로 배나무는 우리민족의 상징수라는 게 서 소장의 설명이다. 최근 들어 건강에 좋은 약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돌배의 인기가 대단하다고 귀띔했다.
이에 앞서 20년 전에는 거대한 십자가 모양의 '이미지 숲'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은행나무를 식재했다가 두더지와 땃쥐(두더지 과의 쥐)의 습격으로 실패한 경험이 있다. 이후 지난 2005년 단풍나무 묘목을 심어 관리하고 있다. 계절마다 색이 바뀌는 '십자가 숲'을 볼 날이 자못 기대된다.
지난해부터 트렌드로 굳어진 귀농·귀촌과 전원주택에 대해 신한옥 전문가인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전원주택의 크기는 33~50㎡(10~15평) 정도면 족합니다. 실속있는 전원생활을 위해서는 집보다는 오히려 창고 등 부대시설을 크게 짓는 게 요령입니다. 텃밭 또한 33㎡(10평) 안팎이면 충분합니다."
지난해 말 전국의 한옥 가구 수는 총 8만9000 가구로 2008년에 비해 60% 이상 증가했다. 아직 전체 가구의 0.5%에 불과하지만, 한옥은 친환경과 건강, 정서적인 친밀감이라는 장점을 업고 현대기법과의 접목을 통해 그 영역을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 국산 목재를 자투리 하나까지 남김없이 활용하는 '서경석표 신한옥'이 향후 이의 흐름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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